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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사주 Nov 09. 2017

부록Ⅰ경계를 의심한 불온한 당신 ②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 - 이진경 

주류 대중문화가 공부하고, 대학가고, 취직하고, 이성과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사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을 알려주지 않던 시절, 순정만화 작가들은 그 밖의 수많은 삶들을 우리 눈앞에 펼쳐 보여주었습니다. 그중 이진경은  그간의 ‘순정만화’가 고려하지 않았던 지점, 즉 여성의 연애상대이자 애정의 대상인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고 위협하는 존재일 수 있다는 것, 그러한 시스템의 공모자라는 사실을 폭로한 작가였습니다.


데뷔작| 1994년 《GETTO JAM》

대표작| 《사춘기》(미완),《피플》 



굵직한 선, 유화풍 채색, 선연한 페미니즘으로 독특한 위치를 점한 작가. 교육받은 여성,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를 모토로 내세운 여성이 처음으로 등장한 시대에 나타나 그간 ‘순정만화’가 고려하지 않았던 지점, 즉 여성의 연애상대이자 애정의 대상인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고 위협하는 존재일 수 있다는 사실, 그러한 시스템의 공모자라는 사실을 폭로한 작가이기도 하다. 



                                           강호에 홀연히 나타난 실력자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대학에서는 조소를 전공했다. 아마추어 만화동호회 ‘EXPRESS’와 ‘PAC’에서 활동하다가, 강호에 실력자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온 『펜팬』 편집부에 이끌려 1994년 창간호에 《GETTO JAM》을 연재했다. 서구를 배경으로 한 퍼포먼스 유랑극단의 이야기였는데, 얼마 되지 않아 잡지가 폐간하며 도중에 중단되었다. 그러나 《GETTO JAM》을 눈여겨보던 『윙크』 편집부에 곧바로 스카우트 되어, 1995년부터 《피플》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C타운’이라는 가상의 도시가 있다. 도시의 흥망성쇠는 다음과 같다. 1915년 스미스 부인이 만든 ‘C타운 과일주스’가 조금씩 명성을 얻더니, 1950년대 전국적인 히트상품이 된다. 공장이 팽팽 돌자 일자리를 찾아 각지에서 여성들이 몰려들고, C타운은 전성기를 맞는다. 그러나 1980년대 과일주스 공장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며 도시는 점차 쇠락한다. 그렇게 십여 년이 지나자 사회가 배척한 아웃사이더와 예술가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한다. 《피플》은 그런 예술가 중 한 명인 ‘애니’를 중심으로 여성화된 여러 사람들, 즉 레즈비언, 비백인, 장애인들의 삶을 조명한다. 


《피플》이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서 억압받고 배제된 사람들, 때로 좌절할지언정 포기할 줄 모르는 여성에게 초점을 맞추되 서구를 배경 삼았다면, 《사춘기》는 바로 그 설정을 한국이라는 지정학적 영토와 접목한다. 주인공 ‘동휘’ ‘선옥’ ‘지영’ ‘인형’은 1980년대 학창시절을 보내고, 1990년대 대학에 입학한 스무 살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점 외에는 공통점이 없다. 이진경은 이들이 통과한 시대와 현재 머물고 있는 1990년대 대학가 분위기를 예리하게 포착하면서, 서로 다른 계급의 여성이 사회 속에서 겪는 혼란과 깨달음, 변화와 성장을 지적이면서도 예술적으로 풀어낸다. 


《사춘기》를 통해 이진경은 1990년대 대학가 풍경을 예리하게 포착하면서, 서로 다른 계급의 여성이 사회 속에서 겪는 혼란과 깨달음, 변화와 성장을 지적으로 풀어낸다.



그러나 그림도 세계관도 가볍지 않은데다, 주 독자층도 이십대 이상 성인이었기에 지속적인 연재처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다. 알다시피 1990년대 초중반 만화잡지 종류와 수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잡지들은 명확히 타깃과 컨섭을 잡고 세분화되기 시작했다. 1998년 『나인』 창간이 그 예다. 하지만 짧은 전성기를 끝으로 수많은 잡지들이 폐간되는데, 이때 살아남은 잡지 대개가 이른바 아동, 청소년지였다. 이로써 성인만화는 설 자리를 잃고, 작가들은 작품의 장르와 소재는 물론 그림체와 연출, 대사, 스타일까지 남아 있는 잡지의 성격과 독자 취향에 맞춰야만 했다. 『윙크』에서 시작한 《피플》이 7년간 『믹스』 『나인』 『나』를 떠돌고, 《등화관제》가 아직도 허공에 떠 있는 이유다. 


1997년 잠시 무크지 『MIX』의 편집장으로 있으면서 언더그라운드 작가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었고, 2001년 ‘코믹스투데이’에 못다 한 《사춘기》를 연재, 단행본 두 권을 출간했다. 2002년에는 『나』에 3개월간 올 컬러로 《C-town People》을 연재했으며, 『계간만화』에는 《사춘기》 번외편 격인 4부작 퀴어물을 그렸다. 2004년부터 ‘새’라는 이름으로 『오후』에 《저기 도깨비가 간다》를 그리다가, 잡지가 폐간되며 잠시 활동을 유예했다. 2007년에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기획창작만화 연재지원작으로 선정돼, 필명으로는 처음으로 단행본 《댄디 부치》를 냈다. 2008년 『그루』에서 중편 <NANZO>를 선보였으며, 2018년 현재 출판사 '유어마인드'와 《사춘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중 1권은 이미 재발행됐다.  



부록Ⅰ경계를 의심한 불온한 당신 ①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 - 이정애


부록Ⅰ경계를 의심한 불온한 당신 ③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 - 최인선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 : 여성/만화/작가 중심의 한국 만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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