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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살에 독립할 수 있을까?

밴프의 작은 호수에서 받은 큰 영감

자동차로 캐나다의 동부 몬트리올에서 캐나다의 밴쿠버까지, 그리고 다시 미국을 거처 몬트리올로 돌아오던 1만 km의 여행 동안 내게 강한 인상을 준 곳 하나를 뽑는다면, 그건 아마도 캐나다 로키산맥의 밴프 국립공원. 그중에서도 너무 작아 가이드북에도 잘 나오지 않는 레이크 투젝이었다.



쁜 풍경의 사진을 보면 흔히들 엽서 사진 같다고 이야기한다. 사진 찍은 사람 입장에선 내 사진이 엽서 사진 같다 하면 흔한 사진 같다는 말처럼 들려 속상할 때도 있지만, 매번 엽서 같은 풍경사진을 찍는다는 게 사실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좋은 엽서 사진은 그 장소가 제일 아름답게 보이는 시간에 찾았을 때 나온다. 캐나다 횡단 여행 중 밴프 국립공원에 머물었던 날들은 종일 엽서 속에 보낸 것 같이 느껴졌다. 계절과 시간에 상관없이 아름 다운 곳이라는 이야기다. 멋진 산세와 에메랄드 빛 강물, 그리고 푸른 하늘 3가지가 엽서 사진을 만들어낸 필수 3요소였다. 밴프 국립공원에는 정말 아름다운 호수가 참 많은데 대부분이 만년설이 녹아 만들어진 것들이다. 미네완카 호수에서 유람선을 타면 호수의 조금 더 깊숙한 곳까지 달리며 시원한 호수 바람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평화로운 호수의 적막을 깨우는 것은 항상 전 세계에서 모여든 인류, 관광객이다. 저마다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찍어가며 순간을 기억으로 만들려는 몸부림을 한다.




나 역시 언제 또 내 눈이 이리 호강을 할까 싶어 최대한 눈과 마음에 풍경을 많이 담아두려 했다. 차를 타고 가다가 멋진 풍경을 만났을 때 망설임 없이 설 수 있다는 것 또한 내 마음이 풍요롭다는 증거 아닐까. 건너편에서 나와 같은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야생 염소를 보면서 누구의 마음이 더 풍요로울까 문득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그 디테일은 달라도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매한가지다. 학습하고 학습한 것을 사용하고,  후세를 교육하는 세 가지 시기를 가지는 것 역시 같다.


레이크 투젝은 관광객들이 붐비는 여느 호수와는 조금 달랐다. 이 호수는 미네완카 호수와 연결되어 있는 작은 호수로 밴프에서 한달살이로 여름휴가를 보내는 캐나다 로컬 여행객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그늘막 텐트나 돗자리를 펴두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가족단위 여행객을 쉽게 볼 수 있다. 작다고 해도 미네완카 호수에 비교했을 때 작다는 이야기일 뿐 그 뒤로 펼쳐지는 전경이 로키산맥의 일부라는 것을 우리는 잊으면 안 된다. 




멀리 호수 중앙에 모녀로 보이는 두 여자가 패들보트를 타고 있었다. 패들보드는 노를 사용하는 보드로  서핑보드랑 반대로 파도가 없는 호수나 강에서 많이 타는 수상레포츠이다. 모녀는 단출한 차림으로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노만 들고 저 넓은 호수의 한 복판에 서있었다. 그럼에도 유유자적 강을 가로지르는 모녀의 모습이 나는 하나도 위태롭기보다는 너무나도 편안해 보였다. 캐네디언들은 어릴 적부터 수영이나 스키 등 스포츠를 부모로부터 자연스럽게 배운다. 아이들이 다치는 것이 두려워 모든 위험요소를 제거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더라도 일어나는 방법 즉 위험에 대처하는 태도를 가르친다.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았을 것 같은 아이가 상급자 코스에서 혼자 스키를 타고 내려가거나 호수에서 수영을 하며 노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모녀가 육지에 가까워질 때까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벤프의 강물을 따라 자연스럽게 흐르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지금 나누는 이야기가 어떤 것이든 나중에 얼마를 주고도 살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될 거라 짐작할 수 있었다. 좀 더 얕은 호수변 한쪽에서는 그녀의 작은 딸로 보이는 꼬마숙녀가 엄마의 아버지로부터 패들보드의 노 젓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짧은 순간 나는 이 가족 삼대의 히스토리 필름을 빨리 감아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 페달 보드를 배우고 있는 이 아이 역시 커서 엄마처럼 할아버지처럼 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노는 아이들과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부모의 시선은 아이들을 위험으로부터 통제하겠다는 마음보다는 아이들에 대한 믿음과 배려가 가득해 보였다. 어린아이를 그렇게 신뢰할 수 있는 마음은 아마 그들 역시 그의 부모로부터 그리고 또 그 부모의 부모로부터 자연스럽게 배웠을 것이다. 신뢰의 눈빛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커서 또 누군가에게 그런 신뢰의 눈빛을 보내면서 살게 되겠지.


인간은 10개월을 엄마 뱃속에 있다 태어나면서도 스스로 혼자 걷기까지 또 1년이 걸린다. 혼자 걸을 수 없으니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어 항상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캥거루족이라 하여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나이가 점점 길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자신을 위해 희생한 부모님을 위해 기꺼이 또 자신을 희생하는 자식들을 나는 많이 보았다. 자식을 위해 꿈을 포기하는 엄마, 나를 위해 꿈을 포기한 엄마를 위해 본인의 꿈을 또 포기하는 자식. 꿈을 이루는 것은 결국 그저 꿈으로만 남아야 하는 것일까? 인간이 정말 홀로 설 수 있는 나이는 몇 살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캐나다에 와서 한국과는 조금 다른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보면서 부모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결국 어미새가 해야 할 일은 열심히 먹이를 물어 먹이며 아기새가 혼자 날고 사냥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인간이 걸음마를 배우고 부모로부터 독립하기까지 제일 오래 걸리는 동물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동안 가장 멀리 갈 수 있다는 것 또한 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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