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스, 카이로스
요즘 아이들을 보면, 사진이나 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일을 아주 자연스럽게 한다. 내 딸도 가르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아이패드를 잡고 이리저리 만지작 거리더니 알아서 편집을 해낸다. 어려서부터 디지털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베어버리는 세대다.
나는, 그야말로 카세트테이프로 저장을 하던 8비트 컴퓨터부터 시작해서 모든 단계의 컴퓨터를 보았고, 삐삐, 시티폰, 핸드폰 그리고 스마트 폰으로 이어지는 모든 통신기기의 역사를 몸으로 체험하고 사는 세대다. 아이들이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 그림 낱말카드를 이용하곤 하는데, '전화기'라는 단어는 참 나를 곤혹스럽게 했다. '전화기'라는 낱말 카드에는 다이얼 전화기나 버튼 전화기가 그려져 있었는데 이젠 그런 전화기를 어디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전화기가 예전엔 집집마다 있었어."
라고 설명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외삼촌 댁에 인사드리러 갔다가 거실에 놓여있는 다이얼 유선 전화기를 발견했다. 아이들은 고시대의 유물을 본 듯 신기하고 재미있어했다. 전화를 걸어보는데 아이들에게 쉽지 않았다. 다이얼 전화기는 번호 하나하나를 돌릴 때마다 다이얼이 제자리에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 기다림이 익숙하지 않았다. 몇 번을 실패하고 나서야 전화 걸기에 성공했다. 1, 2초의 다이얼 전화기의 기다림. 그 기다림이 쉽지 않은 세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만 꼭 아이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가다 보니 기다릴 줄 모르고 조급해지는 나 자신을 보기도 한다.
친구들 또는 지인들과 핸드폰이 없던 시절을 종종 얘기하곤 한다. 그때는 20~30개 정도의 전화번호는 자연스럽게 외웠었다. 약속을 하고 나면 반드시 그 시간에 그 자리에 가야 만날 수 있었다. 상대방이 늦으면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10분 정도는 충분히 기다려 줄 수 있었고, 나는 보통 30분 정도는 기다렸던 것 같다. 30분은 충분히 기다렸고 자리를 떠나도 될 만한 마땅한 이유로 여겨졌었다.
고등학교 수능 시험이 끝나고, 처음으로 연애(?)를 했다. 여자친구, 남자친구라고 부르기는 했지만 서로 너무 서툴렀던 기억이 난다. 계속되는 엇박자에 관계는 몇 주 가지 못했고, 여자는 연락을 끊어 버렸다. 삐삐가 최고의 통신 수단이었던 그때는 연락을 끊기도 참 쉬웠다. 여자를 만나기 위해 어느 비 내리던 날, 여자의 집 앞 골목에서 서너 시간을 기다렸다. 결국에 만났었는지 안 만났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돌이켜 보면 썸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했던 관계. 골목길에 서서 수없이 지나가는 행인들을 보며 추위에 엄청 고생했던 청승맞은 기억만 남았다.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나는 기다림에 많이 익숙해졌었다. 대부분의 경우 아내의 집 앞에서 만나곤 했는데, 아내는 보통 30분을 늦었다. 30분은 기본이고 한시간인 경우도 많았다. 분명히 몇 시에 도착한다고 미리 문자를 넣어도, 그렇게 늦었다. 어느 날은 1시간 반을 늦었다. 한 시간 반은 너무했다! 나는 무심한 표정에 불편한 심기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런 나를 보던 아내는 오히려 화를 냈다.
"오빠! 지금 나 늦었다고 그러는 거야? 나한테 화난 거야?"
순간 바로 꼬리를 내렸다. 아, 화가 났는데 정말 미안하다고. 늦었다고 화내서 미안하다고. 앞으로 안 그러겠다며 사과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내가 사과를 하는 게 말이 안 되는 상황이지만, 그렇게 됐다.
유튜브 쇼츠에서 어느 서부영화의 한 장면을 보았다. 먼 거리를 이동하는 한 무리가 있고, 이를 보호하는 총잡이가 있다. 갑자기 인디언들이 들이닥쳤다. 총잡이는 한 여인에게 권총을 쥐어주며 당부했다. 내가 실패하면, 정확히 머리를 쏴 자살하라고. 그 편이 인디언들에게 잡히는 것보다는 낫다는 당부다. 사투를 벌이던 총잡이는 한 인디언의 몽둥이에 맞고 쓰러진다. 인디언이 죽었는지 확인하러 다가오는 순간, 총잡이는 총을 쏴 인디언을 잡고 싸움에서 이겼다. 하지만, 여인이 있던 자리로 돌아왔을 때 그 여인은 이미 자살을 한 상태였다.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살 수 있었을 텐데. 총잡이가 인디언의 몽둥이에 맞고 쓰러졌을 때, 그때 방아쇠를 당겼다.
직장생활을 하며 얻은 지혜중 하나는, 기다리는 지혜다. 짬밥을 괜히 먹는 게 아니라고,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기다리면 풀리는 경우를 경험하곤 했다. 마치 급하게 무언가를 확인하고 어떤 실행을 해야 할 것 같지만, 기다리면 전부가 또는 80~90% 정도는 해결되는 경우가 있곤 했다. 정말 감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밖에 없다. 조직의 분위기와 업무 상황, 사안의 맥락등을 알게 되면 간혹 그런 감이 온다.
원치 않는 퇴직을 당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느 정도 기다림의 과정을 모두 겪었다. 누군가에게는 몇 주 또는 몇 달이었고, 어떤 사람은 1년을 넘기기도 했다. 그 사람들의 얘기를 들을 때에, 몇 달은 제법 짧게 느껴진다. 하지만 내가 직접 경험하는 시간은 짧지 않다. 특히 요즘 같은 때의 하루는 제법 길게 느껴진다.
시간이란 참 묘하다. 때때로 시간은 더디 가는 것 같지만, 돌아보면 항상 빨리 지나갔다. 남의 아이는 쑥쑥 자라는데, 내 아이들만 더디 자란다. 남의 시간은 빨리 지나갔고 내 시간은 참 느린 것 같다. 가뜩이나 모든 것이 손 안의 기계로 즉석에서 해결돼 버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확실히 과거보다 조급해질 이유가 많다는 것이 공감되는 세상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에는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가 있다. 크로노스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물리적인 시간인 반면, 카이로스는 어떤 주관적 의미가 있는 시간을 의미한다. 하루 24시간인 크로노스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져있다. 추운 겨울 빗속에서 서너 시간을 기다렸다 차였던 시간, 기본 30분, 길게는 한 시간 반까지 기다리면서도 기쁨과 행복으로 아내를 만났던 시간,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 가족과 함께 홍콩에 왔던 시간은 모두 카이로스적 시간이다.
지금 기다리는 것은 카이로스다. 어떤 기회가 어떤 만남과 인연을 통해 나에게 다가올까? 크로노스적 시간으로는 언제 올지 알 수 없지만, 카이로스적으로는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게 된다. 미끼 없는 낚싯대로 세월을 낚았다는 강태공이 떠오른다. 강태공은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차이를 진정으로 알았던 사람 같다.
PS. 이것저것 부산하게 하면서 하루하루를 제법 바쁘게 꾸려나가다가 확 게을러진 요즘이었습니다. 구정 연휴도 있었고, 다리도 다쳐서 운동을 잠시 못했고, 피곤함에 사무실에 오는 날 수를 줄이다 보니, 루틴이 조금씩 무너지고 게을러졌습니다. 그러다 문득 '나는 무엇을 기다리나'라는 생각이 들어 끄적여 보았습니다. 적고 나니 기분이 좀 나아지네요. 다시 일어나야지요. 물론, 세월을 낚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더 의미있게 지내야지요. 스스로에게 다짐합니다.
Let's tighten up ag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