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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ty noodle Jan 06. 2023

벽간 소음

저 어떡하죠...?


옆집 이웃이 바뀌었다. 2주 전인가 3주 전 주말 아침, 옆집에서 쿵쿵 소리가 나고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아, 우리 층에 새로운 사람이 이사 왔구나.’하고 충분히 인지할 만한 소음과 장면 연출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더 확실하게 그녀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었던 걸까. 이사 온 당일 이후로도 다양한 말소리와 쿵쾅대는 소리, 호탕한 웃음소리 등으로 이 집에 새로운 이웃이 왔다는 사실을 열심히 어필해 주었다. 


처음부터 그녀의 집에서 넘어오는 소리가 거슬렸던 것은 아니다. 이사 온 다음 날 최소 3명 이상이 내는 듯한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벽 너머로 들려왔을 땐 ‘아이구 집들이하나 보네. 엄청 신나는 목소리인 걸 보면 처음 독립했나 봐’하고 인자하게 웃어넘길 수 있었다. 나도 처음으로 독립했을 때는 그랬으니까. 그리고 그땐 낮이었으니까. 물론 그 이후로 이따금씩 날카로운 말소리가 들리는 저녁이 몇 번쯤 더 있었지만, 그때까지도 ‘흠? 오늘도 집들이를 하나 보네’하고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서 그녀는 선을 넘어버렸다. 어느 날인가 자려고 침대에 누었을 때였다. 침대에 맞닿은 벽에서 젊은 남녀가 대낮처럼 크게 말하고 꺄악 소리를 지르고 쿵쾅쿵쾅 뛰어다니고 박수를 치며 낄낄낄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불길한 기분이 엄습했다. 아 이거 상당히 매너 없는 인물이 왔나 보구만. 말소리가 지나가면 웃음소리가, 웃음소리가 지나가면 쿵쾅대는 발걸음 소리가, 발걸음 소리가 지나가면 꺄악 하고 고성 지르는 소리가 났다. 새벽 한 시다, 이 새끼들아! 


어떻게든 그들을 이해해보려던 이전의 노력들까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듯했다. 머리끝에서 넘실대는 짜증을 이기지 않고 벽을 한 번 쾅 치려다가, 나도 그동안 그리 조용한 이웃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며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저들도 조만간 조용해질 거라며 행복 회로를 돌렸다. 


그러나 벽 너머에 사는 얼굴 모를 이웃의 집에서 행복 회로가 열심히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새로운 이웃은 알아채지 못한 듯하다. 그 뒤로도 거의 매일같이 미묘하게 신경 쓰일 정도의 소리들이 들려왔으니까. 




어제저녁에도 벽 너머에서 갑자기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전에 들어본 적 없는 새로운 목소리였다. 대화의 모든 내용을 정확히 듣진 않았지만 말투나 목소리로 추측해보았을 때 새 이웃의 어머니가 방문한 것 같았다. 


그들은 이전에 방음이 아주 잘되는 집에서 살아왔었는지 저녁에도 목소리를 돋우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잠시 뒤엔 갑자기 강아지가 앙칼지게 짖는 소리가 났고, 이내 강아지를 혼내는 소리도 났다. 아, 이젠 개까지…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서 우물쭈물했다. 옆집에 찾아간다거나 다이소에서 고무망치를 사 와 벽을 친다거나 하지는 않고 그저 혼자서 조용히 욕지거리를 내뱉고 블루투스 이어폰을 꼈다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없어 어느 정도 소리가 비집고 들어오긴 했지만 끼지 않는 것보다는 한결 나았다.


그러나 밤 아홉 시, 열 시가 되어도 그들은 간간히 큰 목소리로 얘기를 나눴고 개는 이따금씩 짖었다. 자기 전에 남자친구와 통화를 하는 와중에도 옆집에서 종종 소리가 넘어와 스트레스를 받았다. 


나는 목소리를 낮추고 소곤소곤 옆집 욕을 했다. "뭐라고 항의라도 하고 싶은데 목소리도 큰 데다가 개까지 짖게 두는 거 보니까 보통 상식 없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애!" 우리는 잠깐 동안 현대인의 화난 상태와 과거의 미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통화를 마쳤다. 


잠자리에 들면서는 그간 하도 돌려서 나사가 몇 개 빠진 것 같은 행복 회로를 힘을 내서 다시 한번 영차영차 돌렸다. ‘저 집 어머니 내일은 집으로 가시겠지, 가실 때 멍뭉이도 데려가겠지.’ 




하지만 가여운 행복 회로는 이제 다 녹아버릴 지경이다. 이웃집 여자가 학교를 가는지 알바를 가는지 직장엘 가는지 그나마 평일 낮에는 비교적 조용했는데, 오늘 낮엔 사람 소리가 비는 대신 개가 짖는 소리가 났다. 오전 무렵까지는 멍뭉이 곁에 사람이 있었는지, 짖으면 “안돼!”라거나 뭔가 제지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는데 점심 이후로는 그마저도 없었다. 


자신의 울음에 화답해 줄 사람이 곁에 아무도 없는 것이 외로웠는지 강아지는 어제보다 자주, 구슬프게 짖었다. 텅 빈 공간에서 혼자 짖고 있는 강아지가 불쌍하고 안쓰러웠지만, 나는 최악의 이웃을 맞이했다는 사실이 더 괴로웠다. 


남자친구는 점심을 먹고 회사로 복귀하면서 나에게 전화했고 나는 어제에 이어 벽간 소음에 대한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가 30분 정도 짖을까? 아님 1-2시간 간격을 두고 5분 정도씩 짖어볼까? 다정하고 자상한 그는 내가 아무리 엉뚱한 말을 해도 결코 ‘뭔 헛소리야’하고 말하는 법이 없다. 


“희원아, 간격을 두고 5분씩 짖는 것보다는 30분 정도 짖는 것이 효과적일 거야”라고 진지하게 조언해 주었다. 아무래도 30분씩 연속으로 짖는 것은 목이 아플 것 같아서 “간헐적으로 한 번씩 짖는 것이 더 괴롭지 않을까?” 대답하자 그는 말도 안 되는 상상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예시를 들어 보이기까지 했다. "만약에 시간 간격을 두고 5분씩 짖는다면 짜증이 극에 달하기보다는 ‘으, 쫌만 참자’하고 버틸 거야. 근데 30분을 연속으로 짖는다고 해봐, 진짜 짜증 나지." 


과연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만약에 짖어야 하는 날이 온다면 열정을 다해서 30분을 짖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와중에 개떡 같은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해주는 남자친구에게 또 한 번 반해서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웃집에 복수하기 위해 어떻게 짖을 것인가를 궁리하는 여자 친구보다 뜬금없는 타이밍에 사랑을 고백하는 여자 친구를 더 당황스러워하는 듯했다... 이게 맞아?


전화를 끊기 전에 그는 현실적인 조언도 해줬다. “옆집에 개가 너무 짖는다는 내용의 포스트잇을 붙이는 건 어때? 아니면 초인종을 한번 눌러봐.” 사람이 없을 줄 알고 초인종을 눌렀는데 누구세요? 하고 누가 나오면 어떡하지? 되묻자, “강아지가 하도 짖길래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짖는 줄 알고 초인종 눌러봤어요”라는 그럴싸한 대답 예시도 함께 알려줬다. 만일 내가 옆집 여자에게 그 말을 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말 끝에 숫자 욕도 붙여서 하리라. 


마지막으로 그는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어도 감정을 해소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만한 조언도 해줬다. "이 일을 소설로 써봐." 내가 그 말에 뭐라고 대답했더라. 소설? 아 어려울 것 같은데 하고 대답하면서 동시에 폭력적인 상상을 머릿속으로 실컷 하면서 씨익 웃었던가. 


어쨌거나 지금 이 글은 여러 사람의 도움(?)과 영감(?)을 받아 쓴다. 쓰는 동안에도 옆집 개는 짖었고, 어느샌가 옆집에 사람들이 돌아와 이따금씩 말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정말이지 아주 대단한 이웃이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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