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by 펄 벅 : #삶 #죽음
"그것에 대해서 지나치게 고민할 필요는 없어. 두려움에 떨 필요도 없고. 무엇을 무서워하면 우리는 항상 그것에 얽매이게 돼. 살아 있다는 것을 즐겨. 죽음을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거야. 그게 멋있게 사는, 삶의 방식이야." (p.29)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아빠의 말에 키노는 공감할 수 없었습니다. 어른에게도 쉽지 않은 것인데 아직 어린 키노가 회피하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하지요. 키노네 가족은 바닷가 근처 윗마을에 살면서 농사일을 했어요. 키노에게는 나이는 자신보다 많지만 누구보다 단짝 친구인 지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기잡이를 업으로 삼고 있던 지야네 가족은 바다를 적으로 생각했어요. 아랫마을의 다른 사람들처럼 집조차 바다를 등지고 지을 정도였으니까요. 키노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지요. 그날이 올 때까지는요.
화산이 폭발하고 거대한 해일이 아랫마을을 삼키던 날. 지야는 가족을 모두 잃었습니다. 지야만은 살아남아 대를 이어야 한다며 키노네로 올려 보내진 지야는 망연자실했습니다. 아랫마을은 마치 원래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순식간에 텅 비게 되었어요. 울부짖던 지야는 결국 자리에 눕고 마는데 그런 지야를 걱정하는 키노에게 아빠는 말합니다.
"언젠가는 다시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거다. 삶은 언제나 죽음보다 강하거든. 하지만 처음에는, 다시는 행복해질 수 없다고 여기겠지. 아마 한바탕 눈물을 쏟아내야 되겠지. 눈물은 우리 몸의 나쁜 감정을 씻어낸단다. 지야는 며칠 뒤에나 울음을 조금 그칠 수 있을 거다. 그때는 하루 중에 한 때만 울고, 말없이 앉아 있겠지. 그때도 우리는 예전처럼 일을 하고,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대해야 한다. 그럼 지야는 어느 날 배가 고프다는 걸 느낄 거고, 네 엄마가 정성 들여 음식을 해 먹이면 조금 힘을 차리겠지. 그리고 몸은 끊임없이 회복하기 위해 움직일 거야. 몸이 계속 새로운 피를 만들어 낸다는 말이다. 그러면 지야의 마음도 서서히 안정을 찾아 다시 생각하기 시작할 거야. 그럼, 지야도 다시 살 수 있어." (p.62)
아빠의 말처럼 키야는 결국 삶을 이어가게 됩니다. 자신을 양자로 삼고 싶어 하는 영주의 제의를 거절한 채 키노네 집에서 살다가 어른이 된 후 키노의 동생 세쯔와 결혼하게 되지요. 열심히 일해 모은 돈으로 산 자신만의 배를 타고 키노와 함께 바다로 나간 키야는 그때가 해일 전후를 통틀어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해일이 지야 삶의 모든 것을 쓸어간 날, 지야는 미래에 이런 날이 올 것을 상상할 수도 없었을 거예요. 지야의 조상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지야도 다시 아랫마을에 집을 지었지만 그는 달랐습니다. 바다를 마주 보며 맞설 수 있게 창문을 바다 쪽으로 내었으니까요.
1938년, <대지>로 노벨 문학상을 탄 '펄 벅'의 책이라며 건네는 순간, 아이들은 표지의 예스러움과 고전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입니다. 재미없을 것 같다며 다른 책을 원하기도 해요. 고전에 대한 선입견은 어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읽으면 좋을 것 같지만 왠지 자꾸만 돌아가고 싶은 책. 내용이 잘 담기지 않아도 공공장소에서 읽을 때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책. 하지만 그 깊은 매력을 한 번 맛보고 나면 고전의 숲에 빠지기도 해요. 그건 아이들도 마찬가지고요. 벽돌책 <모모>를 읽다가 밤을 새웠다면서 미하엘 엔데의 책을 찾아 읽게 된 아이도 있었지요. <해일>은 글밥은 많지 않은 책이에요. 하지만 그 무게는 여느 철학책 못지않다고 생각합니다.
내게도 인생의 해일이 마음을 쓸어간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담담히 이야기할 수 있는 건 키노 아빠의 말처럼 삶이 죽음보다 강하기 때문이겠지요. 앞으로도 어떤 거대한 해일이 몰려올지 알 수 없지만 가슴 시린 뭉클함을 자아낸 지야의 삶이 등대가 되어줄 것임을 믿습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이 폭풍이 지나가고 나면 인생이 얼마나 멋진지 알게 될 거야." (p.66)
"억장이 무너지고 마음이 어둑하더라도
그것이 좋아질 날을,
봄이 올 날을 조금만 기다려보면 어떨까.
모자란 점을 나무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디."
- <약속하건대, 분명 좋아질 거예요>, 나태주
✐ 내 인생의 해일과 그 이후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