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사랑이 삶을 충만케 합니다.

by Passion fruit

“사랑은 받는 것만큼이나 주는 것이 기쁘다.”


정말로 그럴까요? 사랑을 주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충만할 수 있을까요?



나는 혼자여도 괜찮아 널 볼 수만 있다면, 늘 너의 뒤에서 늘 널 바라보는…


한 걸음 뒤엔 항상 내가 있었는데 그대, 영원히 내 모습 볼 수 없나요..


나 네게 너무나도 부족하겠지만 다 줄 거야 내 남은 모든 사랑을…


원하는 좋은 사람 나타날 때까지 난 잠시 그녈 지켜 줄 뿐야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기에 그걸로도 감사해 워워…

지고지순한 사랑을 노래하는 수많은 노래 가사들은 아름답게만 들리는데, 현실에선 어떤가요? 정말로 사랑을 주기만 하는 그런 사랑이 현실에 있을까요? 혹시 있다고 해도 얼마나 있을까요? 얼마나 오래 주기만 할 수 있을까요? 이 많은 노래들이 사랑을 주겠다고 하지만, 사실 사랑을 갈구하는 노래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사랑받기를 원합니다. 당연한 일이죠. 그래서 노래에서도 사랑받지 못하는데 사랑을 주기만 하는 사람을 바보라고 했나 봅니다. 특히 젊을 때는 이런 현상이 더 도드라지는 것 같습니다. 간혹 첫눈에 반하거나 콩깍지가 씌우면 주기만 해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랑을 받지 못하면 얼마 못 가 감정의 바닥을 드러냅니다. 나이가 점점 들수록 순수한 사랑은 보기 어렵고 서로 감정을 재기 시작합니다. 내가 이만큼 사랑하면 상대에게도 그만큼 돌려받고 싶은 겁니다. 거절은 작은 것이라도 경험하기 싫습니다. 얼마 전 '나는 솔로 돌싱 특별 편'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중 기억에 남는 남자 참가자 한 분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선택 전날, 여성 참여자들을 만나며 ”내가 당신을 선택하면 당신은 나를 선택할 것인가? “ 를 밤새도록 집요하게 확인하고 다녔습니다. 여성분들이 그렇게 답하기를 거절하는데도 확인하려 했던 이유를, ‘거절당하기 싫기 때문’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아주 솔직한 인간의 마음입니다. 이렇게 보면 주기만 하는 사랑은 인간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저는 서른세 살에 지금의 아내를 만났습니다. 나이 들어 소개팅을 하다 보니 감정을 재는 경험을 사실 많이 했었습니다. 서로 감정을 재며 조심스럽게 주는 만큼 돌려주고, 피해보지 않을 만큼만, 거절감이라는 상한 마음을 갖지 않을 만큼만 조심조심 접근합니다. 그래서 그런 걸까요? 이런 재는 관계에서는 사랑이 형성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한눈에 반한 케이스입니다. 아내를 만났을 때 첫눈에 반해서 재지 않고 그냥 막 돌진했습니다. 아내도 저의 그런 모습이 다른 남자들과 달랐다고 했습니다. 나이도 제법 찬 사람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들이대는 경우는 별로 없더라는 거지요. 그렇게 아내에게 첫눈에 반해 콩깍지가 씌고 하루 24시간 7일 밤낮을 아내만 생각하는 사랑에 빠졌어도, 주는 만큼의 사랑을 돌려받지 못했다면 관계가 유지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만큼 또 사랑받기를 갈구하게 되니까요. 그런데 아이를 갖게 되면서 사랑에 대한 새로운 눈이 띄어졌습니다.

저는 첫째 아이를 분만실에서 제가 직접 받았습니다. 생명의 탄생을 경험하는 것은 그 자체가 경이로운 일인데, 내 아이를 내가 직접 받는 경험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신비이고 감동이었습니다. 이 아이는 세상 그 어떤 존재보다도 사랑스러웠습니다. 눈짓하나 손짓하나 웃음 하나하나에 집안이 행복해지곤 했습니다. 우리 부부의 모든 삶의 중심은 아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있음으로 해서, 그 자체로 인해서 우리가 행복하구나. 때로는 속을 썩이기도 하고 안타까울 때도 있지만 그런 것과는 관계없이 무한히 사랑스럽습니다. 사랑을 늘 주어도 더 충분히 사랑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일방적으로 언제까지라도 사랑해 줄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는 우리 가정에 태어난 서 자체만으로 그냥 그런 존재가 되었습니다.

“아이가 있으면 집에 웃을 일이 많아!”

제 직장 동료가 했던 말입니다. 다들 경험하지만, 어린이를 키우는 그 시절 가족의 행복은 아이들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문득 궁금했습니다. 저는 아내를 사랑합니다. 많이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아내에게는 주기만 하는 사랑이 불가능했을까요? 반면에 내 아이에게는 주기만 하는 사랑으로도 기쁘고 충만하고 행복할까요?

저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불완전함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서 주기만 할 수 있는 사랑이 그 안에 없습니다. 공급받아야만 줄 수 있습니다. 저는 아내를 많이 사랑하지만 또 끊임없이 아내의 사랑을 갈구합니다. 그렇게 서로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부부입니다. 사랑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일상에서도 나의 감정적인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쉽게 짜증을 내기도 합니다. 어느 한쪽의 공급이 끊어져 버리면 관계에는 균열이 생깁니다. 그런데 자녀들은 그 존재 자체가 특별합니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제 핏줄입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이 세상에서 저와 아내만 전적으로 의지합니다. 부모의 돌봄이 없이는 생존할 수 없고, 부모의 사랑이 없이는 건강히 자랄 수 없습니다. 자녀들은 그런 존재입니다.

저는 크리스천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존재이십니다. 사랑을 공급받지 않으셔도 이미 그 사랑이 무한하셔서 우리에게 이미 무한히 공급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을 주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행복해하고 계시지 않으셨을까요? 천지를 창조하실 때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표현이 그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한히 우리에게 사랑을 주시려고 다 준비를 해 놓으셨고 그렇게 사랑해 주고 계셨는데, 그 복을 차버린 탕자가 지금의 우리입니다. 이렇게 자녀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사랑을 생각하다 보니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단 하나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절대적인 의존.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우리에게 보여주었듯이요.

글을 쓰고 나서 이런 생각이 더 들었습니다.

자녀들은 그렇게 소중한 존재인데, 그 존재 자체만으로 사랑스럽고 행복한데 언제부터 자녀에게 자격을 원하게 되는 것일까요? 좋은 성적,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 등등...... 그러면서 금이 가는 많은 관계들. 저는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거기까지 가지는 않았는데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지요. 인생은 예측이 불가능하니까요. 하지만 아이들의 성적과 대학, 직장 때문에 더 사랑하고 덜 사랑하는 일은 없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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