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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ssion fruit Dec 02. 2024

마음 돌아보기 1

나력(裸力)

시간 차


"안녕하세요 J님." 


회사 팀즈로 문자가 왔다. 바로 안녕하세요라고 답을 했지만, 그다음글이 너무 늦게 올라온다. 평소와 같은 때라면 바로 용건을 얘기하는 내용이 왔겠지만 뜸을 들인다. 


"얘기 들었습니다."

"네. 그러시군요. 그렇게 되었습니다."


사실 적당히 대답할 말을 고르는 것이 이제 더 어렵다. 퇴사 통보가 된 건 벌써 2주 전. 솔직히 말하면 충격도 있었지만, 이제는 마음을 다잡고 자기 관리를 하고 구직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야 연락을 해 주시는 분들이나, 또는 내가 연락을 해서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하면, 마치 2주 전에 들었어야 할 반응들을 다시 대하게 된다.


"그때는 그냥 괜찮다고 했지만, 사실 꼭 그렇지는 않았어. 특히 두어 달이 지나도록 새 자리가 안 구해질 때는 조급해지더라. 네 마음 이해해."


나보다 먼저 퇴사를 당했던 B와 A. Are you OK라고 물어보면 항상 I'm OK.라고 답했던 친구들이다. 이제야 그때 심정을 얘기한다.  


그러다 보니 나도 이 것 외에는 특별히 할 말이 없다. 아주 밝은 척을 할 것도, 그렇다고 사실 이상으로 어두운 표정을 할 것도 아니다. 그냥 지금은 지금에 충실하고 준비를 하고 있을 뿐. 

 



성찰 1. 퇴사 통보는 왜 쓰라릴까? 


월급이 끊긴다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만일까? 한국 사람들, 특히 남자들은 본인이 하고 있는 일, 또는 현재의 수입을 자기의 존재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크다. 경제적 위치가 사람의 존재를 대체하다 보니, 그래서 많이 버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갑질이 일어나곤 한다. 

대학에 입학하고,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원을 마치자마자 입사했다. 그리고 약 20년 가까이 6개의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연봉은 입사 때에 비해 거의 10배 가까이 늘었다. 아이들은 아빠 잘 만난 덕분에 국제학교를 다닐 수 있었고, 매년 해외여행도 빠지지 않고 다녔다. Job title도 좋다.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만한 상황이다. 한국의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홍콩에서의 직장생활과 삶에 대해서 얘기한다. 아이들의 학교 생활을 자랑한다. 친척들을 방문하며 인정과 칭찬을 듣고, 부모님께도 언제나 두둑하게 용돈을 챙겨드린다. 그러면서 유세 아닌 유세를 떤다. 


퇴사 통보는 이 모든 것이 사라짐을 말한다. 


성찰 2. 솔직한 마음


겉보기에는 좋아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홍콩에서의 직장 생활이 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다. 참고 버텨야 하는 부분이 정말 많았다. 한국에 있을 적 나의 역량은 언제나 의심의 여지없이 인정받았었는데, 홍콩에 와서 처음으로 도전을 받았다. 문화적 차이도, 언어적 장벽도 있었으나, 그 무엇보다 독특했던 이 회사의 문화가 참 힘들게 했다. 


"아니, 무슨 교육 목적을 이미 정했는데 사장님이 계속 바꿔요.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건지, 만날 때마다 즉흥적으로 계속 바뀌어요."

"지금 와서 얘기지만, 저도 힘들었었습니다. 교육 중간에 앞으로 나오셔서 제 마이크를 뺏고는, 홍콩에서는 그런 식으로 안 한다며 직접 교육 일부를 진행하신 적도 있었습니다."


언젠가 나의 전임자와 나눴던 대화다. 먼저 회사를 나간 A와 B도 거의 같은 맥락의 말을 했다. 나올 때는 힘들었지만, 어차피 오래 있을 회사는 아니었다며, 오히려 지금은 더 잘 됐다고 생각한다고. 특히 매니저에 대한 불만이 강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최대한 매니저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왜 그랬을까? 환경의 변화가 불러온 마음의 조작이었다. 


홍콩에 오고 나니 적응이 정말 힘들었다. 솔직히, 한국에서 회사가 바뀌어도 적응이 쉽지는 않다. 많은 노력을 해야 하고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해외로 그것도 회사를 바꾸어 이주했다. 적응에 고전하며 이직이나 다음 커리어,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고민은 사치스러웠다. 홍콩에 왔고, 이 회사가 아니면 갈 곳이 없고, 아이들은 국제학교를 다니고 있고, 나는 이 환경을 유지해야 했다. 버텨야 했다. 그래서 나를 뽑아준 매니저를 최대한 옹호했고, 바른말보다는 적당히 괜찮은 말로 상황들을 모면해 왔다. 친구들은 계속 퇴사했고, 부정적인 회사의 문화는 점점 강해져 갔다. 사실 이것 만으로도 심리적으로 힘들었다. 정말로 날로 날로 버틸 뿐이었다. 


성찰 3. 더 솔직한 속마음


첫 회사에서 영업을 시작했을 때, 한 선배님이 주셨던 책이 있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책을 다 읽지도 않았었지만, 책 초반부에 한 문장은 지금까지도 가슴깊이 박혀있다.


'회사는 남으려는 사람은 내보내고, 나가려는 사람을 붙잡는다.'


이 말은 나의 직장생활에 적잖이 영향을 주었다. 언제나 다음 커리어에 대해서 고민했고 미리미리 준비했다. 덕분에 여러 회사를 원하는 보직으로 옮겨 다닐 수 있었고, 경력과 능력을 인정받아 여기까지 왔다. 


"저는 버티는 직장생활은 안 할 겁니다."


젊은 시절, 습관처럼 하던 말이었다. 한국에서는 어디로든 옮길 자신이, 심지어는 스스로의 일을 만들어 나갈 자신도 있었다. 그 자신감이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며, 언어적으로 벽에 부딪히며, 사회적 network이 줄어들고 고립되며, 이곳 홍콩에서는 버티는 사람이 되었다. 고성과자로 각광받는 직원이 아니라 그저 그런 직원으로 지내는 시간들이 더 많았다. 


마음이 너무 어려워 코칭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래도 홍콩에서 버텨 냈다는 것, 가족과 행복하고 안정된 생활을 한다는 것, 아이들이 이제 영어를 다 잘한다는 것 등등 긍정적인 부분들을 많이 얘기하며 위로도 받고 용기도 내어 보았다. 


"홍콩에 가서 가장 크게 얻은 것은 무엇이었나요?"

"...... 저성과자로 살아본 기분입니다. 저는 항상 고성과자였는데, 저성과자로 살아본, 버티는 직장생활이 무엇인지 몸으로 체험해 봤습니다. 이제 직장에서 버티는 분들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아요."


코치의 질문에 답했다. 그런데, 그러면 이 깨달음에서 다음 행동을 모색해야 했는데,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글쓰기도 해보고, 또 코칭을 받아보고, 이런저런 시도는 해 보았지만 지속하지 못했다. 위기가 올 것도, 이 시간이 영원하지 않을 것도 알면서도 한국과 다르게 그랬다. 왜 그랬을까 돌이켜 보면, 마음의 힘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날, 내 의지가 아닌, 회사의 결정으로 퇴사 통보를 받았다.




기도로 깨달음


기도한다. 매일 아침을 말씀과 기도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이런 방식이 아니라면 내가 이직이나 퇴사를 했을까? 아마도 더 버티며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퇴보했을 것 같다. 버티는 사람은 발전하기 힘들다.  


둘째, 퇴사는 시간의 문제일 뿐, 이 회사 그 보직에 과연 얼마나 오래 있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본다면, 지금 퇴사의 방식이 가장 너그럽다. 4개월의 구직기간, 급여와 복리후생, 보너스와 퇴직금까지 모두 보장받는다. 


셋째, 정신을 바짝 차렸다. 위기는 사람을 강하게 한다. 위기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며, 위기 없는 인생이 어떤 의미가 있으랴? 용광로에 들어가야 순수한 금이 되듯, 위기를 통해서 더 순수하고 단단해진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을 말한다. 위기가 은혜라고. 


직장은 결국 목표가 아니라 도구라는 것을 몸으로 깊이깊이 깨닫는다. 업(業)을 추구해야 함의 중요함을 다시 한번 새긴다. 앞으로 몇 개월간 자기 관리와 구직의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결말은 알 수 없다. 어느 화려한 자리로 또 옮기게 될지, 아니면 이제부터 남은 길이 모두 내리막일지. 안정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의 게임판에서 사라졌다. 동물원 우리에서 살던 맹수가 이제 초원으로 방류되기 직전이다. 구인 검색과 이력서 갱신, 지원도 중요하지만 가장 먼저 나의 뜻을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함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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