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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ty noodle Dec 24. 2022

소설을 쓴다고?


그에겐 취미가 많았다. "종종 캠핑도 가고, 바이크도 타. 가끔은 클라이밍도 하고 그래." 조용하게 생긴 것과는 달리 역동적인 취미 활동을 즐겨하는 듯했다. 취미가 많은 것도, 그의 이미지와 상반되는 취미를 가진 것도 의외였다.


"그런데 요즘 꽂혀있는 건 단편 소설 쓰기야." 그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이번에는 그와 참 잘 어울릴 법한 취미를 말해주었다. 새해 목표가 소설집을 내는 것이라고 덧붙이면서. 


그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우와, 오빠! 단편 소설집 내는 게 내년 목표라고?" 그러자 그는 느리게 눈을 꿈뻑이면서 대수롭지 않게 "응" 대답하고는 거품이 살짝 꺼진 흑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세상에, 내가 들어본 새해 목표 중에 제일 낭만적이야!" 나는 벌게진 얼굴로 술집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외치고 말았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궁금한 것이 많아지는 나는 언제부턴가 그에 대해 최대한 많은 것을 알고 싶었다. 뭘 좋아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래서 그와 만날 때면 매번 인터뷰라도 하러 나온 기자처럼 쉴 새 없이 질문하고 대답에 감탄하고, 꼬리 질문을 하곤 했다. 그런데 그가 글을, 그것도 단편 소설을 쓴다니. 그는 어떤 글을 쓸까? 궁금한 게 하나 더 늘었다.


하지만 차마 "나도 그 글 좀 보여주면 안 돼?" 묻진 못하고, 맥주잔만 만지작거리며 "오와...짱이다...소설...멋지다..." 우물우물 혼잣말을 할 뿐이었다. 그러자 그는 웬일로 "내가 쓴 글, 보여줄까?"하고 물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감정이 읽히지 않는 까아만 눈동자로 그리고 맥주 두 잔에 발그레하니 취기가 오른 얼굴로. 


무심하게 툭 던진 그의 말이 무척이나 기뻐서, 나는 손까지 달달 떨며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퐁퐁, 혀 끝에서 터지는 탄산이 채 가시기도 전에 대답했다. "그래도 돼?"


어떤 상황에서도 바위처럼 과묵한 그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천천히 핸드폰을 꺼냈다. 손가락으로 톡톡, 액정을 몇 번 두드리더니 "카톡 확인해 봐." 말하고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우와, 카톡으로 보내주는 거야?" 나는 그것들을 오랫동안 보관해두고 마르고 닳도록 읽으리라 다짐하며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새로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엉뚱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글, 정치적인 색깔이 묻어나는 글 그리고 달달하고 풋풋한 연애 소설. 하나도 아니고 세 개나 보내준 글 속엔 내가 알지 못하는 그가 잔뜩 담겨있었다. 


한 손으로 헤벌쭉 벌어지는 입을 가리고 나머지 한 손으로 스크롤을 내려가며 읽었다. 순식간에 모두 읽었다. 읽고 나니 그가 더욱 좋아졌다. "오빠, 진짜 최고다. 다른 글도 더 읽고 싶어!" 외치듯이 말했다. 기왕이면 달달한 사랑 얘기로,라고 덧붙이려다 그건 너무 속이 보이는 것 같아 참았다. 


"그래?" 그는 보일 듯 말 듯 살짝 웃더니 다시 핸드폰을 꺼냈다. 톡톡톡톡, 이번에는 아까보다 집중한 표정으로 화면을 조금 더 두드렸다. "보냈어." 말한 뒤 핸드폰을 내려놓고 맥주잔으로 손을 뻗었다. 그는 조금 취한 것 같은 기분이라고 말하면서도 연신 맥주를 홀짝였다. 나는 이번에도 잔뜩 기대하며 전달된 메시지를 확인했다.


?


그러나 메시지 안에는 짧아도 너무 짧은 문장 한 줄이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문장은 단숨에 읽혔고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놀란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자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으로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이건 어때?"하고 물었다. 


그 순간, 맥주잔을 드는 그의 손이 살짝 떨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아까보다 조금 더 붉어진 얼굴과 슬쩍 초조해 보이는 눈빛도. 


뭐지, 이 깜찍한 사람은?


나는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정말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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