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적응기
둘째 아이의 같은 반 친구가 코로나 확진이 되었단 소식은 우리 가족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우리 가족 중 누구 하나 코로나 양성이 나오면 캐나다 입국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떨리는 마음으로 온 가족이 코로나 검사를 하였다.
검사 결과가 나오는 그 사이까지 얼마나 떨렸던지.
다행히 우리 가족 모두 음성이 나왔을 때 우리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캐나다로 가기 위한 여정은 쉽지 않았다.
우선 큰 아이의 ADHD 약이 문제였다.
"선생님 아이가 캐나다에서 2년 있다 올건데 약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영어 진단서를 써드릴테니 이거 가지고 약을 달라고 하시면 될 거에요"
"또...캐나다 간 직후는 병원을 못 갈수도 있으니 몇 달치 약을 주시면 안될까요"
"음...3개월치 드릴게요"
우리는 우리 아이의 담당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영어 진단서를 받아 챙겨두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약도 3개월치를 받아갔다.
그러함에도 또 낯선 환경에 직면해야 하는 우리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내심 생겼다.
"그래도,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는 이게 좋은 선택일거야"
우리 부부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캐나다 출국 날 부모님의 배웅을 받으며 우리는 그렇게 한국을 떠났다.
12시간의 비행
다행히 아이들은 잘 버텨주었다.
처음으로 와 본 캐나다는 오전이었다.
우리들은 한동안 이민국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드디어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2년 동안 살 집으로 향했다.
낯선 나라, 낯선 집
모든게 생소했다.
그런데...
다음날
2022년 12월 24일
많은 양의 눈이 내린것이다.
그렇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아이들과 함께 동심으로 돌아가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했다.
아이들과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즐거운 시간도 잠시..
다음날 부터 역경이 시작되었다.
낯선 환경이 문제였다.
아직 아이 학교가 등록되어 있지 않고,
낯선 환경 탓에 아이들은 거의 몇 주를 집안에 쳐박혀있었다.
그리고, 심심하다고 노래를 불렀다.
그러기에 게임하는 횟수가 늘어났고, 점점 흥분하는 횟수도 늘어났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 큰 아이의 증상이 심해진 것이다.
반항이 심해졌고, 동생과 자주 싸웠다.
낯선 환경은 아이를 불안하게 만들고, 흥분하게 만들었다.
문제는 나 역시 낯선환경 탓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던 것이다.
즉, 아이의 그런 증상을 참아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내가 처음으로 아이에게 체벌을 한 것이...
우리 가족은 이상한 나라에 온 앨리스처럼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던 것이다.
물론 우리 아이도 그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