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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은 Jan 31. 2024

귀 기울이기_<말 안 하기 게임>

_ by 앤드루 클레먼츠 : #경청 #침묵


말 잘하는 사람이 주목받는 세상. 말도, 글도 뭐든지 빨리, 많이 알아야 하는 시대 속에 살아가고 있어서일까요.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며 가장 크게 절감하는 것은 갈수록 아이들이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는데 인색하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말하기를 부끄러워하던 아이들이 많았다면, 요즘에는 제 말하기에는 즐거운 모습을 보여도 상대의 말에는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되는 것 같아요.


한때는 상대의 말에 무조건 “응, 아니야.”라는 말로 응대하는 것이 학생들 사이에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친구의 놀림에 맞서는 것으로 사용될 때도 있지만 보통은 의미 없이 대꾸하는 말이었지요. 최근에도 "어쩌라고.", "응, TMI." 등과 같은 말만을 서로 주고받는 아이들의 대화를 보게 되는데, 소통의 단절이 그 세대만의 또 다른 소통이라는 생각에 씁쓸해지기도 합니다.


크리스토퍼상을 수상한 <프린들 주세요>로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작가 앤드루 클레먼츠는 학생들을 가르친 자신의 경험을 작품 속 빛나는 이야기로 구현해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말 안 하기 게임>에서도 유쾌한 감동으로 풀어지고 있어요. 맞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침묵 게임에 관한 이야기이에요. 초등학교에 오랜만에 가 본 사람이라면 그 왁자지껄함에 놀라게 됩니다. 뿜어내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아이들이 한꺼번에 말을 쏟아놓는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는 상상을 초월하지요. 개중에는 수업 시간에 조차 주목받고 싶어 하는 아이들도 있어요. 그러다 보니 침묵 게임으로 수업에 집중을 유도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레이크턴 초등학교에도 못 말리는 왕수다쟁이들로 통하는 5학년 아이들이 있어요. 그런 아이들이 어느 날부터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물론 수업에 예의를 갖추기 위해 학교에서 만큼은 선생님의 질문에 세 마디로 답하는 규칙을 지켜요. 데이브는 수년간 매주에 하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간디를 따라 하면 자신에게도 마음에 질서가 생길지 궁금해져 말을 하지 않다가, 린지와 여자아이들의 수다를 듣다 못해 남녀 침묵 대결을 제안합니다. 그렇게 해서 이틀 동안 125명의 아이들의 엉뚱한 대결이 시작돼요.


아이들의 침묵에 대처하는 과목별 선생님들의 에피소드 또한 흥미롭습니다. 특히 국어 교과의 버튼 선생님은 아이들의 규칙을 금방 눈치챈 후 이 과정을 즐기며 자신의 연구에 대한 자료로 삼기도 해요. 학교 식당에 음료수 자판기 두는 것에 대한 '세 마디' 토론까지 진행하면서요.


"음료수는...... 몸에 나빠."
레이첼이 고개를 젓고 말했다.
"나쁘지 않아. 맛있어."
에릭이 얼굴을 찡그렸다.
"설탕이 너무 많아."
레이첼이 말했다.
"나는 설탕이 좋아."
에릭이 고개를 저었다.
"설탕은 치아를 썩혀."
레이첼이 활짝 웃었다.
"다 그렇지는 않아."
에릭이 말했다.
"우유가 더 나아."
레이첼이 어깨를 으쓱했다.
"무설탕 음료수가 있잖아."
에릭이 말했다.
"하지만...... 영양이 부족해."
레이첼이 팔을 들고 근육을 보여 주었다.
"채소를 먹으면 돼."
에릭이 말했다.
"모두가 그러지는 않아."
 레이첼이 말했다.
"스스로 선택하는 거야."
에릭이 말했다.
"음료수는...... 값이 비싸."
레이첼이 호주머니에서 지폐 한 장을 꺼냈다.
"난 돈이 많아."
에릭이 말했다.
"돈 낭비는 나빠."
레이첼이 말했다.
"그건 내 자유야."
에릭이 고개를 저었다.
"학교에서는 안 돼."
레이첼이 코웃음을 쳤다.
"안 되지 않아!"
두 아이의 토론은 오 분 동안 쉬지 않고 이어졌다
모든 학생이 토론에 흠뻑 빠져들었다. 물론 버튼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p.141~143)


너무나도 흥미진진해서 아이들과 당장 해보고 싶었던 토론이었습니다. 어쩌면 경청하기는 진정한 소통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게 아닐까요. 아이들은 침묵 대결을 통해 그동안 얼마나 자신들이 생각없이 말 해왔는지 알게 되고, 침묵이라는 낯선 경험 속에서 타인의 말을 경청한 후 깊은 생각을 통해 꼭 필요한 세 마디 말 꺼내는 법을 스스로 깨달아 갑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듣기 위해서는 우선 타인을 향한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열린 마음으로 상대의 아픔과 기쁨을 마주할 때 비로소 그 둘 사이에는 진정한 공감과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그렇게 받아들인 타인의 이야기는 자아를 확장시킵니다.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기,  참된 경청이야말로 공감 불능의 현 세대에 가장 절실한 것이 아닐까요.






경청, 잘 듣는 일은
다른 사람의 머릿속과
가슴속으로 들어가 보는 일이며
그 사람의 영혼과 교감하는 일이다.

타인의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자신의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확장시킬 수 있는 듣기야말로
가장 높은 듣기의 경지라고 할 것이다.

그렇게 주의 깊게 들은 내용은
자기 속에서 어떤 변용의 과정을 거쳐
언젠가는 자신이 살아가고 말하고
글쓰는 일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 <파리일기>, 정수복



✐ '말 안 하기 게임'은 _____________________  (세 마디로 정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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