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는. 있.다._<산타는 없다>

_ by 유순희 : #산타 #크리스마스

by 유재은


산.타.는. 있.다.고 믿습니다. 아니, 다 큰 어른이 된 지금은 그렇게 믿.고. 싶.어.요. 그래서 그날의 진실을 아직도 엄마에게 묻지 않았지요. 5살 때쯤이었던 것 같아요. 6살이었을지도 모르고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산타 선물로 개수가 아주 많은 지구 색연필을 빌었습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이브에 갑자기 선물을 바꾸었어요. 늦게 자면 산타가 오지 않는다는 엄마의 말에 억지로 자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점점 말똥말똥해지는 한밤중이었지요. 문득 TV에서 광고하던 인형 이불 세트가 떠올랐어요. 그래서 잠들기 전 두 손을 모으고 조그맣게 소리 내어 기도했습니다.


크리스마스 날 아침, 기적이 일어났어요. 산타와 루돌프 썰매가 그려진 빨간 포장지 안에는 최신 인형 이불 세트가 있었던 거예요. 그 시절에는 대형 할인 마트는 물론이고 24시간 오픈하는 가게도 없었어요. 그 후 나는 믿고 또 믿었지요. 산.타.는. 있.다.고 말이에요.


변덕을 부린 아이에게 어떻게 산타는 그 선물을 줄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그만큼 그해에 착한 일을 많이 했을까요?), 그 시절 엄마 아빠에게 어떤 기억이 있는지는 알고 싶지 않지만(앞으로도 절대 묻지 않을 거예요.), 아무튼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그날을 비밀처럼 아직도 마음에 간직하고 있답니다. 산.타.는. 있.어.요. 다만 그 믿음이 믿고 싶다로 바뀌어 다시는 그날의 기쁨을 가질 수 없게 되었을 뿐이지요.


그래서였을까요. 종교도 없는 나는 늦여름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부터 크리스마스를 기다려왔어요. 하늘의 별이 세상으로 내려앉은 것 같은 반짝이들을 보면 지금도 아이처럼 좋아하고요. 정작 당일에는 특별할 것 없이 지나가더라도 기다리는 동안의 설렘은 오래도록 계속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산타는 없다>라니! 사실 매해 이 맘 때쯤이면 수업에 온 아이들이 산타 논쟁을 벌이는 걸 종종 보게 됩니다. "넌 아직도 산타가 있다고 믿어?"라고 말이지요. 어떤 때는 "선생님은 믿어!" 하면서 아이들에게 그날의 비밀을 이야기해주기도 했어요. 물론 놀라는 아이도 있지만 선생님의 말이니 참아주는 것 같은 애매한 표정을 짓기도 했지요.


이 책은 주인공이 동생에게 산타가 없다는 것을 말하려는 다짐으로 시작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동생이 계속 산타를 기다릴 거라면서요. 하지만 여덟 살인 동생은 반짝이 줄과 은방울, 금방울로 마당에 있는 은행나무를 크리스마스 트리로 만들려고 해요. 산타 선물을 못 받는 건 자신의 집이 지하에 있어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난 이때야 말로 동생에게 산타는 없다는 걸 말해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덜 믿고, 덜 슬퍼할 테니까요. 나에게도 누군가 그런 말을 미래 해 주었다면, 그 일이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남아 때때로 울고 싶을 만큼 마음이 아프지는 않을 거예요. (p.11)


입안에서만 맴돌던 말을 도로 집어넣은 채 소년은 동생을 도와 색색의 반짝이줄로 은행나무에게 근사한 옷을 입혀줍니다. 동생은 비밀이라며 선물을 적은 카드까지 걸어 놓지요. 남매는 4년 전 아빠의 마트 운영 실패 후 햇빛 한 조각도 들어오지 않는 곳으로 이사 왔어요. 게다가 엄마는 아프고 아빠는 집을 떠난 상태였습니다.


물론 소년도 산타를 믿었던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유치원에 온 산타가 준 선물 때문에 크게 실망하게 되었지요. 자신이 원했던 선물이 아닌, 여러 번 읽어서 낡아진 제 책이 들어있었기 때문이에요. 엄마가 준비해 보낸 선물이라는 걸 알게 된 소년은 화가 나고 슬펐어요. 집에 가던 길에 책을 버리기까지 했지만 정작 아픈 엄마에게는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그 후 소년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그날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그토록 동생에게 이야기해주려고 했던 것이지요.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자 동생은 반드시 산타를 보겠다며 현관문만 쳐다봅니다. 그런데 계단을 내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현관 앞에 그림자가 비칩니다. 아빠였어요. 커다란 가방을 들고 아빠가 돌아온 것이지요.


마당에 나가 은행나무를 올려다보던 소년은 사슴이 끌고 가는 썰매와 산타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아마도 동생이 소망한 선물은 아빠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남매에게도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일어난 거예요. 가슴이 뜨끈해지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반짝이는 도시를 보며 아직도 철없이 들뜨기만 하는 내게 다른 마음들도 돌아보라고 속 깊은 소년이 말해주는 듯합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크리스마스를 존중하고
일 년 내내 크리스마스를 지키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 <크리스마스 캐럴>, 찰스 디킨스



✐ 산타와 크리스마스에 대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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