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by 한정영 : #유기견
어느 추운 겨울 아침, 등굣길에 아이를 데려다주다가 길가에 있는 고양이를 보았습니다. 패딩으로 꽁꽁 싸매 입어도 칼날 같은 바람이 새어드는 날이었기에, 네 다리를 뻗고 잠자듯 옆으로 누워 있는 모습에 순간 철렁하는 마음이 들었지요. 차를 타고 지나가며 스치듯 보았지만 그 모습이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문득 떠오르곤 합니다.
무성한 나뭇잎들을 보기 힘들어져서 일까요. 집 근처 공원에는 여름보다 늦가을에 길냥이들이 더 눈에 띄곤 합니다. 얼마 전 갑자기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자 주차장에서도 젖은 털 때문에 더욱 파리하게 보이는 까만 고양이를 만났지요. 평소 고양이 눈을 바라보는 것도 무서워했었는데, 조카가 키우는 고양이의 집사를 가끔 해본 덕분에 이제는 지나가는 고양이들을 다정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홀쭉해 보이는 아이들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집안까지 따라오기도 하고요.
딸아이와 공원을 걷다가 산책 나온 개가 멈춰 서서 짖는 쪽을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큰 나무 앞에 고양이 한 마리가 다소곳이 앉아서 자신을 향해 짖는 개와 나무 위쪽을 번갈아 쳐다보는 게 보였어요. 주인이 리드줄을 잡고 있었지만 자신에게 달려들려고 하는 개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꿈쩍도 하지 않는 고양이가 신기했지요. 그런데 나무 위쪽을 보니 또 다른 고양이가 오르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상황에 어쩔 줄 몰라하며 앉아 있었습니다. 크기로 보아서는 모두 성묘 같은데 둘은 어떤 사이일지 궁금해졌어요. 섣불리 도와주려 하는 것보다 일단 사람이 멀리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한 바퀴 돌다가 다시 오기로 했지요. 그때도 두 고양이가 그대로 있다면 직접 도와줄 방법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다행히 다시 왔을 때는 무사히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딸과 함께 내내 고양이 얘기를 했어요. 위험한 상황에서도 나무 위에 있는 고양이를 버리고 가지 않은 그 고양이의 마음이 깊은 뭉클함을 자아냈으니까요.
동물들도 가족을 쉬 버리지 못하는데 가족 같은 반려 동물을 유기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게 했습니다. 이 책의 아저씨도 막내딸, 공주 동생이라고까지 부를 정도로 반려견 태풍이를 사랑했습니다. 그런 아저씨가 어느 날 오랜만의 산책에 소시지까지 주더니 멀리 공을 던지고 사라졌어요. 그것도 모르고 마냥 신나기만 하던 태풍이는 하수구의 냄새까지 참아가며 공을 물어왔지만 아저씨는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버려진 줄도 모르고 아저씨를 찾던 태풍이를 보며 사람들은 모두 놀라 피해요. 동네 아이들이 좀비개라고까지 부르게 된 데는 '태풍이만 아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습니다.
시골집 앞 억새가 불바다를 이루던 날, 태풍이는 불길에 갇힌 공주를 필사적으로 구해내지만 가족들은 태풍이가 공주를 물었다고 오해해요. 그날 이후 불에 그을려 흉한 모습이 된 태풍이는 마루 밑으로 쫓겨났는데, 결국에는 산책길에 버려진 거예요. 하지만 태풍이는 자신들의 입장만을 생각하며 반려동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그리워합니다.
"버려졌다는 사실을 되도록 빨리 받아들여야 해
그렇지 않으면 혼자 살기가 아주 힘들어져."(p.41)
새끼를 더 이상 낳지 못하자 버려진 유기견, 두리는 개 사냥꾼으로부터 태풍이를 구해주고 거리 생활에 대한 조언을 해줍니다. '버려진다는 건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이에요. 하지만 태풍이는 여느 개들처럼 잃어버린 자신을 주인이 찾고 있을 거라는 믿음을 버리지 못해요. 그러던 어느 날, 아들 가족이 미국으로 떠난 뒤 홀로 가난한 삶을 살아가던 할아버지를 만납니다. 할아버지는 무료 급식소에서 받은 음식을 태풍이에게 나눠 주며 손자에게 배운 '굿모닝'이라는 영어로 이름을 지어줘요. 그 후 버려짐으로 인한 외로움이라는 같은 아픔을 갖고 있던 태풍이와 할아버지는 쪽방에서 함께 살게 되는데, 할아버지는 태풍이에게 약속을 하자고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서로 지켜 주고, 곁에 있어주자고, 그게 가족이라고 말이에요.
그런데 태풍이는 공주의 냄새를 맡게 되자 차를 쫓아 도로 위를 달리다가 구조된 후 사흘 동안 건널목 앞에서 공주 가족을 기다립니다. 할아버지와의 약속을 어기게 된 것이지요. 그러다가 할아버지가 밥도 거르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두리의 말에 다시 할아버지에게 달려가요. 자신의 진정한 가족이 누구인지 비로소 깨닫게 된 거예요. 동화는 그날 밤 발생한 화재 속에서 불에 대한 트라우마를 이겨내며 두리와 함께 할아버지를 구해낸 태풍이의 이야기로 막을 내립니다. 이제 셋은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거예요. '태풍'은 지나가고, '굿모닝'만 있을 테니까요.
"동물들은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사는데도
저렇게 아름답구나.
무언가를 배우지 않아도 될만큼 완전하구나."
- <애쓰지 않아도>, 최은영
✐ 동물들에게 배움을 얻은 적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