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 있고 싶어요.

by Passion fruit

며칠 전, 전철을 타고 이동하는데 둘째가 문득 말했다.


“아빠, 나는 홍콩이 좋아. 홍콩에 계속 있고 싶어.”


뜬금없이 갑자기 나온 말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나름대로 고민했을 거다.


“친구들도 다 홍콩에 있고, 학교도 좋아.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이 많아서 매일 축구도 할 수 있어. 나는 홍콩에 계속 있고 싶어.”

아이들에게 친구는 너무나 중요하다. 처음 홍콩에 왔을 때 말이 안 되어서 친구 사귀는데 고생했던 아들에게는 더 그럴 수도 있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닌 적도 없으니,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면 어떤 상황일지 상상이 안될 거다. 한국은 공부를 많이 시키고, 쉬는 시간이 짧고, 학교 끝나면 주로 학원을 다녀야 한다고 들었을 뿐이다.

딸의 반응은 아들과는 다소 다르다.


“나는 반반이야. 여기 있어도 좋고, 돌아가도 좋아. 나는 한국에 친구도 있잖아.”


그래도 조금 컸다고 나름대로 소화시키려는 것 같다. 바라지 않는 결과가 올 수도 있고 그런 결과가 온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아니까, 어느 정도 나갈 길을 열어 놓은 것 아닐까?


우리 가족은 일요일 저녁마다 간단히 가족예배를 드린다. 때때로 예배 후에 가족회의를 하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말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빠도 아직 몰라. 아빠가 일을 구해서 여기 홍콩에 더 있게 될지,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될지, 또 다른 나라로 가게 될지 아직은 정해진 게 없어. 그래서 기도하고 있어. 너희는 너희가 원하는 것들이 있을 거야. 그 마음 그대로 하나님께 기도하면 돼. 기도하면 응답해 주실 거야.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답은 항상 세 가지 중에 하나야. Yes, No 그리고 Wait. 어떤 답을 주실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게 무엇인지 가장 정확히 아시는 분은 하나님이니까, 우리는 믿고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가면 돼.”


말은 이렇게 했지만 마음은 편치 않다. 나도 그 믿음을 순전히 갖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아빠로서 마음 한편에 아이들에게 더 안정적이고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지 못하는 미안함이 없어지질 않는다. 처음 홍콩에 적응하던 시절, 코로나 상황 가운데에서 언어와 문화와 새 직장에서의 다른 업무 환경으로 정말 힘들었었다. 매일매일 좌절했었고 얼이 나가 실수와 오판을 부끄러운 순간들이 수두룩 했다. 아내는 아내대로 새 환경에서 고군분투하고,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학교에서, 유치원에서 적응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어느 날 딸아이에게 물었다.


“요즘 학교생활은 어때?”

“응 아빠, 재미있어!”


그때 딸은 홍콩 한국국제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딸아이의 재미있다는 말 한마디에 내 노력과 수고가 보상받는 것 같았고, 이 모든 어려움을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의미를 주었다.

‘그럼! 아빠가 못할게 뭐 있겠니, 네가 좋다는데. 걱정 마! 아빠가 당연히 해 내야지!”

홍콩에 처제가 조카들을 데리고 놀러 왔다. 날을 잡고 온 가족이 침사추이, 센트럴, 미드레벨, 타이쿤 지역을 쭉 돌았다. 택시 두 대에 나눠 타고 짚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앞자리에, 아들은 사촌형과 이모와 함께 뒷자리에 앉았다. 아들은 택시에서 이모한테 말한다.


“저는 홍콩에 꼭 있고 싶어요. 홍콩이 집도 좁고 길도 좁고 하지만, 여기에 친구들도 많고 학교가 재미있어요. 저는 홍콩이 좋아요.”


아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쿡쿡 박힌다.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마가복음 4:35~38)



'주여, 어찌하여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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