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운동하는 영화인 Oct 16. 2023

위기: 유포코리아의 고충 편

국가대표 양성의 길은 멀고도 험하도다

모든 게 계획한 대로 문제없이 흘러간다면 참 좋겠지만, 인생이란 그렇듯이 변수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나도 회사 생활을 10년째 쉬지 않고 하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자, 실무자에서 관리자로 넘어가는 포지션을 맡고 있기에 이번에는 사측(?)의 입장에서 유포코리아가 가지고 있던 고충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해보려 한다.


유포코리아 동호회를 운영하고 유포 월드컵 참가의 모든 행정 운영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유포코리아에서는 이번에 유포 국가대표를 모집하면서 가장 크게 한 고민이 바로 이거였다: ‘지원자가 한 명도 없으면 어떡하지?


그도 그럴 것이, 작년에 유포 월드컵이 열렸을 때 유포코리아 직원 한 명이 비즈니스 출장으로 유포 월드컵을 구경하러 갔다가 어영부영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직원 혼자 아무런 준비 없이 간 상태였기에 한국선수로 3명을 채울 수가 없었고, 결국 네덜란드 선수 2명이 용병으로 참가하여 이 한국 직원과 함께 임시 팀을 만들어 경기를 뛰었다. 그 당시에는 대한민국 팀출전이 목적이 아니었기에 경기 경험만 쌓고 왔었지만, 이번에는 정식으로 팀을 결성하여 참가비를 내는 첫 공식 출전이었다.


유포코리아에서는 지원자 미달로 인해 작년처럼 직원이 혼자 뛰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내심 불안해했다. 이유는 바로 비행기표 때문이었다.

국가대표 선발이 있기 전, 유포코리아에서 올해 있을 유포 월드컵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이 안내를 했다:

 ‘올해 여름에 유포 월드컵이 개최될 예정이다. 본격적인 국제 경기로 크게 개최하는 해라서 한국에서는 2팀 정도를 꾸려서 나갈 계획을 하고 있다. 국가대표로 선발이 될 경우, 모든 경비는 유포코리아에서 지원할 예정이다.’


'모든 경비'에는 떠오르는 것만 대략적으로 정리해도 비행기표, 숙소, 참가비, 식비, 일비 등이 될 것이다. 그때 당시만 해도 유포코리아에서는 구체적인 예산이 정해지지 않았었고, 실제로 대회 참가를 위해 필요한 비용이 얼마인지도 확실하게 알 수 없는 상태였다. 유포코리아 대표님과 직원들은 유포 이전에도 다른 많은 국제 경기에 팀을 꾸려 출전시켜 본 경험이 있었고, 그 경험을 토대로 계획을 설명해 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포 국가대표 지원 신청을 받을 때가 다가왔을 때, 예상치 못한 예산 문제에서 유포코리아는 고민했을 것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예정대로 팀코리아 2개 팀으로 출전하게 될 경우, 약 180만원에 달하는 왕복 비행기표는 선수들에게 지원을 해줄 수가 없는 상태였다. 팀을 한 팀으로 줄인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적은 인원을 선발하여 전액 지원이 가능한 컨디션을 만들 것이냐, 기존 계획대로 2개 팀으로 출전하되 비행기표는 선수 부담으로 돌릴 것이냐의 기로에서 선택이 필요했을 것이다. 첫 공식 출전이니 만큼, 그리고 대회 출전에 대한 동호회 회원들의 기대가 큰 만큼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선수로 뛸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게 더 좋겠다는 결론이 났고, 국가대표 지원 신청을 받을 때 비행기표 180만원은 선수 자부담이라는 공지가 같이 나왔다.




나는 국가대표 선발 공지가 나가는 주에 유포 동호회 모임에 참가했다가, 참가자가 두 명뿐인 날이었던 관계로 1시간 동안 연습을 여유 있게 하고 남은 1시간 동안은 유포코리아 대표님 및 강사님과 함께 월드컵 관련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예산을 정리하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 예산이 들어가게 되었고, 선수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는 대표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 비용은 결국 유포 월드컵에 사용되는 예산이었기에 어느 누구의 잘못이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180만원이라는 돈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돈이었기에, 선수 개개인이 부담하기에 망설여질 수도 있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나는 유포코리아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충분히 공감했고, 좋은 기회로 국가대표에 선발되기만 한다면 비행기표 그까짓 것... 만기 되는 비상금적금 하나 통으로 때려 넣는다는 마음으로 기꺼이 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마음인 것은 아니었다. 국가대표를 목표로 열심히 연습에 나오던 사람도 비행기표 자부담이라는 공지에 지원 조차 하지 않은 일도 발생했다. 예기치 못한 계획의 변동은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까지 같이 연습해 왔던 동료들과 유포 월드컵에 출전하게 된다면 이것 만큼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기회는 없을 거란 생각에 혹시나 망설이고 있을 사람들을 설득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국가대표 지원 공지가 나간 후 열린 동호회 연습이 끝나고 두 명의 동료들과 근처 카페에 갔다. 예상한 대로, 다들 갑자기 생겨난 비행기표 자부담에 조금은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나는 유포코리아의 상황과 입장을 마치 대변인이 된 것 마냥 열심히 전달했다. '국가대표'라는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을 고작 몇 푼(!) 때문에 놓치지 말자는 당찬 주장을 했다. 이건 되기만 하면 돈으로 매길 수 없는 귀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앞으로 어디 가서 당당하게 국가대표로 대회 뛰고 왔다고 자랑도 할 수 있다! 유포코리아도 선수들의 편의를 최대한 맞추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우리도 같이 한번 해보자.

그때 얘기를 나눴던 두 동료들과는 후에 팀코리아 1팀에서 같은 팀이 되었다.




이제 인당 180만원이라는 냉혹한 현실을 알았으니, 다 어딘가에서 멀쩡히 직장 생활을 하고 있던 우리로서는 발 벗고 나서보자는 걸로 마음이 한데 모였다. 그 마음은 뭐냐. 바로 협찬과 후원을 받아오자는 마음.


국가대표 지원 마감이 되고, 국가대표 지원을 한 또 다른 동료들과 여느 때와 같이 유포 동호회가 끝나고 카페에 둘러앉았다. 각자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후원금을 구해보기로 했다. 동그랗게 앉아 방법을 고민해 보았다. 브레인스토밍을 하듯 아무 말 대잔치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대략 이런 식이었다:


- 나이키랑 아디다스에 지인 있으신 분?

- 일단 각자 다니는 회사에다가 지원해 달라고 하자.

- 전체 후원금 말고 각자 알아서 소액 후원을 받아서 200만원만 받아와 보자.

- 스스로 벌어온 200만원중에 180만원은 본인 혼자 비행기표로 다 사용하고 남은 20만원으로 남은 선수들 1/n 하자.

- 후원사는 유포 유니폼 등짝, 팔뚝, 가슴에 사이즈 제한 없이 이따만하게 회사 로고를 박아주자.

- 이게 어디 방송에 나가긴 나가나...?

- 방송국 피디 친구한테 연락해서 단독으로 다큐 찍을 수 있게 해 줄 테니 비행기표 내달라고 말해볼까?

- 이걸 누가 보긴 할까...?

- ...


획기적인 아이디어도 있었고, 엉뚱한 아이디어도 있었지만, 모두가 최선을 다해 방법을 찾아보려고 갖은 노력을 했다. 영양가는 없는데 어떠한 결론을 도출해내야지만 이 모임을 파할 수 있는 대학교 팀플을 하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유포코리아 역시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유포코리아의 후원사는 뉴스포츠산업이었고, 협력사는 뉴스포츠협회였다. 이 두 기관에서 이미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고 있었고, 유포코리아는 국가대표 2개 팀을 최대한 문제없이 잘 출전시키기 위해 추가적인 지원을 찾아 누구보다 앞장서서 바삐 움직였다. 동호회 회원들인 우리 보다도 훨씬 먼저 움직였고, 기존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열심히 피칭을 하고 다녔지만, 아직은 유포라는 스포츠가 인지도 면에서나 파급력면에서 부족한 게 사실이라 추가 후원을 받긴 쉽지 않았다.


아이디에이션을 하면서 찾아보니 운동팀의 취지와 기획서, 사연을 정리해서 신청을 하면 운동복을 지원해 주는 스포츠브랜드도 있었다. 해당 브랜드의 지원 팀 선발 기준이나 취지를 보니 유포코리아의 상황과 딱 들어맞아서 기획서 하나만 깔끔하고 센스 있게 딱 정리해 보면 될 것 같았는데, 진행되는 일정을 보니 당장 코앞에 닥친 월드컵 일정에 맞추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뇌를 쥐어짜서 꺼내본 수많은 아이디어 끝에 우리가 도달한 결론은, 각자 180만원의 자부담을 하자는 것이었다. 호기롭게 모인 것 치고는 심심한 결론이었다.

하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공동의 목표를 위해 머리를 맞댄 것이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벌써부터 한 팀이 된 듯한 돈독한 감정도 느껴지고, 흔하디 흔한 스포츠 영화에 꼭 한 번씩 나오는 현실적인 위기를 바로 우리가 지금 겪고 있다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이제는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포기할 건 빠르게 포기하고 다음 스탭을 위해 움직이는 게 현명했다.

그리고 유포 월드컵을 다녀와본 자로서 말하자면, 180만원 그거 돈 하나도 안 아까웠다.



                    

이전 06화 10년차 직장인인 내가 이 세계에선 태극마크를 단 국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