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파리, 밤의 여행자들"
무엇이 이토록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하는 걸까. 어떤 매력이 지난 일주일 동안 영화를 세 번이나 보게 만들었을까. 그것도 OTT가 아닌 영화관에서 말이다. 큰딸과 함께한 주말 아침 첫 영화를 시작으로 막내, 그리고 남편까지 릴레이 영화 데이트를 이어갔다. N차 관람을 했지만 또다시 영화관으로 향할 수 있을 것 같은 영화를 만나다니 인생에서 특별한 경험이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요소들로 만들어진 영화야."
처음 영화를 본 후 생각보다 좋았다는 큰딸의 말에 공감하며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장을 덮는 순간 다시 읽고 싶은 책은 있었지만 영화는 처음이었다. 아릿한 긴 여운이 마음을 맴돌며 두 번은 보아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또한 이 영화는 혼자 고요히 보거나 소중한 사람과 함께 둘이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남은 우리 가족들이 떠올랐다.
곁에 누군가가 있느냐에 따라 영화에서 머무는 장면이 조금씩 달랐다. 아마도 영화가 곁에 있는 사람과 나누고 싶은 말을 대신 전해주는 듯했기 때문이 아닐까. 또한 두 번째로 영화를 볼 때는 인물의 표정과 감정에 좀 더 깊이 몰입하게 되었고, 세 번째 관람에서는 대사 하나하나를 책처럼 곱씹으며 보았는데 그렇게 회차를 거듭하다 보니 처음에 놓쳤던 서사의 깊이도 깨달았다. 그러면서 영화를 만든 이들의 마음과 노고를 생각하게 되었다.
커다란 사건이나 반전은 없어도 깊이 있는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 2시간의 러닝 타임 내내 깊이 빠져들게 하는 영화. 레트로한 감성과 아날로그의 향수를 담고 있는 영상미와 음악.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 뛰게 만드는 프랑스어. 내 꿈의 공간인 파리에서 펼쳐지는 시리도록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 나의 인생 영화인 '인생은 아름다워'가 전쟁 속에서도 하루를 일으켜 주는 사람과 사랑의 힘으로 눈물을 흐르게 했다면, 이 영화는 '1980년대 파리의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생각이 든다. 아픈 일상 속에서도 살아갈 힘을 주는 '타인을 향한 선의와 가족, 그리고 사랑'이 가슴을 뜨겁게 하며 깊은 감동을 주었던 것이다.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영상으로 담아낸 1980년대 파리의 밤은 평범해서 더욱 특별했다. 그동안 파리를 그려낸 영화나 그림에서 마주했던 고풍스러운 도시의 낭만이 아닌, 평범한 어느 도시의 일상 속 공간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삶에 지친 이방인들의 하루에도 문득문득 누군가의 소소한 일상의 반짝임이 스친다. 90년대 홍콩 영화의 영상미도 떠오르게 하고, 대학 시절 프랑스 문화원에서 보았던 자막 없는 프랑스 영화에 대한 추억도 불러왔다.
"우리가 다 함께 있는 꿈을 꿨어.
따스하고 영원한 느낌이었지.
아침 햇살도 그 느낌을 막을 순 없었어."
생의 고통으로 얼룩진 어느 날, 주인공 엘리자베트를 붙들어준 것은 딸과 아들이었다. 그날들을 일기에 기록하며 그녀는 또 하나의 하루를 살아낸 것이다. 감수성만 많을 뿐 특별한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스스로 무용하다고 여겼던 감성 덕분에 그녀는 또 하나의 길을 걷게 된다. 모든 장면이 마음속 사진첩에 차곡히 담겼는데, 그중에서도 Joe Dassin(조 다셍)의 'Et si tu n'existais pas'(만일 그대가 없다면)이 화면 가득 차 흐르는 장면은 잊을 수 없다.
영화를 세 번째로 보는데도 그제야 주르륵 흐르는 눈물 속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 영화에서 그려가는 삶의 지향점이 나와 같았던 것이다. 길지 않은 삶으로 여행 온 사람들. 마음 둘 곳 없는 누군가의 밤은 더없이 외롭지만, 작은 친절과 진심어린 마음은 고통의 밤을 일으켜준다. 따뜻한 연대는 끝내 우리를 구원한다.
"Et si tu n'existais pas" - Joe Dassin
만약 그대가 없다면
내가 존재할 이유를 말해주세요.
그대 없는 세상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게,
희망도 미련도 없이.
( … )
만약 그대가 없다면
난 하나의 흔적에 불과할 뿐이에요.
이리저리 오고 가는 이 세상에서
난 어찌할 바를 모를 거예요.
( … )
만약 그대가 없다면
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말해주세요.
내가 나인 척 살아간다 해도
진정한 내가 아닐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