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어쩜, 사연을 들으니 참 안됐네요." 의외의 반응에 잠시 얼떨떨했다. 아이가 칭얼거리는 소리에 마음이 쫒기는 건 나 혼자 였나 보다. 통화에 도무지 집중을 할 수 없어 서둘러 전화를 끊을 줄 알았던 아기 엄마는 차분했고 흔들림이 없었다. 아기를 열심히 얼르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니. 나라면 바쁘다고 호들갑을 떨었을텐데 아기 엄마는 전혀 문제 될 거 없다는 듯 여유로웠다. 그 모습이 마치 따스한 햇빛에 반짝이는 잔잔한 호수처럼 평화로웠다. 누구라도 그녀 곁에 있으면 마음이 진정될 것 같았다. 별일이 있어도 별 일 아니라고 믿게 만드는 특유의 안정감이 있었다. 엄마의 마법이 통한걸까. 아기는 점차 고요해졌고 덕분에 나도 안심이 되어 후원을 권유드렸다. 아기 엄마는 솔직히 망설여진다고 말하며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아이가 둘 있는데 혼자 키우게 되어 형편이 어렵다고 했다. 게다가 아이 한 명이 아픈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고단한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져서 더 이상의 권유는 할 수 없었다. 그저 넋두리라도 들어주고 싶었다. 한바탕 하소연을 쏟아내면 '힘내세요!'라는 따뜻한 한마디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분은 결이 달랐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말끝마다 '그런데'를 붙이는 거다. ".....그런데요, 제가 일자리를 구하게 되었어요. 너무 감사하죠?" ".....그런데요, 교회에 아는 분이 저희 아이들을 돌봐주겠다고 하세요. 너무 감사하죠?" ".....그런데요, 우리 아이가 마침 잠이 들었네요. 너무 감사하죠?" '그런데'가 지나간 자리에는 어김없이 '감사'가 따라왔다. 손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 황금으로 만들어버리는 '미다스의 손'처럼 입에 올리는 것마다 쟂빛의 현실이 무지개빛으로 덧칠되었다. 단순한 말버릇이 아니라 말투와 억양에 진심이 담겨 있기에 더욱 예뻤다. 결국 그녀는 감사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라는 이유로 후원을 결심했다. 내가 신이라면 두고 보기에도 아까운 피조물이라 감탄하며 세상의 모든 복을 훈장처럼 달아주었을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맹렬한 질투를 느꼈다. 객관적인 조건으로만 비교하자면 내 처지가 그녀보다 훨씬 나았다. 그러니 '감사'는 내가 더 많이 느껴야 했다. 마땅히 나의 행복지수가 더 높아야 옳다. 무언가 근본적인 어떤 것을 놓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남의 불행을 보며 '나는 그 정도는 아니니까 다행이야'라고 위안삼는 얄팍한 '행복'에 불안하던 참이었다. 이런 비교우위의 행복은 내가 남보다 부족하다고 느끼는 순간 금방 바닥나곤 했으니까. 고작 하루이틀을 넘기지 못했다. 더 이상 책으로만 배우고 머리로만 아는 '행복'은 싫었다. 나는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원했다. 알고 싶었다. 그녀와 나의 미묘한 차이를.
우연히 마주하게 된 이 그림에서 한동안 답을 찾지 못해 끙끙대던 질문을 다시 떠올린다. 심심풀이로 이따끔씩 하는 직소퍼즐을 고르다가 문득 해결의 실마리를 잡은 것이다. 그림에 눈을 떼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고 매장 직원이 다가와 말을 했다. "쿠바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 알렉스 루이즈의 '별이 빛나는 밤'이예요.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재해석한 작품인데요. 반 고흐가 명작을 그렸을 때 밤하늘이 어땠을지를 상상하며 그린 것이라고 하네요." 나는 아름다운 밤하늘을 경의롭게 바라보고 있는 그림 속 화가에 주목한다. 그는 좁디 좁은 캔버스에 광활한 자연을 어떻게든 옮겨보려고 애를 쓰지 않는다. 언뜻 그는 그림 그리는 것을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어떠한 기술도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을꺼라 여기며 단지 하염없이 밤하늘에 취해있다. 내가 그였다면, 시선이 온통 붓 끝을 향해 있었겠지. 화폭에 코를 박고 그림 그리기에만 열중했을테지. 후대에 길이 남을 만한 걸작을 완성한답시고 고군분투하느라 정작 아름다운 것은 내 눈에 하나도 담지 못했으리라.
나는 행복하고 싶어서 행복을 수없이 정의 내리며 살았다. 캔버스에 무엇을 그려 넣으면 행복한 그림이 될까 내 멋대로 단정짓고 그 외의 것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신께 기도를 드릴 때도 답은 항상 정해져 있었다. 행복하기 위해서 이게 필요하니 이것을 달라, 저것을 달라. 요구한 것이 아니면 어떤 선물인지 포장을 뜯어 볼 생각도 안하고 처박아 두는 식이었다. 신이 내게 주셨으나 꺼내보지 않은 은총들에는 먼지만 쌓여갔다. 내가 안달할 수록 행복은 달아난다. 인생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취하지 않으면 감사하는 마음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아마 신은 지금도 내 귓가에 속삭이고 있겠다. "제발 행복하려고 애쓰지 말아라. 그저 니 인생을 살거라. 하나뿐인 니 인생이 걸작이다. 행복은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