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렇게 드라마를 좋아해
어릴 적부터 이상하게 드라마를 참 좋아했던 것 같아. 초등학생 때는 할머니 옆에 앉아서 아침 연속극을 보고 학교에 등교하고, 고등학생 때는 월화드라마 2개, 수목 드라마 2개, 주말드라마 2개 이렇게 무려 6개씩 본 적도 있었어. 나 같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 그래도 꽤 있으려나. 지금도 바쁜 와중에 1~2개의 드라마는 꼭 챙겨보는 편이야.
왜 그렇게까지 드라마를 좋아했을까? 마냥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오는 게 좋아서? 아니면 뭔가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라서 좋았던 걸까. 나이가 하나 둘 먹으면서 드라마를 보는 스스로에게 꽤나 물어봤던 거 같아. '너는 왜 그렇게 드라마가 좋냐?'
이제 와서 수많은 이유 중에서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는 건 '극 중에서는 언제나 현재'만 있기 때문이야. 어떤 시련이 오고, 위기가 오거나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기더라도 당장의 현실에 집중하고 있는 시점이 나는 좋았던 거 같아. 그게 내가 더욱 드라마에 몰입해서 보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싶더라고. 오로지 현재만이 존재하는 이야기.
현실에서는 현재에 집중하려 해도 새로운 사건들이 발생하고, 한 가지의 현재에만 빠져있기에는 너무 힘들잖아. 그러니까 온갖 핑계들을 가지고 와서 현재는 잠시 뒤도 제쳐두고, 하나 둘 자신의 모습을 포기하게 되고. 그런 일상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나에게 현재는 없고 과거와 미래만이 존재하게 되는 그런 거.
이런 걸 알아차렸다 해도 사실 인생은 드라마 같기는 하지만 드라마는 아니니까. 현재를 마음껏 누리려 해도 한 걸음 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걸음 앞을 보기도 바쁘고. 그래도 여전히 나는 드라마를 좋아하고, 드라마 속의 현재를 현실에서도 느껴보려고 꾸준히 노력하는 중이야.
그럴 때마다 내가 하는 방법이 있어. 한 걸음이 아니라 보이지도 않는 백 걸음 앞을 보고, 한 걸음 뒤가 아닌 걸음마를 시작했을부터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생각해보는 거. 그러다 보면 이상하게 모든 게 길고 멀게만 느껴져. 이게 공감이 되려나 모르겠네.
아직도 많이 남은 길을 생각하다 보면 마음의 조급함은 어느새 흐려지고, 여유로움이 조금은 생기면서 현재의 상황을 아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게 되더라. 아직 갈길도 먼데, 벌써부터 이것저것 포기하고 누릴 수 있는 것을 못 누리는 건 조금 아깝잖아. 그런다고 앞날이 크게 바뀔까 싶기도 하고. 사실 현실 도피라는 말이 우스울 만큼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내가 아침마다 스스로에게 현재에 좀 더 집중하면서 살아가기 위해 외치는 말.
'아직 시간은 많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