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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팬 팅커벨을 만나다

ADHD 진료 후기

피터팬에게 팅커벨은 둘도 없는 친구였죠.

어쩌면 친구보다 더한 존재였습니다. 

팅커벨이 있기에 피터팬은 하늘도 날 수 있고 악당 후크선장도 물리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그러한 일들이 반복될 수록 피터팬은 팅커벨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왜냐면 팅커벨에게 점점 더 많이 의존하게 되었으니까요. 


우리 아이에게 치료약은 그런 존재이다

아침에 막 일어났을 때 아이의 방방 뜨는 상태는 가장 심하다.

목소리도 크고, 엄청 뛰어다니고, 동생과도 툭하면 싸운다.

옷을 입으라해도, 밥을 먹으라해도 딴 짓을 한다.


그러면 우리는 처방받은 대로 아이에게 두알의 약을 먹인다.

그러면 잠시 후 아이는 비교적 차분해진다.

좀 예민해지지만 자기가 하는 것에 좀 더 집중하고, 엄마의 말을 좀 더 잘 듣는 것 같다.

그리고 학교생활도 약을 먹였을 때 선생님한테 지적을 덜 받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나는 점점 약에 의존하게 되었다.


"오늘 왜 이렇게 방방 뜨지? 약먹였어?"


아이가 통제가 힘들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아내에게 이렇게 물어보고는 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나는 아이가 듣고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점점 이런 류의 이야기를 자주하게 되었다


"자갸, 빨리 약 좀 먹여"

"자갸, 약 안먹어서 저런거 아냐?"

"오늘 선생님한테 지적 받았다고? 오늘 약 먹이는 거 깜빡한거 아냐?"


사실 약은 ADHD 치료를 위한 보조제이다.

아이가 계속 지적을 받으면 위축되고, 그러다보면 성격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그걸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본인이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약을 통해 그걸 스스로 알게 해주는 것이다.


약은 보조제에 불과하고, 결국 아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면담과 사랑으로 치료해줘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선은 지금의 상황을 모면하고 싶어 나는 너무 약에 의존하였던 것이다.

   


"나 오늘 약을 안먹어서 그런가봐"


어느 날 너무 방방 뜬다고 다그치는 우리에게 아이가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 순간 아차 싶었다.


아이 스스로가 약에 의존하게 만든 것이다.

마치 팅커벨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피터팬처럼 나는 아이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아니야. 약하고는 상관없어"

"약 안먹어도 침착해질 수 있어"


그렇게 애둘러 말했지만, 아이의 눈은 벌써부터 '나는 약없이는 안돼'하는 표정이었다.

다행히 우리 아이는 약에 대한 신체적 부작용은 없었다.

그러나 정신적 부작용을 내가 만든 것이다.


그날 나는 내 방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너무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내가 너무 약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부터 노력해보자


아이의 장점을 보자 

아이가 너무 방방 떠도 화를 내지 말고 침착하게 타일러보자 

아이에게 약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말자


그렇게 노력해보기로 했다.


이후 나는 그 전에 비해 화도 덜 내고, 약 이야기도 덜 했다.

아이도 점점 안정을 찾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이는 2주에 한번씩 가는 병원에서의 상담치료도 비교적 잘받았다.

의사 선생님도 아이가 많이 안정을 찾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시련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그건 아이가 3학년을 끝마쳐가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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