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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다

by 유재은


낯선 나라에서 혼자 있는 하루를 동경한다. 혼자 살아본 적이 없기에 홀로 보내는 밤이면 청각이 곤두서겠지만 말이다. 아마 작은 소리만으로도 수많은 상상을 하며 드라마를 쓰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더욱 용기 내 보고 싶다. 혼자만의 여행은 살아오며 딱 한 번 해보았다. 그것도 딸이 살고 있던 서울에서 1박을 보내는 조금 어설픈 여행이었다. 수업이 없는 주말이면 딸이 집에 오는데 그때 그곳에서 하루를 보낸 것이다.


그래도 원고 여행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니 마음이 벅차올랐다. 종로에 가면 들르곤 했던 익숙한 대형서점에서도 모든 것이 새로웠다. 오랜만에 타는 서울 지하철에서는 개찰구의 띠- 소리마저 두근거림을 주었다. 출퇴근 길 지하철을 탈 때 느꼈던 지옥철의 기억은 나의 것이 아닌 듯했다. 혼자만의 시간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무거운 가방을 들고 밖으로 향하는 긴 계단도 쉼 없이 한 번에 빠르게 올라갔다. 대체 이런 놀라운 에너지는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 웃음이 났다.


전면창 가득 한강을 품은 북카페에서 별이 내리도록 글을 썼다. 쓰다가 문득 구름을 보고 다시 쓰다가 멍하니 윤슬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밤이 되었다. 완성하려던 동화의 원고 분량은 채우지 못했지만 집에서는 유튜브 음악 영상으로만 보던 풍경을 마주하며 글을 쓰다니 행복했다. 숙소로 가는 평범한 어느 동네의 길은 이미 전에도 차로 많이 지나다녔던 곳이었다. 그런데 결혼 후 26년 동안 집과 일터만을 오가는 패턴을 살아와서일까. 가로수를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고 모든 게 반짝였다. 그때 저만치 앞에서 버스가 섰다. 분명 그럴 리 없는데도 내리는 한 사람의 뒷모습에 잠시 마음이 두근거렸다.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새 그가 그리웠던 모양이었다. 과외하고 나오던 길이면 골목에서 숨어 기다리다 나타나는 그가 있을까 두리번거리던 30년 전 그때처럼 주위를 둘러보았다. 보물 같은 가족을 떠올리며 사뿐사뿐 춤추는 듯한 발걸음이었다.


다음 날 가보려고 했던 책방도 있고, 작업할 다른 카페도 알아놨는데 깊은 새벽, 이미 나는 지하철 노선표로 돌아갈 길을 알아보고 있었다. 비가 온다는데 돌아다니기 번거롭다는 건 핑계일 뿐이고, 그토록 꿈꾸던 나의 해방은 하루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늦은 밤까지 글을 쓰고 이불속에서 발을 꼼지락 거리며 책을 읽다가 늦도록 잠을 잔 후 스콘과 라떼를 마신 후 집으로 향했다. 이틀을 자고 오겠다던 말은 잊은 채로.


파리나 아를에서 한 달을 살아보고 싶었는데 그런 기회가 오더라도 과연 할 수 있을까. 그렇게 혼자 있기를 원했으면서도 막상 떠나보면 넷이 그립다. 할 일이 너무 많아 쓸 시간이 없다고 시무룩했었는데, 알고 보니 함께 하는 '우리'가 있어 읽고 쓸 수 있었던 것이다.


대학 시절 방학이면 프랑스로 가는 동기들을 보며 언젠가 충분히 준비를 하면 그때 떠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좀 더 공부를 해서 어학연수의 효과를 볼 수 있을 때 가면 도움이 될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때는 갈 수 있는 형편이었는데 그냥 가면 되었을 것을 무슨 준비가 필요했을까. 돌아보니 그를 두고 떠날 수 없었기에 나중을 기약했음을 깨달았다. 그러다 둘에서 넷이 된 후에는 함께 하려니 또 이렇게 어렵다. 그래도 다시 돌아가면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또다시 30년이 미루어질지라도 넷이 함께 처음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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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