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다 인생에 시련이 한 번쯤은 있잖아. 나도 마찬가지야. 아주 조그만 시련들이 쌓이고 쌓여서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을까. 그중에서도 큰 시련들은 유독에 기억에 남는 거 같네.
얘기 잠깐 해줄까? 나는 크게는 세 번 정도의 시련이 있었던 거 같아. 물론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도 많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이해하고 들어줬으면 좋겠어.
어릴 적에는 부족함 없이 자랐어. 계속 그렇게 살았으면 지금쯤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고 생각해봤는데, 왠지 모르게 지금보다 더 좋은 모습은 아닐 거 같아. 첫 번째 시련은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었어.
아버지의 사업을 서울에서 지방으로 옮겨가게 됐는데, 그게 잘 안 풀린 거야. 덕분에 아버지는 서울로 혼자 돌아가서 사업을 이어가셨고, 어머니는 내가 입학할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 나와 6살이 된 동생을 키우게 되신 거지.
아직도 똑똑히 기억나네. 문방구 구석 조그만 방이 있었는데, 거기가 집이었어. 딱 3평이 조금 넘는 아주 작은 방. 거기서 온 가족이 달라붙어 잤었지. 화장실은 바로 옆에 있었는데, 변기가 없었어. 상상이 가려나 모르겠다. 문방구가 방앗간 건물에 있었는데, 볼일을 보려면 밖으로 이어지는 화장실을 지나서 갔어야 했어. 밤에는 어린 나이였던 나에게 그 짧은 길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를 거야. 그곳의 화장실 변기는 쪼그려 앉아서 볼일을 봐야 하는 것밖에 없었어.
초등학교 4학년 무렵 같은 지역에 있는 외갓집에서 잠깐 함께 살게 되었는데 앉아서 볼일을 보는 변기가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몰라. 이렇게 얘기하면 엄청 옛날 사람 같겠지만, 내 친구들은 그렇지는 않았으니까 오해하지 마.
엄마와 여동생, 나. 어린 자식들과 엄마가 걱정되는 아버지는 늘 집에 오실 때마다 이런 말씀을 하셨었어. '내가 없으면 네가 이 집안의 가장이야. 엄마랑 동생을 항상 잘 보살펴.' 이 말을 처음 들은 것이 불과 8살 때 일이었지. 그게 나의 가치관의 일부로 형성되었고, 나는 본의 아니게 남들보다는 책임감을 일찍 가지고 살아갔던 거 같아.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드디어 우리 가족은 다시 함께 살게 되었어. 가장 아버지가 필요할 나이의 공백은 거리가 느껴지기에 충분했던 거 같아. 처음에는 얼마나 눈치를 봤는지. 그래도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니까 안정감이 들더라. 그러면서 오히려 책임감은 내려놓게 되고, 친구들과 놀기에 바쁜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고등학교까지 이어졌지.
두 번째 위기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오고야 말았어. 아버지 사업이 힘들어지면서 적자가 나기 시작했고, 그 규모가 커져 학교 등록비와 급식비가 밀리고, 부모님의 휴대폰은 정지까지 간 거야. 학교에서는 나를 불러서 미지급된 급식비와 등록비에 대한 추궁이 시작됐어. 나는 해결을 해야만 했어.
당시의 S사에서는 '꿈'에 관한 자기소개서로 등록금을 지원해주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나는 그곳에 지원했어. 나도 성공하면 나 같은 학생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외치면서. 덕분에 남은 학교생활의 등록금은 전액 지원받게 되었고, 급식비 역시 급식실 아르바이트를 통해 해결됐지. 당시에는 힘들어서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 운이 좋았던 거였네.
그렇게 대학교에 진학하고 나니까 이번에는 등록금과 방세가 또 나를 붙잡더라. 집안 형편이 안 좋아진 고등학교 이후로 나는 집에서 돈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 그래도 새벽에 아르바이트하는 것만으로도 고등학생에는 충분했었는데, 대학교는 만만치가 않더라. 교재부터 온갖 모임과 부가적인 비용들조차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어.
덕분에 나는 대학교 내내 아르바이트를 새벽까지 해야만 했고, 방학 때는 하루 최대 3개까지 하고 잠을 2시간씩 자면서 했어. 그래야 학기 중에 대학생활을 즐기면서 학업에도 충실할 수 있으니까. 질이 안 좋은 사장님들도 많이 만나서 수모를 겪는 일도 적지 않았었지.
이렇게 이야기를 끝내면 진짜 힘들었다는 얘기밖에 안될 거야. 근데 나는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사실 즐거운 기억이 더 많아. 이 모든 긴긴 얘기 속의 나의 행복은 '사람'이었어. 나는 정말 인복이 많은 사람이었거든.
고등학교 때 등록금 지원 정책을 알아 봐주겠다 하시고, 끝까지 자기소개서를 검토해주셨던 선생님이 있었기 때문에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고, 부족하지만 용돈이라도 벌라며 고등학생을 써주는 걸로도 모자라 장사도 안되는데 보너스까지 주시던 치킨집 사장님이 있었기 때문에 무사히 학교생활을 보낼 수 있었어.
방학 때 집도 못 가고 아르바이트만 한다고 밥은 잘 챙겨 먹으라면서 명절에는 명절 음식을 챙겨주시고, 평소에 반찬까지 챙겨주시던 학사주점 사장님과 이모가 있었기 때문에 외롭지 않게 지낼 수 있었고, 그 모든 시간을 같이 함께 해준 좋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꿋꿋이 버텨나갈 수 있었어.
나는 그 사람들과 함께 해서 그 외의 작은 시련들도 가볍게 넘길 수 있었고, 충분히 행복하고 좋은 시간이었어. 감사하게도 말이야.
여전히 나는 주변의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거고.
더 좋은 사람들과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더 좋은 영향력을 많이 퍼뜨려서 모두가 힘들지만 행복하게 버텨나갈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