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 자격증 연수를 받다.
출국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출국날이 되었다. KOREA 단복을 입고 공항에서 다 같이 모여 단체 사진을 찍고 네덜란드로 출국하는 스케줄이었다. 공항까지 데려다주는 엄마의 표정이 너무 밝아서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딸이 국가대표라는 사실에 좋아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을까. 엄마한테는 내가 바로 김연아고 손흥민이었다(아마도?... 그럴 거라 믿는다). 어쨌든 지금 이 순간 세계 최고의 효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이 정도 효도면 내 역할을 다 했지 싶었다. 엄마와 헤어지면서 월드컵 이후 더 강해져서 돌아오겠다는 오타쿠스러운 인사를 했다. 공항에서 팀코리아 선수들을 만났다. 단체로 같은 옷을 입고 태극마크가 달린 가방을 들고 옹기종기 모여있으니 왠지 어디선가 인솔해 주는 유치원 선생님이 등장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모두가 모인 후, 현수막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월드컵 출전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2023 YOU.FO WORLD CUP TEAM KOREA / 유포 월드컵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단] 현수막은 너무 있어 보이고 멋있었다.
단체샷, 개인샷, 팀별샷 순서로 사진을 찍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받게 되니 살짝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래 역시 난 관종은 못돼,라는 생각을 하며 드디어 네덜란드로 출국했다.
14시간의 비행은 생각보다도 더 힘들었다. 나는 네덜란드에 와서 바로 시차 적응을 하겠다는 명목하에 비행 내내 잠을 한숨도 안 자겠다는 고집스러운 각오를 다졌었다. 공항 서점에서 책도 한 권 새로 샀다. 비행기를 타자마자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평소 같으면 일주일은 걸렸을 걸 미친듯한 집중력으로 하루 만에 완독을 해버렸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났나 싶어 시계를 보니 2시간 밖에 안 지난 거다...! 나의 집중력이 이 정도였던가?
남은 12시간 동안 이 좁은 공간에 갇혀 버렸으니 이참에 밀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다 쓰지 못하면 이곳에서 나가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지난 몇 달간의 스케줄을 꼼꼼히 정리하고 다이어리를 싹 업데이트 했다. 더 이상 뭘 쓸 공간도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다 채웠는데 역시나 두어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이렇게 금방 끝낼 수 있는 일들인 것을 난 왜 그동안 몇 달씩이나 미뤄왔던 거지, 하는 허탈감도 느꼈다. 나의 의지력은 한없이 취약하면서 위기의 순간에는 120%의 역량은 쏟아내는 아주 무서운 녀석이었다. 남은 9시간 동안은 영화 4편을 연달아 보기로 했다. 그리고 영화 목록을 살펴보는데, 98%는 이미 다 본 영화였다. 그것이 영화사 직원의 짬바니까(끄덕). 그래서 어떻게 했냐구요? 스도쿠 100판, 틱택토 50판, 행맨 20판 하다가 착륙 30분 전에 잠들어 버렸다(=모든 계획이 망했다는 뜻).
암스테르담 공항에 도착하니 아직 시간은 어제 저녁 6시였다. 반수면 상태였던 나는 우리 나이에 이제 장거리는 안된다며 터덜터덜 짐을 끌고 나왔다. 몸이 천근만근이라 당장 호텔로 가서 잠들고 싶었지만 일단은 저녁을 먹고 움직이기로 했다. 당장 내일부터 공식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빠르게 시차 적응을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입맛 없다며 한껏 지친 상태로 한입 먹어본 하몽피자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하몽피자여서 열심히 먹을 수밖에 없었다. 끝내주는 저녁을 먹고 여전한 반수면 상태로 숙소가 있는 동네에 도착하니, 어느덧 밤 10시였다. 이제 드디어 잠들 수 있겠구나 했는데 네덜란드의 밤 10시는 한국의 오후 5시와 비슷한 아주 밝고 따뜻한 오후의 하늘이라 지금 잠드는 게 맞는 건지 긴가민가했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스케줄에 맞춰 움직여야 했기에 더 이상의 잡생각은 생략하기로 하고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기절하듯이 잠들었다.
강사 자격 연수 (대회 D-2)
대회 이틀 전. 오늘은 신청자를 대상으로 유포 강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연수를 듣는 날이었다. 팀코리아는 전원이 연수 신청을 했고, 모든 수업은 영어로 진행될 예정이었기에 통역을 도와줄 통역사님을 카페에서 만났다. 통역사님은 네덜란드에서 유학 중인 한국분이셨는데, 작년에 이어 올해도 통역을 맡아주기로 하셨다. 이 통역사님 덕분에 팀코리아가 네덜란드에 있는 동안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카페에서 옆자리에 앉아있는 서양 남자 두 명이 우리 테이블을 힐끔거리며 곁눈질하는 게 느껴졌다. 경계심이 많은 나는 네덜란드가 처음이라 혹시 시비 걸려는 건 아닐까, 하고 바짝 긴장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우리와 같이 연수를 들을 캐나다팀이었다(심성 매우 착함).
시간이 되어 유포 본사로 향했다. 유포 본사 사무실은 오래된 교회를 리모델링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유포라는 스포츠의 창시자인 바스(Bas)를 만났다. 바스와 함께 유포를 연구하고 홍보하는 기엘(Giel)도 만났다. 이 두 사람은 10년 넘게 유포라는 스포츠를 발전시키고 개선시키면서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 만들어내는 일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이 둘이서 번갈아가며 B레벨 강사 자격 연수를 해주는 자리였다. 유포 강사 자격증은 A - B - C 순서대로 존재하고 있었고, 오늘 B레벨의 자격증을 획득하고 나면 한국에 돌아가서 유포 강사로서 수업을 할 수 있는 자격을 보유하게 되는 것이었다.
우선 유포의 역사, 링의 공기역학적 원리, 스틱의 종류에 대한 이론적인 수업이 먼저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강사로서 유포를 가르칠 때의 주의사항 및 가이드를 배웠다. 맨몸 운동이 아니다 보니 처음 배우는 사람, 특히 어린이들을 교육시킬 때 어떤 방식으로 가르쳐야 다치지 않고 규칙을 잘 지킬 수 있게 하는지와 같은 구체적인 사례에 대해 토론하기도 했다. 바스는 본인이 만든 유포가 저 머나먼 한국이라는 나라까지 전파되었다는 것에 몹시 감동을 받은 듯했다. 한국팀을 더 각별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작년 유포컵 때 네덜란드, 체코, 한국 딱 세 나라만 참여를 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에는 직원 한 명이 견학차 왔는데, 1년 만에 팀코리아 두 팀을 결성해서 대규모로 왔으니 각별할 수밖에.
지난번에 언급했듯이, 바스는 어릴 적 반려견과 놀아주면서 활용했던 나무막대기로 공 던지는 놀이를 오늘날의 유포로 발전시켰다. 그래서 바스는 유포를 할 때만큼은 모두가 재미있게 즐기는 마음으로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경쟁만이 스포츠의 목적이 아니라 모두가 화합할 수 있는 즐거운 도구로써 유포가 활용됐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이 말에 상당히 공감하는 게, 유포를 국내에 들여오게 된 이유에 대해 간단히 얘기하겠다.
2019년에 유포코리아 대표님은 세계에서 가장 큰 스포츠박람회인 뮌헨 ISPO를 방문하셨다. '어디 새로운 뉴스포츠 없나~'하고 박람회를 어슬렁거리다가 한쪽 구석에서 링을 던지고 노는 한 무리를 발견한 것이다. 유포를 하고 있는 것이었는데, 대표님은 서로 웃으면서 여유 있게 랠리를 하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이고 재미있어 보여서 호기심이 생겼다고 하셨다. 그 자리에서 바로 유포라는 스포츠에 대해 알아보신 후 국내에 들여오기로 결정하셨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한동안 보급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2022년에 대표님이 네덜란드에서 직접 연수를 받으신 후 드디어 국내에서도 선보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이 스포츠의 최대 강점은 사람들이 플레이를 하면서 모두 즐거워 보인다는 것이다. 야외에서 유포 랠리를 할 때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받은 질문은 "그게 뭐예요? 너무 재밌어 보여서요~"였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쉽게 시작할 수 있고 금방 배워서 즐길 수 있는 유포는 결국 뉴스포츠라는 분야에 딱 걸맞은 운동인 것이다.
이론 연수를 들은 후, 야외에 나가서 실전에 들어갔다. 네덜란드의 날씨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뜨거웠다. 알고 보니 이상 고온현상으로 인해 몇 년 만에 맞이하는 예외적인 여름이었다고 한다. 네덜란드 사람들도 이 날씨가 상당히 이례적이라며 적응을 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뜨거운 땡볕 아래에서 강변을 따라 걷다가 잔디가 있는 공원에 도착했다. 여기서 캐나다팀과 유포 연습을 했다. 팀끼리 하는 유포 게임뿐만 아니라, 스틱과 링을 이용한 다양한 게임을 배웠다. 삼각 랠리, 동시에 링 여러 개 던지기, 스피드 게임 등 체력 증진과 오락성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게임들이었다. 이는 초등학생부터 바로 시도해 볼 수 있는 활동성 있는 게임들이라 운동 효과가 큼과 동시에 성장에도 도움이 되는 게임들이었다.
연습을 하다 보니, 캐나다 선수들이 기본기에서 살짝 헤매는 것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유포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친구들이었다. 이 캐나다 선수들은 전부 체육학과 대학생들이었기 때문에(우리보다 10살 어리다는 듯) 피지컬도 좋았고 기본적인 운동 신경이 뛰어났지만, 팀코리아 보다도 더 늦게 유포를 시작해서 꾸준히 연습해야 하는 동작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 팀 선수들은 각자 안 되는 영어를 더듬더듬 사용해 가며 캐나다 선수들한테 한 명씩 붙어서 밀착 특강을 해줬다. 역시 이럴 땐 바디랭귀지가 최고였다. 서로 몇 마디 안 해도 동작만으로 하고 싶은 말을 척척 알아듣는 실력이 모두 수준급이었다.
연습 시간을 거친 후 캐나다팀과 팀을 섞어서 유포 게임을 했다. 한국팀이 아닌 사람들과 하는 유포는 지금 이 순간이 처음이었다. 다소 긴장을 했지만, 너무 얕보이지는 말자는 생각으로 적극적으로 나서서 팀 전략을 짰다. 캐나다 선수들은 역시나 피지컬이 좋아서 게임을 곧잘 했지만, 룰을 몇 개 습득하지 못한 상태였다. 속성으로 설명해 주고 몇 번의 경기 끝에 실전 연수는 끝이 났다.
“(프랑스어) 얘네 생각보다 잘하는데?” 캐나다 선수들이 연습이 끝나고 뒷정리를 하면서 대화를 하는 것이 들렸다. 알아듣는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편하게 캐나다 프랑스어로 이야기를 나눈 건데, 미안하지만 나는 프랑스어를 할 줄 알았다. 이걸 알아듣는 척하고 고맙다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낄끼빠빠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냥 모른 척하기로 했다. 칭찬이었으니까 나 혼자 만족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루 동안의 연수를 함께 듣고 난 후 끈끈해진 캐나다팀과는 헤어지고 내일의 일정을 위해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