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반복하는
반복하는 것들이 나를 만들어준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해 준다. 문득 누군가의 삶의 결을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하는 반복적인 일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의식적으로 자주 하는 말과 의식적으로 반복하는 행동이 하루의 빛깔을 만들고, 그것은 끝내 삶을 이끈다.
내면에 귀 기울이며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들은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기에 생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애써 그것을 반복한다. <비밀의 화원>과 <소공녀> 등의 일러스트로 유명하며, <마더 구스 Mother Goose>(1954)와 <1은 하나 1 is one>(1957)로 칼데콧 상을 받은 미국의 동화 작가 '타샤 튜더'(1915-2008)도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그녀는 계절에 머무를 수 있도록 정성스레 정원을 가꾸고, 서른 마리의 코기와 함께 반복하는 일상 속에서 느림의 행복을 일구어갔다.
"진정한 인간, 건강하고 온전한 인간에게 세상과 신은 다양한 기적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저녁을 날이 저물어 선선해지고 노동자의 하루가 끝나가는 시간으로만 보지 않고 하늘이 붉게 물들며 점점 장밋빛에서 보랏빛으로 변해가는 마법 같은 과정으로 여긴다면 저녁도 기적이 된다. 저녁 하늘처럼 무수한 빛깔로 변하는 인간의 표정 속에 미소가 스칠 때, 그의 얼굴도 기적이 된다." - (헤르만 헤세, '행복' 중)
평범한 하루에서 기적을 바라볼 수 있었던 타샤 튜더의 얼굴도 기적이 되었다. 그리하여 타샤의 어느 날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삶은 위로를 받는다. 새해 첫 전시회로 [Still, Tasha Tudor: 행복의 아이콘, 타샤 튜더의 삶]에 다녀왔다. 탄생 110주년을 맞이하여 기획된 전시회에는 190여 점의 그림과 타샤의 삶의 공간이 구현되어 있었는데, 덕분에 그녀의 따뜻한 세상 속에서 느린 주말을 누릴 수 있었다.
전시회에 들어가기 전 벽면 가득 설치된 거꾸로 흐르는 시계는 마법처럼 그녀가 살고 있던 세상으로 데려가주는 것 같았고, 입장 후 전시 공간까지 이어지는 대형스크린은 아름다운 타샤 튜더의 그림 정원 속으로 걷는 듯한 설렘을 안겼다.
행복의 비결을 묻는 이들에게 "내면의 소리를 듣고 자신의 삶을 살라"라고 담담히 이야기하는 타샤 튜더. 전시회의 각 공간은 자연과 동물, 가족과 그림을 통해 소박한 삶의 철학을 일구어간 타샤의 정원과 집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는데, 전시회의 제목처럼 '여전히' 우리를 다독여 주는 타샤의 온기는 바쁘고 지친 삶 속에서 쉼의 시간을 건네주었다.
쉬는 날조차 어떻게 쉬어갈지를 미리 생각하거나 메모장에 적어놓다니. 최근에야 비로소 내가 계획형의 사람이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래도 의식적인 루틴 지키기로 인해 자책감이 들기도 했던 시절과는 다르게, 지금은 '해도 좋고 못 해도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 나이 듦이라는 선물이 '느슨한 루틴'을 누릴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수업 후 카페로 향했다. 피곤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늘 앉던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펼치니 어느새 거리에는 밤이 내렸다. 이렇게 조용한데 어떻게 이토록 글이 써지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무도 없는 카페를 바라보는 고요한 순간이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반복하는 것들이 나의 길을 만들어준다. 하지 않으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것들이 나를 안아준다.
* 전시회 정보 (2026.03.15까지)
친절한 도슨트 선생님의 설명도 들을 수 있고,
동화책을 읽을 수 있는 작은 코너도 있어서
방학 동안 어린이와 함께 가기에도 좋은 곳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