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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은 Feb 07. 2024

진정한 작가_<카프카와 인형의 여행>

_ by 조르디 시에라 이 파브라 : #글쓰기 #진정한 작가


지난 연말부터 기다려왔던 영화 <웡카>를 보았습니다. 영화관을 나서며 현실과의 간극으로 허한 마음이 드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는데 왜 그런지 알 것 같더군요. 그래도 달콤하고 따뜻한 영상과 음악 덕분에 보는 내내 벅차오르는 마음이 들었어요. 다음 날까지도 쉬 가시지 않는 여운은 <카프카와 인형의 여행>이라는 책으로 이어졌습니다. 웡카의 세상이 현실에서도 이어지는 느낌이었지요.



프란츠 카프카는 '카프카적'이라는 말이 독일어 사전에도 있을 만큼 커다란 문학적 영향력을 미치는 20세기 위대한 작가입니다. 우리에게는 <변신>과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라는 말로 잘 알려져 있지요.


카프카의 삶은 어느 날 아침 벌레로 변해 가장으로서의 쓸모를 다한 <변신> 속 그레고르 잠자의 비참한 삶만큼이나 순탄하지 않았어요. 지독한 현실주의자인 아버지와의 갈등과 유대인으로서의 한계 속에서 폐결핵까지 그를 괴롭혔지요. 41세의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923년, 그는 슈테글리츠 공원에서 한 소녀를 만나게 됩니다. 아끼는 인형 브리지다를 잃어버려 울고 있는 엘시에게 카프카는 자신이 인형 우편배달부라고 말하며 바빠서 놓고 나온 브리지다의 편지를 내일 가져다준다고 말해요. 브리지다는 사람들처럼 독립할 나이가 되어 엘시를 떠났을 뿐이라고 하면서요.


아이가 그 말을 믿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의 말투가 마음에 걸리는 것 없이 명랑하면서도 설득력 있고 단호하고 적절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몇 초 동안에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 아이가 그를 미친 사람 취급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또한 희망을 가질 수도 있었다.
희망이 현실보다 더 필요했다. (p.25)


이후 카프카는 집필하던 작품들도 뒤로 미룬 채 여행자의 인형 이야기를 창조해 냅니다. 영감을 얻기 위해 이웃집에 방문해 아이 인형을 잠시 살펴보기까지 했던 카프카는 출산의 고통 끝에 편지를 완성한 후 영국 우표까지 봉투에 붙여 다음 날 공원에서 엘시에게 건네지요. 이후 편지는 3주 동안 이어졌고, 엘시의 사랑 덕분에 용기를 얻어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브리지다는 탄자니아에서 만난 탐험가 구스타브와 결혼하며 마지막 편지를 고합니다. 그로 인해 엘시도 행복하게 성장한 브리지다를 기쁜 마음으로 응원해 주며 떠나보낼 수 있었어요. 카프카는 그런 엘시에게 브리지다에게서 온 마지막 편지와 예쁜 새 인형을 선물로 줍니다.


그 편지가 없다면 엘사는 자신의 인형에게 버림받았다는 것 때문에 매우 힘든 상처를 안고 살아갈 것이다. 일이 잘못된다면 엘시는 거부당했다는 실패감을 영혼에 간직하게 될 것이다. 만일 약속을 지키지 않고 다음 날 약속한 편지 없이 약속 장소에 나타난다면 엘시는 절대로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될 것이다. 희망의 놀이를 하게 된 것이었다. (p.34)


카프카와 소녀의 이야기는 짙은 감동을 자아냅니다. 사실 이것은 카프카의 연인이었던 도라 디만트에 의해 알려졌어요. 이후 카프카의 연구자인 클라우스 바겐바흐가 그 이야기 속 소녀가 누구인지, 또한 카프카가 남긴 3주간의 편지는 어떤 내용이었는지 알기 위해 여러 해 동안 노력했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 동화는 '조르디 시에라 이 파브라'가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재창조해 낸 것이고요. 작가는 자신이 카프카의 작품 중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작품이었을 편지를 창작하고 상상의 결말을 내는 파행을 저질렀다고 했지만, 카프카의 위대한 작품 뒤에 가려진 지극히도 인간적인 아름다운 이야기를 알 수 있게 해 준 작가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인형 우편배달부, 카프카는 작가의 진정한 면모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을 향한 진심 어린 작가의 펜이 누군가의 삶을 일으키고, 또 그것은 수많은 이들의 마음에 닿아 살아감을 헤아리게 하니까요.







작가는 가슴에 구멍이 난 사람이다.
그 구멍을 언어로 메운다.


-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 '진정한 작가'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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