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by 송언 : #평등 #역지사지
방과후학교 논술 수업을 할 때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습니다. 하얀 피부에 이목구비가 또렷한 소년이었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반에서도 선생님에게 반말을 하고 수업 활동에도 잘 따르지 않는, 소위 문제아라 불리는 아이였어요. 아이가 제게 처음으로 반말을 했던 날이 생각나네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아이는 무언가를 하자고 할 때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싫어. 내가 왜?"
제법 오래전의 일이라 초4나 초5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무튼 아이의 강한 어조에 다른 아이들의 시선은 일제히 내게로 쏠렸지요. 그 학생도 도발하듯 나를 쳐다보았고요. 어쩌면 그 아이는 선생님의 다음 행동이 어떨지 예상하고 있었을 거예요. 저 역시 말문이 턱 막힐 정도로 당황스러웠으나 최대한 감정을 싣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아이에게 그 상황에 대한 잘못을 짧고 분명히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수업을 이어갔지요. 그 후 그 아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 수행하게 했고 작은 일에도 구체적인 칭찬을 해주었어요.
그러다 보니 1분기가 지나기 전 어느 순간, 아이는 자연스럽게 존댓말을 쓰기 시작했고 반짝이는 눈으로 수업에 임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때 저는 더 깊이 느끼게 되었어요. 아이들은 믿어주는 만큼 자란다고요.
"이상해요, 여기만 오면 애들이 착해져요."
이렇게 제게 말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본디 아이들은 모두 선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유명한 악동이라도 아이는 아이니까요. 진심으로 관심을 표현하며 격려해 주면 아이들은 언제나 고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게 24년 동안 참 고마웠고요.
장도운만 보면 야단치고 벌세우고 꾸중하는 사람은 해마다 있었다. 장도웅네 담임 선생님 말이다. 장도웅은 학교에 가서 허구한 날 야단맞고 벌 서고 꾸중 듣는 게 중요한 일과다.
담임 선생님은 야단치고 벌세우고 꾸중하면 장도웅이 별안간 착한 아이가 되거나,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된다고 철석같이 믿는 듯했다. 아니, 어쩌면 장도웅을 일찌감치 포기했기 때문에, 끊임없이 야단치고 벌세우고 꾸중하는 것인지 모른다. 만약 장도웅을 손톱만큼이라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렇게까지 다그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p.8~9)
장 꼴찌, 장도운은 선생님에게 매일 혼나는 아이였어요. 그렇게 1학년 때부터 지내왔던 터라 오히려 그러지 않으면 몸이 근질근질하다고 할 정도였지요. 그러다가 4학년이 된 후 좀처럼 마음을 헤아릴 수 없는 털보 선생님을 만나요. 선생님은 꾸중하지도, 벌을 주지도 않았거든요. 게다가 자신을 으뜸 제자라고까지 말하며 공부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는 등의 특권을 주지요. 그러자 도운이는 처음으로 학교 다니는 일이 즐거워졌어요. 방과 후에는 운동장에서 놀다가 선생님이 뭐하는지 궁금해 반에 들러 싱거운 소리만 하다 가기도 하고요. 그렇게 1년을 잘 보낸 도운이는 5학년 스승의 날을 맞아 털보 선생님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물론 여전히 맞춤법은 자유롭지만요.
이 책의 묘미는 '입장을 바꿔 보는 책'이라는 데 있습니다. 중간 이후 책을 거꾸로 보면 모범생 서 반장, 서정민 이야기가 나와요. 정민이는 도운이와는 아주 정 반대의 아이예요. 공부도 잘하고 매년 선생님의 칭찬과 사랑을 독차지해서 반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많아요. 그런 정민이에게 털보 선생님은 이상하게만 느껴졌어요. 꼴찌 도운이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자신에게는 큰 칭찬도 없었지요. 그러자 아이들도 더 이상 정민이에게 부러워하는 눈빛을 보내지 않았고, 정민이는 외롭고 괴로운 학교 생활을 하게 돼요. 결국 정민이는 선생님의 칭찬을 받고자 일기장에 선생님에 관한 시도 쓰고 편지도 보내고 근사한 스승의 날 파티도 주도했지만 선생님의 반응은 여전히 평범했어요. 그러자 정민이는 선생님이 자신을 싫어한다고 확신하며 선생님에게 자신의 속상한 마음을 야무지게 말하지요. 그런데 선생님은 정민이를 미워하지도 않고 나무랄 데가 없는 아이라고 말해요. 다만 그동안은 다른 일 때문에 고민이 많아 신경을 써주지 못했다며 사과를 합니다.
"4학년 1반 꼴찌 장도웅도 말이야, 선생님한테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반 아이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을 뿐이야.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을 수 있는 거잖아. 꼴찌라고 미움받는 게 당연하고, 반장이라고 무조건 칭찬받아야 한다면, 그보다 더 불공평한 일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이냐." (p.61)
선생님의 진심을 알게 된 정민이는 한바탕을 울음을 터뜨리고 난 후 5학년으로 올라가기 며칠 전에 선생님에게 편지를 써서 마음을 전해요. 매번 모두에게 주목받던 정민이는 도운이와 같은 친구의 마음을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더욱 멋진 반장이 될 거예요. 우리 모두는 누구나 사랑받을 수 있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 최소한 10여 년은
진심 어린 한 사람이 필요하다.
한순간이라도 그런 사람이, 사랑이
이 세상에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 힘으로 수백 번 쓰러지려는 순간에
다시 일어설 것을 나는 믿는다.
- <그 아이만의 단 한 사람>, 권영애
✐ 버티기 어려운 시간 속에서 나에게 힘이 되어 준 사람은 누구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