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재은 Apr 24. 2024

진정한 여행 _ <부모 없는 12일>

_ by  소피 리갈 굴라르 : #재결합 가정, #부모와 아이


마들렌은 자신만의 인용문 사전을 가지고 있는 특별한 소녀입니다. 철학적 사유가 깊은 마들렌은 그곳에 좋은 문장들을 모아 스스로의 생각을 버무려 글을 써 나가곤 했어요. 자신이 아기였을 때 세상을 떠난 아빠와 홀로 남은 엄마 사이에서 6년 동안 외동딸로 지내며 혼자만의 시간 속에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힘을 얻는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엄마가 재결합 가정을 이룬 후 뜻하지 않게 트리스탕과 틸리오라는 말썽꾸러기 동생들이 생기고, 새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남동생 시드니를 깜짝 선물로 받게 됐어요. 그런 마들렌에게 일생일대의 큰 시련이 닥칩니다.


엄마와 새아빠가 캄보디아로 여행을 떠나며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돌봐주기로 했는데 문제가 생긴 거예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날짜를 착각해 그만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게 되었지요. 덕분에 아이들은 '부모 없는 12일'이라는 설렘의 시간을 맞습니다. 물론 당장 엄마에게 그 사실을 알릴 수도 있지만 그러면 엄마도 아이 없는 첫 여행에서 바로 돌아와야 하고, 아이들에게도 결코 있을 수 없는 자유의 시간이 사라지게 되니 그렇게 하지 못해요. 하지만 고요한 자유를 꿈꾸던 마들렌은 이내 챙겨줘야 할 세 폭탄들 때문에 알리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됩니다.


청소와 빨래, 장보기와 밥 차리기 같은 귀찮은 일들은 물론이거니와 밤새 게임과 전쟁놀이를 하며 거실과 부엌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는 동생들을 챙겨야 하는 등 끔찍한 일상을 마주한 마들렌과는 달리 순수한 시드니와 대책 없는 일만 저지르는 트리틸리 형제는 자유를 만끽합니다. 그 모든 것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마들렌은 그동안 가깝지 않았던 동생들에게 새로운 감정을 느끼다가, 마지막 나흘 동안의 일들로 인해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됩니다. 그 기간 동안 아이들은 매일 한 명의 일상을 하루씩 경험해 봤어요. 이해할 수 없었던 서로의 가치관과 일상을 온전히 나누는 동안 아이들은 각자 새로운 관심과 재능을 알아가며 서로를 이해하게 됩니다. 재결합 가족도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하고요. 한 배를 타고 떠난 모험 같은 여행이 네 아이들을 성장하게 한 것이지요.


"나는 아빠, 엄마, 형과 나만이 가족이라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런데 부모님이 이혼해서 나는 아빠와 엄마 사이를 오가며 살게 됐다. 그리고 아빠는 새엄마를 만나 마들렌 누나가 생기고, 시드니가 태어나 가족이 커졌다. 그 후로 나는 가족이란 항상 함께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가족은 친부모, 계부모, 친형제자매, 이복형제자매이다. 가족은 함께 공유하고, 이따금 서로 사랑하기도 하는 사람들이다." _ ('틸리오'의 글, p.120)


"프랑스의 이념은 자유, 평등, 박애이다. 나는 부모님이 없는 동안에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깨달았다. 처음에는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말하는 어른이 없으니까 내 방식대로 살 수 있었다. 그래서 자유로움을 느꼈다. 그러나 이 자유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려면 그들과 평등해져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줬다. 집안일을 공평하게 나눠서 하기, 다른 사람들 생각하기, 다른 사람들 이해하기, 이것도 우리 사이에 평등을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서 박애,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애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부모 없이 아이들끼리 사는 것은 노력하는 것이다. 서로에게 손을 내밀고, 뭔가를 할 때는 함께 힘을 모아서 해야 한다. 항상 말이다. 이것은 진짜로 동생들의 형이 되고, 누나의 동생이 되는 것이다. 나에게는 좀 새로운 일이다. 철학처럼 말이다." _ ('트리스탕'의 글, p.121~122)


처음에는 마들렌을 따라 글 쓰는 일이 학교 수업처럼 따분하게만 느껴졌던 동생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진솔한 글을 써냅니다. 이것은 마들렌을 울컥하게 만들었는데, 좌중우돌의 사건들 속에 아이들이 찾아낸 자신만의 성장 이야기는 나에게도 진한 뭉클함을 안겼습니다.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선을 갖는 것이다." _ (마르셀 프루스트)


엄마와 아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각각 꿈꾸던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 덕분에 아이들도 진정한 여행을 하게 되었지요. 아이들만의 12일이라니,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후 걱정하는 마들렌 엄마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지만, 이 소중한 아이들의 부모보다 더 어른 같은 모습을 통해 다시금 깨닫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직접 경험하며 실수하고 또 다른 시선을 키워가며 참된 스스로의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걸.







죽음에 임박했을 때 가장 후회스러운 일은
‘스스로를 무시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가슴이 원하는 여행을 하지 않은 것만큼 큰 실수는 없다.

남의 기준에 맞추고
사회의 암묵적인 동의에 의문 없이 따름으로써,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경험했을
더 많은 기쁨들을 스스로 놓쳐 버린 것이다.


-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 '가족'을 주제로 동시 쓰기.

    / '부모 없는 12일'이라는 같은 제목으로 자신만의 동화 짓기.



이전 26화 지금이라도 _<우리의 목표 : 하기 싫으면 하지 말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