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날도 가끔은

비도 오고 그래서

by 파스칼

나는 날씨에 유독 예민한 사람이긴 한 거 같아. 날씨가 좋을 때는 잠을 못 자도 활기가 넘치는데, 잠에서 깼을 때 구름 가득한 하늘만 보면 괜히 쳐지고 그래. 비 오는 날은 더더욱 그렇고. 누구나 다 그러려나.


어제오늘 비가 와서 기온도 제법 떨어지고, 최근 며칠에 비해 약간은 움츠러들게 되는 거 같아.


그래도 출근길에 비가 오지 않은 건 다행이야. 비가 오면 우산을 아무리 제대로 들어도 꼭 바지랑 신발은 젖고, 몸에는 습기 가득한 채로 출근하게 되더라. 그건 웬만하면 피하고 싶은 부분이야. 벌써 장마가 두려워지는 건 어떡하지.


의외로 비가 오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더라고. 비가 오면 기분이 시원하다고 하던데. 오랜만에 비가 오면 반갑기는 하지. 미세먼지 같은 찌든 때가 시원하게 싹 씻겨 내려가는 느낌? 우산을 들고 걸어 다닐 일만 없으면 비가 마냥 싫은 것만은 아니야. 뭔가 비가 올 때만 좋은 상황들이 있잖아.


비가 오는 날에는 창문에 부딪히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TV를 보는 거를 좋아해. 귤이나 과자 같은 거 하나씩 들고 와 앉아서 이불속에서 먹으면 그냥 행복하잖아. 공기는 약간 쌀쌀한데 바닥은 따뜻한 상태 뭔지 알지?


카페 창가에 앉아서 도로변에 빗방울이 사정없이 떨어지는걸 멍 때리면서 보고 있는 것도 왠지 모르게 좋아. 가끔씩 아버지랑 낚시를 갈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비가 오면 물 표면이 연속적으로 번지잖아. 그걸 보고 있으면 완전히 멍해지는 거 같아. 빗방울이 어디에 떨어지는 지 보고 있으면 대체적으로 그런가 봐. 그리고 꼭 물고기들이 수면 위로 입을 뻐끔뻐끔하는데 그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친구들이랑 파전이나 순댓국에 막걸리 한잔하는 것도 좋아. 평소에 잘 먹지도 않는 막걸리인데 이상하게 비가 오면 그렇게 맛있더라. 가끔은 전병이 생각나는 날도 있고. 괜히 그런 가게들이 모여있는 골목으로 가고 싶단 말이지. 가게 안은 적당하게 온기가 살짝 돌았으면 좋겠네.


또 뭐가 있을까?


비 올 때만 듣는 음악들도 좋아. 이상하게 비가 오면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는 노래들이 있어. 아마 다들 이런 노래가 하나씩은 다 있겠지? 나 같은 경우에는 아침에 비 오는 걸 보면 이상하게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부터 나오더라. 태어나기도 전의 노래인데 자동반사로 나오는 건 참 아이러니 하지.


가요도 좋지만 비 올 때 잔잔한 뉴에이지 음악들 있잖아. 그게 난 분위기에 취하기엔 딱인 거 같아. 적적하게 피아노 연주를 듣고 있으면 없는 감성도 생겨나는 느낌이야. 평소에는 잘 안 듣게 되는데, 이럴 땐 굳이 찾아서 듣게 되더라.


이런 얘기를 하나씩 하다 보니까 괜히 기분이 좋아지네.

왠지 비가 오는 날은 어떤 행위보다는 감성이 중요해지는 날인가 보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뭐, 가끔은 비도 좋은 거 같아.

keyword
이전 05화'현재 시점'으로 살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