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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esito쏠레씨또 May 25. 2022

화려하게 떠날 준비를 하겠습니다.

참, 그동안의 경력에 떳떳하시나요?

신입 간호사 때부터 병원이 맞지 않았다. 능숙하고도 상황판단이 빠른 내 옆의 무서운 10년 차 선생님이 존경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그곳까지 닿기 위해서 감내해야 하는 시간과 노력을 나에게 맞는 곳에 투자한다면 인생 전반을 걸쳐 더 흡족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나를 위한 길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늘 의문이었다.


간호대학을 다닐 때, 교수님들로부터 자주 들었던 말은 "간호사는 길이 많고, 면허증은 평생 먹고살게 해 준다."였다. 그러나 실제로 그 길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단순히 굶지 않음을 벗어나 자신의 길에 만족하면서 보람을 가지고 사는 삶을 볼 기회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집 근처  신생 간호대학교의 2기 입학생이었고, 교수도 학과 내부 사정도 정교하게 굴러가기보다는 언제나 어수선했다.


간호사 면허가 주는 장점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시는 교수님들은 한결같이 임상경력은 필수라고 마무리를 지었다. 그 임상경력은 도대체 얼마 큼이나 어떤 규모의 병원에서 쌓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정답은 없었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그래도 대학병원에서 다양한 케이스를 경험해보자였다. 그렇게 목표에 맞는 조직에 들어가 일하면서 언제나 퇴사 생각뿐이었다. 힘겨운 하루를 꿀꺽 삼켜내느라 버거웠던 나는 화려하게 떠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다녔다. 그 결심이 오늘날의 나를 있게 했던 근본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병원 간호사로서 환자들을 위해서 과연 충실하게 보냈냐는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하겠다.


병원을 떠난 일은 내 인생에서 잘한 선택중 하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미안함과 아쉬움이 늘 있다. 출근하면 아무것도 섭취하지 못한 채 바쁜 업무를 쳐내야 한다는 이유로 환자들에게 상투적으로 대한적도 있었고,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면 환자들에게 설명할 때나 다음 근무자에게 인수인계를 했을 때 설득하고 이해시키기 수월했을 것이며, 갑작스러운 업무상황적 혹은 대인관계적인 공격에서 더 침착하고 내 의사를 분명하게 하여 퇴근 후 눈물짓는 일은 반으로 줄었으리라.


경력은 시간이 흐른다고 쌓이는 게 아니라 나에게 자신감을 부여할 만큼의 노력이 깃들여야 의미 있다. 그것을 일이 익숙해지면서 NCLEX-RN(미국 간호사 면허 시험)을 준비할 때 깨달았다. 분명히 학부 때 배웠을 이론과 원리일 텐데 그때는 시험만 본다는 얄팍한 마음으로 넘겼는데 일하면서 몸으로 익힌 간호 경험을 떠올리면서 다시 정리하고 복습하고 나니 내가 얼마나 부족한 간호사였는지 새삼 느끼고 반성했다. 병원은 교육기관이 아니라 직장이기에 배운일에 대한 나머지 복습은 내 몫이어야 했지만 몸과 마음이 지치다는 이유로 적극적이지 못했던 나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하여 시험에 합격했다.


더 이상 병원 간호사가 아닌 주제에 감히 의견을 말해보자면 구체적인 목표는 잘 모르겠지만 경력을 다지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병원에서 내가 흡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져온다고 생각해야 한다.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도 있겠지만 그 경력에 내가 떳떳하기 위해서,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시선을 새롭게 조명해 보면 좋겠다.

실제로 간호사들은 일정한 시기를 지나면 본인의 역량이 뚜렷하게 드러나게 된다. 배정된 과에서 다룰 수 있는 대부분의 케이스와 실무 일의 숙련도를 거치면
개인의 적극적인 노력 여하 및 업무 감각에 따라
신뢰받는 4년 차가 될 수도 있고 의심의 여지를  남기는 10년 차 될 수도 있다.

잘 떠나기 위해서 그곳에서 내 모습이 만족스러워야 한다. 마치 졌지만 최선을 다해서 실력을 발휘한 경기가 팬들과 선수들에게 기억에 남고 미련조차 없듯이 떠나서 무엇을 하든 간에 현재 발붙이고 있는 곳에서 자신을 인정할 정도가 되어야 도피가 아닌 화려한 퇴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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