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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나비의 책공간 Mar 17. 2019

파괴

일기&일상

내 안에는 이미 불행을 냉정하게 응시하고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이 자리했다. 그렇게 나는 파괴 행위에 깃든 아름다움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중


수요일 저녁 학교 체육관 단톡방에 공지사항이 올라왔다. 주말에 실내테니스 교내 회원 사용자인지 확인하고 사인을 받아달라고 했다. 교내 구성원 요금은 시간당 12,000원이고 일반 회원은 시간당 24,000원이다. 그래서인지 교내 회원으로 예약해두고 일반회원이 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제도 예약 확인하러 갔는데 교내 회원으로 예약해두고 일반회원분들이 치고 있었다. 그때는 그냥 예약 잘못했구나 생각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 사람들이 나눴던 대화중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뭐야 일반요금으로 결제한 거 아니었어? 한번 확인해봐"


나는 주말 아침 6시부터 오후 1시까지 일한다. 오늘 같이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 MT 갔다 바로 올라온다고 1시간 늦게 출근한다고 했다. 알았다고 하고 실내테니스장 코드 진공청소기로 돌리고 빨래 개고 피트니스룸 청소를 마쳤다. 구에서 진행하는 축구대회 결승전이 있어서 주차권이 100장이 필요하다고 해서 주차권 자르고 100장을 찍어드렸다. 그러다가 주말에 실내테니스코트를 자주 이용하시는 분이 카운터로 왔다. 전에 예약이 진행이 안되는 걸 해결해드린 적이 있고 귤을 받아서 서로 보면 인사하는 사이였다.


본인은 테니스 동호회라 한 코트를 장기 대관했다. 그러나 동호회를 하려면 코트를 2개 예약해야 하는데 코트 한 개밖에 확보를 못했다. 그럴 경우 네이버 카페에서 테니스코트 예약을 양도받는다고 한다. 이경우 문제가 되는 것 아닌가 걱정된다고 했다. 솔직히 처음 들었을 때 이해하지 못했다. 양도를 왜 하지? 어차피 양도한다고 해도 웃돈 조금 얹어서 파는 것 아닐까? 그래서 양도받은 시간을 확인해보니 교내 회원으로 예약되어있었다. 


예약자 이름이 어디서 본 듯싶었다. 분명히 최근에 봤고 내 머릿속 어딘가에 메모가 있는데 머리를 막 굴렸다. 양도받은 분이 이 사람 양도 글 많이 썼어요 어제도 양도 글 썼을 거예요. 어제 근무하다가 목에 생선가시가 걸린듯한 그 기분을 다시 느꼈다. 어제 예약하러 갔던 분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예약 이름이 오늘도 적혀있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기묘했다. 그래서 양도 캡처를 보내달라고 했고 단톡 방에 보고 드렸다.


양도자는 이번 주 수요일 2시간 토요일 2시간 일요일 6시간을 부상 및 지인 부탁 때문에 양도한다고 했다. 만약 교내 구성원으로 예약하고 일반요금으로 받았다면 10시간*12,000원을 받는다. 120,000원을 양도 글 하나 써서 벌었다. 참고로 내가 주당 17시간 8,530원 받으면서 일하니 145, 010버니 24,010원을 더버네. 25,010원을 더 벌어서 기뻐해야 하는지 아니면 부당거래에 화를 내야 하는지 모르겠다. 모든 시스템은 완벽하지 않다. 비트코인도 거래소에서 그 가치를 지불할 수 있을지, 우리 모두 은행에서 돈을 빼면 은행이 망하지 않을까란 상상을 해본다. 그 시스템을 유지하는 사람, 그 시스템을 악용해 이익을 챙기는 사람, 그 속에서 손해 보는 사람.


나는 손해 보는 사람일 때가 많다. P2P 투자해서 이익이 12,000 원남 았는데 원금 부도가 12,450원 났다. 나도 모르게 매달 20,000원씩 기부하고 있었다. 차라리 내가 기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기분이라도 좋았을 텐데. 그러다가 나는 오늘 어쩌다가 시스템을 유지하는 사람이 됐다. 기분이 묘하다. 누군가의 잘못을 찾았고 그 잘못을 고치기 위해 누군가가 잘못했다는 사실을 고자질했다. 그러면서도 만약 이 사람이 학생요금으로 예약을 하고 그 차액만큼 챙겼다면 내 아르바이트비를 예약한 번한 것으로 챙겼다면 누군가는 한 달에 80시간 일해서 번 돈을 챙겼다면,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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