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에게 후원이란?
2010년 5월 19일 일기:
내게 미국은 야생이다. 어느거 하나 거저 주어지는 것이 없다. 한국에서는 내가 집착하는 한,두가지 문제로 몇날며칠을 울고 불고 할 수 있었지만 여기에서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서 하루하루를 살아나가는 것 자체가 모두 일이기 때문에 그것마저 사치다. 부모님의 지원과 학교라는 울타리가 있었던 호주는 낭만이었다. 냉정한 비즈니스 세계는 나를 기다려주는 법이 없다. 가만히 멍 때리고 있으면 맹수에게 물려죽는다. 매 순간 정신 바짝 차리고 온갖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켜야 한다. 울고 분다고 누구 하나 나를 딱히 여기지 않는다. 살아내야 한다. 살아 남아야 한다. 온 신경세포가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날카롭게 곤두서니 시베리아 벌판에서 생존 본능을 익힌 호랑이처럼 마침내 내 생명이 살아 꿈틀댄다. 홀로서기를 배우고 있는 지금 나는 강하고 아름다운 여자. 행복하다. 팔딱팔딱 살아 숨쉬고 있어서
지금으로부터 십년 전, 스물여덟의 나는 LA 한 로펌에서 마케팅 부서의 인턴으로 매일 살얼음 걷는 심정이었다. 20대 나의 로망을 위해 첫 직장도 그만두고 호기롭게 떠난 미국행이었는데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영어 실력도 충분하지 않았을 뿐 더러 한국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는 것보다 업무 강도가 훨씬 높았다. 게다가 법조계 특유의 프로페셔널한 분위기는 사람을 질리게 만들었다. 우아하고 절제된 미가 돋보이는 그들과 달리 나는 날 것 그대로였으니 말이다. 정형화된 틀에 나의 자유로운 영혼을 가두는 것이 여간 답답한 것이 아니었다. 숨통을 죄어오는 긴장감속에서 유일한 나의 안식처는 보안 경비원 마리오. 구리빛 피부의 맥시코계 미국인이었는데 출퇴근마다 로비에서 눈을 맞추어 주고 안부를 물어봐주었다. 소처럼 맑은 눈망울과 선한 미소가 꽁꽁 얼어있는 내 마음을 녹여주었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외로움에 부대끼던 내게는 그 작은 친절이 하루를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이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까탈스럽기로 소문이 난 상사가 온종일 달달 볶아 멘탈이 탈탈 털리는 날이었다. 스트레스를 꾸역꾸역 삼키다가 결국은 소화를 못 시키고 상사의 면전에 내 감정을 토해내버렸다. 나의 언행은 수습이 불가한 것이었다. 끝이라고 생각했다. 마리오는 펑펑 울면서 뛰쳐 나가는 나를 붙들었다. 자초지종을 확인하더니 나를 타일렀다. "소영,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어. 실수 했을 때, 가능한 빨리 인정하고 원래의 너 자리로 돌아가는 것. 그게 중요한 거야." 그 한마디가 나의 발걸음을 되돌렸다. 덕분에 나는 일년여의 좌충우돌 인턴생활을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마지막 근무일에 마리오와 나는 점심을 같이 먹고 공원을 산책했다. 쨍하게 부서지는 햇빛에 야자수가 반짝였다. 마리오가 나에게 미국에서 남은 며칠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에 대해서 물었다. 혹은 수중에 남은 돈으로 무얼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이야기해도 좋다고 했다. 혈혈단신 태평양을 건너 와서 오로지 혼자 힘으로 번 돈. 주머니 속에 꼬깃한 미국달러를 만지작 거릴 때 그동안 내가 겪은 모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뿌뜻하면서도 서럽고 기쁘면서도 슬픈 복잡한 감정이었다. 그때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던 어느 노숙자가 내 눈에 들어왔다. "우선, 저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 그렇게 나의 애환이 담긴 미국 달러 몇 장이 그에게 갔다. "와우! 축하해! 힘들게 번 돈을 선뜻 주다니. 드디어 너가 이 나라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증거야!" 마리오는 박수를 치며 외쳤다. 우리 둘은 동시에 웃음이 터져 한참을 깔깔댔다.
"주말에 한국을 떠나요. 마지막으로 후원을 하고 싶어요!"
'축하합니다! 드디어 당신은 한국을 사랑하게 되었군요!'
외국인 노동자의 후원결심에 하마터면 마리오처럼 박수를 치며 외칠 뻔했다. 어디선가 마리오의 웃음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십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는데 밀물처럼 밀려오는 소중한 추억은 하나도 바래지 않았다. 캄보디아에서 왔다고 소개한 후원자님은 제법 한국말을 잘 해서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구체적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어떤 일을 하면서 한국에 있었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은행 계좌를 닫기 전에 남은 돈으로 무엇을 할까 생각중이었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본인에게는 큰 의미가 있을 꺼라고 했다. 달뜬 목소리에 십년 전 내 모습이 겹쳐졌다. 그 돈이 후원자님에게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리고 나의 일부를 떼어 사회에 환원하고 싶은 그 마음도 안다. 차갑고 낯선 나라가 어느새 내 사람들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그들이 평생 살아 숨쉴 이 터전이 나와 무관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사랑하게 된 후원자님께 깊은 감사를 표하고 싶다. 언젠가는 성공해서 다시한번 한국에 오고 싶다던 꿈이 꼭 이루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