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재은 May 15. 2024

오 캡틴, 마이 캡틴! _ <선생님이 사라지는 학교>

_ by 박현숙 : #선생님


‘선생님’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존 키팅'. 그는 평생 내 가슴에 롤 모델로 자리한 선생님입니다. 영화가 개봉된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기에 학생들의 꿈, 용기, 도전, 우정이 더욱더 깊은 공감을 자아내며 마음을 울렸어요. 영화를 보는 내내 웰튼 아카데미의 학생들 속에서 나와 친구들의 모습을 보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았지만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결국 자살을 선택한 닐 페리의 모습에 한참을 울며 기성세대와 현실에 대한 저항과 분노를 가졌습니다.     


 

배우 '로빈 윌리암스'의 추모 2주년을 맞아 26년 만에 영화가 재개봉되었을 때 나는 중학생과 초등학생의 딸을 둔 엄마로서 존 키팅을 다시 만났는데 캡틴은 여전히 삶의 스승이 되어 주었어요. 볼 때마다 새롭게 발견되는 수많은 명장면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첫 수업 때입니다. 첫 수업은 학생에게도 선생님에게도 각기 나름의 의미가 있어요. 그렇기에 캡틴의 수업은 보다 깊은 뭉클함을 안겼습니다. 갑자기 교실 밖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졸업생들의 빛바랜 사진들을 함께 보는 캡틴. 한 때는 열정과 꿈으로 누구보다도 치열했던 그들의 삶이었지만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그들은 그저 사진 한 장으로 남았습니다. 그것은 오래전 영화를 보던 나와 현재의 내 모습을 오버랩시키며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게 했습니다.    



"현재를 즐겨라. 시간이 있을 때 장미 봉오리를 거두라. 왜냐하면 우리는 반드시 죽기 때문이지. 믿거나 말거나 여기 있는 우리 각자 모두는 언젠가는 숨이 멎고 차가워져서 죽게 되지. 자, 귀를 기울여 봐, 들리나? 카르페디엠. 현재를 즐겨라! 인생을 독특하게 살아라!"


지금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살라는 뜻의 라틴어, 카르페디엠(carpe diem).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남아 있는 말. 사랑, 가난, 실패, 질병이라는 다양한 운명의 파도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카르페디엠'입니다. 견디기 어려운 순간이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삶. 그렇게 버티어 내는 것은 인간만이 해낼 수 있는 소중한 힘입니다.   

 

    

교탁 위에 서서 학생들을 당황하게 만든 캡틴은 또 다른 삶의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어떤 것을 향한 시선의 층위가 달라짐에 따라 인생은 어둠에 잠식되거나 빛의 환희를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이지요. 개봉 당시에는 우리 사회에 이슈가 되어 변화의 바람도 불게 했는데, 30년이 지난 우리의 교육 현실 역시 아직 그때와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존 키팅과 같은 선생님들이 하나둘 학교를 떠나는 세상이 있습니다. 바로 <선생님이 사라지는 학교>입니다. 가면초등학교 5학년 태석이네 담임선생님도 한 달 전에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었어요.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이유를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전국적으로 하루에도 수백 명 정도의 선생님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있으니 당연한 상황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지요.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던 태석이의 아빠도 학교를 나왔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선생님의 꿈을 이루었지만 학교에서 그가 하는 일이란 고작 잠자는 학생들을 깨우며 홀로 수업을 하고 아이들의 싸움이나 말리는 거였어요. 아이들은 이미 학원에서 다 배운 것이라며 학교에서는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가면초등학교 친구들은 대부분 새롭게 생기는 병 때문에 약을 먹었고, 선생님들이 사라진 학교에서 교감선생님은 홀로 고군분투하며 전교생을 챙겨야 했습니다. 외국인 보조교사가 새로 오긴 했지만 그녀 역시 다른 보조교사들과 마찬가지로 며칠도 지나지 않아 달아났습니다. 선생님이 없는 학교는 크고 작은 싸움이 끊이지 않는 무법천지로 변해갔기 때문이에요. 게다가 말도 안 되는 이기적인 이유로 엄마들은 학교를 찾아와 항의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태석이는 아빠를 위해 학교 벽에 '선생님 급 모집'이라는 종이를 도배하듯 붙여놓습니다. 가족 몰래 건물 벽에 매달려 페인트 칠을 하다가 매일 다치고 있는 아빠가 벽보를 보고 마음을 돌리길 바랐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비가 쏟아지던 날, 비에 젖은 수상한 남자가 벽보 한 장을 가지고 태석이 반에 들어옵니다. 말투부터 이상한 남자의 행동을 보며 아이들은 두려움이 조금씩 기대로 바뀌어 가고 급기야는 그를 '아령님'이라고 부르며 지켜주려고까지 합니다. 아령님 덕분에 아이들은 처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에 가게 되고 수업 시간에도 충실한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아령님은 아이들의 진짜 담임선생님은 될 수 없었지만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필요한 이유와 학교 가는 이유에 대한 깨달음을 주었어요. 아마도 태석의 벽보 초대장을 보여주며 학교로 돌아가겠다는 아빠가 태석이의 담임선생님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는 아이들에게 캡틴, 존 키팅 선생님이 되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른이 되면 바꾸어지리라 생각했던 것들은 여전히 거대한 벽으로 자리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캡틴을 닮은 아령님과 태석이 아빠 같은 선생님이 조금씩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 길 위에서 우리도 할 수 있는 일을 향해 나아가야겠지요. 세상에 수많은 “오 캡틴, 마이 캡틴!”이 사라지면 안 되니까요.






“이 위에 선 이유는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려는 거야. 이 위에서 보면 세상이 무척 다르게 보이지. 어떤 사실을 안다고 생각할 땐 그것을 다른 시각에서 봐라. 틀리고 바보 같은 일일 지라도 시도를 해봐야 해. 책을 읽을 때 저자의 생각만 고려하지 말고 너희들의 생각도 고려해 보도록 해. 너희들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투쟁해야 해. 늦게 시작할수록 찾기가 더 힘들 것이다.”


- <죽은 시인의 사회>, 존 키팅



✐ 내 인생 최고의 선생님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써 보세요.



이전 29화 너랑나랑별랑 _ <친구 주문 완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