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단점과 너의 단점이 만나 시너지를 낼 수 있다니
나의 단점과 너의 단점이 만나 시너지를 낼 수 있다니
국가대표 선발과 함께 마주한 현실은 유포 월드컵이 채 2달도 남지 않았다는 무서운 현실이었다.
팀별 선수 명단도 금방 나왔다. 나는 팀코리아 1팀. 남자 선수 한 명이 아쉽게도 개인 일정 조율이 어렵게 되면서 우리 팀은 여자 네 명으로 이루어진 only 여성팀이 되었다. 팀코리아 1팀에는 나와 원래부터 친구였던 동료들이 같은 팀이 되었다. 팀코리아 2팀은 남자 두 명, 여자 두 명으로 구성되었다. 앞으로는 짜여진 두 개의 팀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호흡을 맞추고 팀 전략을 세우는 준비 과정의 시작이었다.
막상 정해진 팀으로 뛰어보니, 마냥 신나서 하하호호하면서 연습하던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개개인의 실력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팀으로서 전체적인 합이 잘 맞고 안 맞고의 문제가 생겨버렸다. 연습을 할 때 시너지가 잘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딘지 모르게 호흡이 안 맞아서 삐그덕 대는 사람이 있었다.
예전에는 이렇게도 팀을 해보고, 저렇게도 팀을 해보면서 경기를 뛰었기 때문에, 팀워크 자체보다는 개개인의 역량껏 득점을 했다. 그리고 컨디션에 따라 못 하면 못하는 대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팀이 확정되어 버리니, 어째서인지 모든 면에서 완벽한 팀워크를 발휘해야 한다는 알 수 없는 욕심과 강박이 내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모두가 국가대표에 선발된 선수들이기에 기본적인 실력은 문제가 없었다. 모두가 잘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마다 플레이를 하는 스타일 차이가 조금씩 느껴졌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동료들이 그 실력을 받아줄 연습이 되어 있지 않으면 따로 놀뿐이었다. 각자의 스타일과 특징을 조화롭게 어우르는 연습이 필요했다. 팀 경기에서 득점을 하는데 선수 개인의 역량보다 팀워크가 중요하다고 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연습을 하다 보니, 경기 중 나의 몇 가지 습관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나는 경기 중에 주로 오른쪽에서 뛰느라 왼쪽 공간에 위치하고 있는 경우가 잘 없었다. 즉, 전체 코트를 골고루 활용하지 못하고 한쪽에 치우쳐져 있다는 뜻이었다. 경기 중에는 빠르게 공수 전환도 하고 포지션 변환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는 것도 같았다. 어쨌든 좋게 말하자면 나는 경기장의 오른쪽 사이드에서 뛰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오른쪽을 파고드는 게 쉬웠고, 오른쪽에서 날아오는 링을 더 잘 잡았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오른손잡이인 사람이 같은 팀 동료에게 링을 던질 때, 오른손으로 스틱을 잡고 링을 던지기 때문에 아무래도 마주 보고 링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던지는 사람을 정면으로 바라봤을 때 왼쪽에 위치하고 있는 게 편하다. 그렇게 되면 링을 던지는 사람의 시야에 바로 잡히기도 하고, 정방향으로 날아오는 링을 받기 쉬우니까. 그래서 경기를 할 때, 내가 서 있는 오른쪽으로는 링이 잘 날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내 기준으로 생각할 때는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가 딱 좋고, 나한테 링을 던지기 너무 쉬운 포지션인데 왜 이쪽으로 던지지 않을까 궁금했다. 답은 바로 오른손잡이인 사람들의 습관 때문인 것 같았다. 링을 던지는 사람은 정면에서 상대팀이 블로킹을 하고 있을 때, 왼쪽으로 몸을 꺾고 돌려서 링을 던지기보다는 오른쪽으로 몸을 살짝 틀어서 링을 던지는 게 훨씬 수월했다. 게다가 링을 잡고 있는 선수는 더 이상 발을 움직일 수 없고, 딱 한 발자국만 뗄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익숙하지 않은 방향으로 방향 전환을 하면서 자유롭게 움직이기 힘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오른쪽 사이드에 있는 내가 링을 잡을 기회는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연습을 하다 보니 우리 팀 선수 한 명과 유독 호흡이 잘 맞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왜 그런가에 대해 생각을 하다가 깨달은 사실, 이 친구는 왼손잡이였다. 이 선수는 평소 왼손으로 스틱을 잡고 경기를 뛰었으며, 빈 공간이 생겼을 때 왼쪽으로 먼저 던지는 편이었다. 이 선수가 자신의 정면 왼쪽으로 링을 던지면, 그 위치에 있는 사람은 항상 나였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 선수(이자 친구)와 호흡이 좋았다. 나의 단점이 오히려 팀 안에서는 틈새 공간을 노리는 장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포지션을 유지하면서 서로 서포트를 해주면 되겠다, 그렇게 되면 나름 환상의 호흡이다,라고 생각했다.
성장은 느리게 하지만 자연스럽게
유포 동호회를 매주 나가다 보니, 어느새 연습이 끝나고 사람들과 다 같이 밥 먹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처음에는 쭈뼛 거리며 "혹시... 커피 한잔하고 가실래요?"라는 소개팅 애프터 멘트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햄버거 먹고 가실 분!!!"을 외치는 사이가 되었다. 사회에 나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친분 관계를 쌓아가는 것이 여간 소모적인 일이 아닐 수 없는데, 운동이라는 공통된 취미를 바탕으로 함께 땀을 흘리고, 또 하나의 새로운 목표인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서로의 학벌이나 직장 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궁금하지도 않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놀고 있노라면, 마치 고등학교 때로 돌아간 듯 한 기분도 들었다. 사람들은 어느새 팀코리아 동료들을 위해 업무차 해외 출장을 다녀오면서 기념품을 챙겨 오고, 회사에서 새로 나온 제품을 가져와 선물해 주고, 운동하는 동안 더울까 봐 전날 밤부터 얼린 음료 수십 병을 챙겨 왔다.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사람들의 우정이 싹트는 만큼 모두의 실력도 조금씩, 자연스럽게 늘기 시작했다.
나의 경우,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아무리 연습해도 안 되는 동작이 하나 있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링을 스틱으로 줍는 동작 중 하나였는데, 무료연수 때 배우는 가장 첫 번째 동작이었으니 아주 쉬울 뿐만 아니라 기본 중 가장 기본이 되는 동작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5분의 연습 시간 이후에 바로 이 동작을 마스터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안 됐다. 그 동작이 지렛대의 원리를 활용한 아주 쉬운 동작이라는 것도 충분히 알겠고, 설명에 맞게 자세도 맞춰서 계속 시도를 했지만, 그럴수록 몸에 힘은 더 들어가고 나에게는 점점 더 실행 불가능한 동작이 되어 갔다. 결국, 나는 연습 초창기부터 이 동작은 깔끔하게 포기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동작으로 링을 집어서 운동을 했다. 종종 그 지렛대 동작을 시도해 보기도 했지만, 첫 연수 이후로 두 달간 쭉 한결같이 못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해냈다.
그렇게 집중해서 할 땐 죽어도 안 되더니, 어느 날 동호회에서 혼자 기본 동작을 연습하던 중에 아무생각 없이 쓱 해봤는데 별안간 너무나도 쉽게 성공해 버린 것이다. 갑자기 가능하게 된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서 몸의 긴장도도 떨어지고 스틱과 링을 다루는 숙련도가 늘면서 자연스럽게 습득이 된 것일 테다.
이미 남들은 다 할 줄 아는 기본 동작이었지만, 나는 두 달 전의 나, 아니 지난주의 나보다 확실하게 성장했기에 너무 뿌듯했고, 사람들을 향해 "저 성공했어요!!!" 소리를 지르며 여기저기 방방 뛰면서 다시 재현을 해 보였다. '그걸 이제 해?'와 같은 비웃음은 없었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진심 어린 축하를 해줬다.
이 동작에 계속해서 실패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할 줄 아는 것만 하자며 마인드 컨트롤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으로는 계속 신경이 쓰였었던 것 같다. ‘이 쉬운 것도 못해? 다른 사람이 보면 이런 실력으로 어떻게 국가대표를 하냐며 비웃겠다.’ 피해의식에 휩싸여 혼자 사서 걱정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머리를 비우고 기초 훈련 연습에 집중하니 기대 없이 가볍게 해 본 시도가 한 번에 성공한 것이다. 이만큼 짜릿한 게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자유자재로 링을 주울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 성장했다는 확신! 남들보다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발전하고 있었다. 뿌듯해 나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