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배꼽 울루루를 향해서
7km만 더 달리면 기름통을 꽉 채울 수 있는데, 사막 한 복판에서 차가 섰다. 액셀을 밟고 있는 오른발에 더 꾹 힘을 주어봐도 차가 내 맘만큼 나가지 않는 것을 감지하고는 이내 차를 왼쪽의 갓길에 세웠다. 우리는 지금 호주의 배꼽, 울루루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영화 속 그 세상의 중심에서 나도 한번 사랑을 외쳐보기 위하여 브리즈번에서 캠핑카를 끌고 시드니와 멜버른을 거쳐 이곳 바로 문턱까지 오게 되었다. 멜버른을 떠나 온 뒤로는 이렇다 할 도시를 만나지 못했고 대부분 주유소와 식당이 몇 곳 있는 작은 마을들 뿐이었다. 사람은 물론 나무들이 살기에도 혹독한 이곳에는 하루 종일 달려도 맞은편에서 오는 차를 모두 손꼽아 셀 수 있을 정도였다. 지난밤 묵었던 캠핑장에서 첫 번째 주유소까지는 불과 74km. 그 거리를 완주하지 못하고 이 사막 한복판에 육중한 캠핑카가 서버리고 말았다.
사건의 발단은 여행자의 쓸 때 없는 부지런함에서 출발했다. 아직 새벽 6시밖에 안 되었는데 줄리와 나는 이미 캠핑장을 떠날 채비를 마쳤다. 342km만 더 달리면 울루루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어 새벽부터 유독 부산을 떨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날로그 계기판의 캠핑카 주유 게이지는 잔량이 한 칸 정도 남았음을 표시하고 있었다. 요즘 최신식 자동차처럼 남은 연료 잔량으로 주행 가능 거리를 표시해주는 기능 따위는 없어 어설픈 공식으로 머리를 굴려가며 주행 가능한 거리를 예측해 보았다. 이 육중한 캠핑카는 기름통이 큰만큼 무겁고 연비도 좋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얼마나 갈 수 있는지 항상 머릿속에 염두하며 달려야 한다. 특히 주유소를 쉽게 만날 수 없는 이런 사막의 한 복판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우리가 묵었던 캠핑장에는 주유소와 작은 술집도 있었다. 동네의 모든 상업기능을 이곳에서 독점 중이었다. 워낙 인구가 적은 작은 규모의 마을이었기 때문이다. 떠날 준비를 완료 한 시각이 오전 6시인데 주유소는 7시부터 영업을 시작하고, 우리는 조금이라도 빨리 울루루가 보고 싶었을 뿐이다. 계산 결과 캠핑카에는 딱 다음 주유소까지만 갈 수 있는 만큼의 기름이 간당간당하게 남아있었다.
"그래 까짓것 가보자! 최대한 연비 주행을 하면 설마 가다가 서기야 하겠어?" 하며 우리는 패기 넘치게 캠핑장을 나섰다. 그리고 그 '설마'는 주유소를 7km 남겨두고 현실이 되었다. 주유소까지 걸어서 다녀오면 왕복 14킬로미터. 시간당 4킬로미터를 걷는다고 해도 3시간 반은 걸릴 것이다. 거기다 여긴 황량한 사막 한복판이다. 줄리를 두고 나 혼자 다녀오면 조금은 빠르겠지만 여자 혼자 사막에 남겨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우리는 호주 사막 한복판에 연료가 없는 캠핑카와 함께 서 있다.
캐나다 횡단할 때 비교적 큰 사건 사고가 없어서 나중에 책으로 쓸 내용이 없다고 투덜거렸었는데. 이번 여행은 우선 부족한 에피소드를 걱정하며 투덜거릴 일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