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by 고정욱 : #소심함 #내향성
초등학교 3학년인 건우는 '비둘기'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과학시간에 구름이라는 대답을 해야 하는데 너무 떨려서 “구구구구”하고 말을 더듬었기 때문이지요. 사실 건우는 어릴 때 말도 빠른 편이었고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도 씩씩하게 잘하는 아이였어요. 그런 건우가 대인공포증으로 상담치료를 받게 된 데는 유치원 때의 한 사건이 원인이 되었습니다. 발표 잘하는 건우에게 질투가 난 민욱이가 건우가 발표할 때마다 일부러 재미없다고 말하며 아이들을 선동했는데, 어느 날 친한 친구 민지마저 웃는 걸 보고 자신감을 완전히 상실해 버린 거예요.
단순히 성격으로만 생각했던 건우의 엄마 아빠는 병원을 다녀온 후 건우의 마음이 치료될 수 있도록 애쓰며 응원해 줍니다. 그런 부모님을 생각하며 열심히 노력해 가던 건우는 우연히 민욱이를 다시 만나게 되는데, 민욱이는 그간의 깊은 상처로 어릴 때와 달리 위축된 모습이었어요. 그 후 서로의 아픔을 진솔하게 이야기 나누던 중 건우는 유치원 때의 일을 이야기하고, 그것에 대해 전혀 몰랐던 민욱이는 진심으로 사과를 합니다. 그런데 건우는 민욱이의 말에 당황하게 돼요. 민욱이는 그 시절 건우를 말 잘하는 아이로 기억하고 있었거든요.
친구 희재와 민욱이, 그리고 부모님의 격려를 받으며 웅변대회에 나가게 된 건우는 다른 친구들과 비슷한 주제로 준비했던 원고가 아닌, 자신만의 진솔한 이야기로 청중에게 감동을 안깁니다. 굳게 닫힌 문을 열고 눈부신 한 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것이지요.
“저는 오늘 떨리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왜냐하면 얼마 전까지 저는 말 못 하는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 맞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발표 한 번 하지 못하고, 남들 앞에만 서면 가슴이 터질 것처럼 뛰고 숨이 막히는 아이였습니다. (…) 선생님께서 아무리 격려해 주셔도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병원에 가서 상담도 받았습니다. (…) 저의 오랜 노력은 이렇게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기적이 아니라 매일매일 목표를 향해 쉬지 않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기적을 일구었습니다. (…) 지금이라도 늦지 않습니다. 불가능은 없습니다. 안 되는 일도 없습니다. 견딜 수 없을 만큼 노력하고 노력하면 분명 기적은 일어날 것입니다. 말 못 하는 제가 이렇게 웅변을 하게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노력이야말로 신이 주신 기적의 열쇠라고 저는 여러분에게 강력히 주장합니다!” (p.138~144)
소심쟁이. 어릴 때 내 모습도 건우와 닮았습니다. 무척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였지요. 어찌나 말이 없던지 피아노 학원 원장님이 간식 파티를 할 때 모두에게 조용히 하라며 내게만 발언권을 준 적도 있어요. 내 목소리가 어떤지 듣고 싶다고요. 그때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향할 때의 정적만큼은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건우와 조금 다른 점은 발표할 때는 떨려도 조곤조곤 이야기했다는 거예요. 하지만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하기 싫은 걸 하기도 하고, 갈등이 싫어서 감정을 참아내곤 했지요.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는 용케 참았어도 집에서는 울보였던 것 같아요. 낯가림도 많고 부끄러움으로 나서는 것을 꺼리던 아이가 가르치는 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건 이상하게도 아이들 앞에 서면 씩씩해진다는 거예요. 교생 실습 때도 평소 작은 목소리의 조용하던 내가 수업할 때면 달라진 모습을 보여 실습생들이 놀라기도 했어요. 그건 내가 아이들을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강의 중간중간에 할 유머와 타이밍까지 디테일하게 연습하며 오래 준비한 결과였지요.
믿어 주는 사람들과 결연한 의지 덕분에 건우는 힘겨운 일을 해냈습니다. 저 역시 아직도 어른들 사이에서는 이야기하는 게 쉽지 않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날아오르고 있고요. 이처럼 아이들이 용기 내어 변화해 나가는 것도 좋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자신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는 것도 멋진 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심한 자신의 모습이 괜찮다면 굳이 바꾸려고 애쓸 필요는 없어요. 세상에 모든 눈부신 소심쟁이를 응원합니다.
"소년은 다시 태어난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은 소년이 바로
있는 그대로의 자기가 되고자 하는 점이었다.
온갖 가능성을 늘어놓고
자기를 선택하라고 하더라도
다른 누구도 선택하지 않았으리라."
- <끝없는 이야기>, 미하엘 엔데
✐ 바꾸고 싶은 나 / 남과 다르지만 좋은 내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