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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은 Feb 14. 2024

무용하지 않아요_<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

_ by 김려령 : #무용 #어른과 아이


우리와 장우네는 왜 이렇게 다를까. 장우네는 우리 삼촌 같은 사람이 없어서일까. 엄마가 주위에 나쁜 사람만 없어도 반은 성공한 거라고 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쁜 삼촌 때문에 벌써 반이나 실패한 걸까. 순간 나도 모르게 아빠가 빨리 삼촌을 잡길 바랐다. 그래야 실패한 반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p.70)


주위를 보면 친인척 중 이런 사람이 하나쯤 있습니다.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며 다른 이들의 삶을 흔들어 놓는 사람. 현성이네 삼촌도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는 추운 겨울 형의 가족을 버려진 비닐하우스 꽃집에서 살아가게 버려두고 사라졌습니다. 아빠는 그런 삼촌을 찾기 위해 직장도 그만둔 채 집을 나갔고, 그로 인해 현성이는 '가만히 있어도 속상한 집' 속에서 고된 일상을 살아가게 되었어요.


속상한 것도 힘든 거라면 힘든 게 맞다. 내 방도 없고, 씻는 것도 불편하고, 화장실도 불편하다. 이 집은 불편한 것투성이다. 그렇다고 이 집에 사는 것이 되게 힘들지도 않다. 나한테 이 집은 힘들다기보다는 속상한 집이다. 엄마 아빠가 싸운 것도 속상하고, 아빠가 나간 것도 속상하고, 엄마가 애써 밝은 척하는 것도 속상하다. 집을 마구 두드리는 빗소리가 속상하고, 흙무덤에 자란 풀들이 죽어 버려서 속상하다. 이제는 아빠한테 집으로 오라고 하지 못해서 또 속상하다. 이 집은 정말 가만히 있어도 속상한 집이다. (p.77)


힘들다기보다는 속상하다. 속상한 게 힘든 거라면 힘든 게 맞다. 현성이의 생각이 평소 나와 닮아서 애잔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꼭 안아 주고 싶은 나의 내면 아이 같았어요. 버티기 쉽지 않은 삶 속에서 현성이는 장우라는 친구를 만나며 그들만의 안식처를 만들어 갑니다


아빠가 요리할 때 박력이 넘친다며 수제비용 밀가루를 박력분으로 선택하는 장우 덕분에 현성이는 으스스한 이웃 비닐하우스들을 처음으로 둘러보게 돼요. 이후 헤드 렌턴 등의 등산 장비를 챙겨서 여름방학에 자세히 살펴보자던 장우는 임신한 새엄마가 집으로 들어오자 한 비닐하우스에서 낮동안 지내고 되었고, 뒤늦게 그것을 알게 된 현성이와 둘만의 아지트를 만들어요.


그런데 씩씩하고 밝아 보이는 장우에게도 현성이네 삼촌 같은 형이 있었어요. 부모님의 이혼과 새엄마와의 합가, 가출한 형의 괴롭힘. 현성이에게는 선한 부모님이 있어 지난한 삶도 버틸 수 있었지만, 장우에게는 쉴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장우는 구독자가 열아홉 명뿐인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현성이와 찍은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이라는 영상을 올립니다. 현성이는 그날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실컷 웃은 날'이었다고 말하고요.


영화로도 만들어진 <완득이>와 <우아한 거짓말> 등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 김려령은 작가의 말에서 '어린이는 나라의 기둥'이라는 말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힙니다. 그 시대의 기둥이라는 어른이 짊어져야 할 책임을 어린이에게 강요해 아이들이 늙은 어린이가 될까 걱정이 된다고 하면서요. 작가는 어른이라는 기둥을 기반으로 어린이는 마음껏 뛰어놀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구구절절 공감하게 되는 문장들이었어요.


무용한 시간들을 비판받고 꽉 채워진 스케줄 속에 허덕이는 아이들. '배움을 놓는다'는 뜻의 한자어를 지닌 '방학(放學)' 동안에도 더욱 바쁘게 지내야만 하는 아이들. 힘겨운 가정사에도 자신만의 자리를 만들어가며 스스로를 키워가는 아이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실컷 웃는 날'들이 많아질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어린 시절은 어린이 자신보다
어른에 의해 만들어지는
부분이 많은 구간이다.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치지만
수정할 수도, 지어낼 수도,
마음대로 잊을 수도 없다.

어린 시절의 어떤 부분은
어른이 되고서도
한참 뒤에야 그 의미를 알게 된다.
시차는 추억을 더 애틋하게 만들고
상처를 더 치명적인 것으로 만든다.


-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 어린 시절, 나를 이끌어 주던 어른이 있었나요?

    나는 지금 그런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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