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재은 Jan 24. 2024

지나가는 구름_<행운 바이러스>

_ by 최형미 : #행운


행운을 기대하지 않는 편입니다. 내 삶에 있어 요행은 없었으니까요. 주변에는 무언가에 당첨이 되거나 예기치 않은 행운에 기뻐하는 지인들도 있었는데, 그런 일이 내게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내가 노력하는 만큼 채워갈 수 있는 삶이었어요. 때로는 그조차도 이루어지지 않아 무기력해질 때도 있지만, 대체로 그렇게 이어지는 살아감에 감사해야 함을 또 배우게 되는 인생입니다.


단정한 생김새와 청아한 빛깔이 좋아 여러 번 찾아보려고 했던 네 잎 클로버도 마찬가지였어요. 같은 장소를 둘러보아도 매번 빈손인 나와는 달리 엄마는 클로버 찾기의 달인이셨죠. 덕분에 나는 엄마에게서 받은 것들을 코팅해서 간직했다가 누군가를 향한 편지 속에 온마음을 담아 넣어 주기도 했습니다. 고이 아껴두었다가 삶이 고운 이들을 만날 때 주기로 마음먹었는데 이십 대가 가기 전에 모두 건네게 되었네요. 아마도 그 시절의 사람들이 참 좋았나 봐요.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의 상징이라고 하는데, 내게는 이렇게 소중한 사람들의 행복을 비는 마음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행운(幸運)은 '좋은 운수'라는 본래의 뜻보다 동음이의어인 '지나가는 구름'(行雲 )이라는 의미가 더 어울리는 것 같네요. 아무리 매혹적인 행운이라도 어느 순간 흘러가며 사라지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늘 누군가의 배경처럼 살아가던 우리의 주인공 제훈이는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어느 날 찾아온 행운의 달콤함에 푹 빠져들게 되지요. 우연히 인형 뽑기에 성공하면서 친척들 사이에서 관심을 받게 된 후 친구들 사이에서도 주목을 받게 되자 제훈이는 없는 행운까지 만들어 냅니다. 한참을 뽑아 성공한 인형 뽑기를 마치 한 번에 성공한 것처럼 허세를 부리면서 말이에요.


행운 바이러스는 제훈이의 마음 깊이 침투하여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 좋아하던 세나에게 관심도 얻고 온오프라인에서 아이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게 되었잖아요. 결국 제훈이는 인형 뽑기의 늪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게 주인이 기계를 누군가가 잘 뽑히도록 조작해 놓은 게 아니냐며 경찰에 신고를 하게 돼요. 그 후 한껏 부풀었던 제훈이의 인기는 한순간에 사그라들고 맙니다. 제훈이의 잘잘못과는 상관없이 일순간에 등 돌리는 아이들을 보며 제훈이는 인기가 없을 때보다 더 외로웠을 거예요. 이 깊은 상처를 통해 진짜 우정이 무엇인지도 생각하게 됐을 거고요.


"실패를 겪다 보면 마음도 약해지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어서 내 노력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기대고 싶어질 때가 있어.
그런데 내가 노력한 것 이상 바라는 건
사실 행운이 아니라 요행 아닐까?

행운은 노력한 사람한테
힘내라고 주어지는 선물이라면,
노력한 것보다 더 많은 걸 바랐던
사람에게 찾아온 행운은 요행 같아."

_ (p.123)


다행히도 제훈이 곁에는 좋은 어른이 있었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제훈이는 글쓰기라는 자신만의 재능을 알게 되고 그로 인해 노력하여 얻어가는 '진짜 행운'을 경험하게 되었으니까요. 행운은 노력한 사람에게 힘내라고 주어지는 선물이라니, 갑자기 내 마음에도 눈부신 별 하나가 반짝입니다. 새롭게 주어진 한 해를 걸어갈 작은 용기가 솟네요. 내가 좋아하고 어찌 보면 유일하게 잘할 수 있는 '묵묵함'의 길로 말이에요.





행운과 불운은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삶의 해변에 밀려드는
각기 다른 모양의 파도가 아닌가 싶다.


- <보편의 단어>, 이기주



✐ 나에게 있어 행운은...



이전 13화 우리의 영웅_<낫짱이 간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