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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첫 차를 샀다

9개월 동안 3만 km를 달린 사연

직업학교를 졸업하고 워크퍼밋이 나오자마자 인턴 실습했던 호텔에 바로 취직이 되었다. 캐나다에서 진짜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캐나다나 미국에서 살게 되면 얼굴 하얀 백인들이랑 주로 일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살다 보니 이민자의 나라답게 정말 다양한 인종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다니던 회사만 해도 사장은 이탈리아계와 영국계 캐네디언이 동업을 했고, 그 밑으로는 알제리, 튀니지, 캄보디아, 멕시코, 폴란드, 러시아 등 정말 다양한 출신들이 모여있었다. 퀘벡에서 취업을 하려면 영어만큼 불어도 가능해야 했기 때문에 여러모로 부담이 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력들이 늘어났고 팀의 핵심 멤버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해외취업이나 이민, 워킹홀리데이를 생각하고 있는 분들에게 조언을 한 가지 하자면, 역시 "자신감을 가져라"이다. 외국 생활하며 내가 만나본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성실하게 자신이 맡은 일들에 잘 해냈다. 하지만 딱 두 가지가 부족한데, 그것은 바로 자신감과 창의성이다. 언어 때문에 자신감을 잃고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막상 도전해보면 취업의 벽은 생각보다 높지 않고 함께 일하다 보면 외국 직장 생활도 한국에서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히려 익숙해지다 보면 수직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조직 관계와 할 말은 하는 문화가 직장생활을 훨씬 편하게 만든다는 것도 배우게 된다. 


줄리는 한국에서 배워온 네일아트로 내가 학교 생활을 하는 동안 이미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불어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고, 영어도 필리핀에서 받은 3개월 어학연수가 전부인데 한국인 특유의 성실함과 뛰어난 손재주로 직장 내에서 인정을 받고 있었다. 실제로 한국인을 직원을 고용해본 오너들은 계속해서 한국인을 채용하는 경우가 많다.  


캐나다의 겨울은 적설량이 엄청나다. 눈 속에 파묻혀 있는 차를 거의 발굴 하다시피 하는 풍경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맞벌이를 시작하니 생각보다 빨리 돈이 차곡차곡 모이기 시작했다. 12월 겨울이 찾아왔을 때, 취업 6개월 만에 천만 원을 모았다. 학교를 다니며 맞았던 첫 번째 겨울에는 경량 패딩을 입고 지하철만 타도 여기저기 잘 돌아다녔는데, 두 번째 맞이하는 겨울에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생활 반경이 넓어지니 자동차의 필요성을 느꼈다. 영하 20도의 추위를 흔하게 볼 수 있는 몬트리올의 겨울, 눈은 쏟아지는데 예고 없이 버스가 운행하지 않아 밖에서 한 시간 넘게 기다린 적이 있었다. 뭔가 화가 나고 억울해서 바로 차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매한 자동차를 등록하고 번호판을 수령하여 줄리가 직접 차에 달고 있는 모습

온라인 중고차 사이트들을 살펴보다가 몇 군데 매장을 직접 둘러보기로 했는데, 두 번째 들린 매장에서 너무 마음에 드는 매물을 발견하여 덜컥 계약을 해버리고 말았다. 피아트 500이라는 문이 두 짝 달린 이탈리아 소형차인데 우리나라의 경차보다 약간 큰 크기의 모델이었다. 수동 기어 차량이라 시내에서 조금 불편했지만 연비가 좋고 운전 재미도 좋아서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출고가 3년도 안된 모델로 누적 주행거리도 매우 낮았다. 


내 차를 끌고 처음 국경을 넘어 뉴욕 여행을 갔던 기억은 절대 잊을 수 없다.

미국과 캐나다는 확실히 자동차 생활을 기준으로 문화가 발달하였다. 대도시들은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이 잘 발달하였지만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도 차가 없으면 갈 수 없는 곳이 많이 있다. 배차 간격이 길고 그마저도 이유 없이 취소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동차가 생기고 나니 동선이 매우 입체적이 되었다. 이곳저곳 드라이브를 상당히 많이 다녔는데 가이드북에 나오지 않는 소도시들을 여행하는 것도 좋았고, 내 차를 타고 처음으로 국경을 넘어 미국에 가보는 것도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나와 줄리는 이 작은 소형차로 캐나다와 미국을 횡단했었는데 관련된 이야기는 전작인 "오늘 밤 우리 어디서 자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brunch.co.kr/publish/book/5251


횡단 여행 뒤 캐나다 생활을 잠시 정리하고 호주로 떠날 때 처음 자동차를 구매했던 딜러숍에 다시 재판매를 했었는데, 당시 담당 직원이 9개월 만에 주행거리가 3만 킬로미터 늘어간 것을 보고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눈이 동그래 졌다.


미국 횡단 중 지도를 보고 있는 줄리.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인생 여행.


한 번은 피아트 500의 창문을 활짝 열고 크게 음악을 들으며 몬트리올의 다운타운을 달리고 있었는데 HOT의 "We are the future"가 흘러나왔다. 중학교 때 좋아하던 노래인데 캐나다의 몬트리올의 한 복판에서 들고 있자니 신기했다. 어른들에게 "우리가 바로 너희들의 '미래'야"라며 소리치던 반항끼 가득하던 서울 촌놈이 이렇게 캐나다 몬트리올까지 와서 살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HOT의 노래를 한참 듣던 학창 시절부터 몬트리올 이민을 준비했던 지난 몇 년간의 일들까지 파노라마처럼 머릭 속을 스쳐 지나갔다. 10년 뒤에 나는 또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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