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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아빠 그 후.. 3개월 (상)

아이들의 한국 적응기

작년 나는 기러기 아빠라는 생소한 경험을 했다.


와이프는 캐나다에서 아이들과 함께 1년의 시간을 홀로 보내며, 나름 고생을 했다.

나는 오랜만에 어머니 집에서 같이 살며 직장생활을 했다.


다만, 한국에서의 나 홀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 나 역시 한국에서 많은 일을 했다.


골프 배우기

PT

소설 쓰기

브런치북 완성하기

다양한 SNS(트위터, 스레드) 경험하기

서울집 구매

다양한 재테크 상식 공부하기

부동산 투자 모임 참석하기


1년이 부족할 정도로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그리고 약속된 1년의 시간이 흘렀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눈물을 훔치다


작년 12월 가족을 데리러 가는 발길이 무거웠다.


이제까지의 생활 패턴이 다시 변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 교육, 맞벌이 부부의 삶 그 속에서 자기계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들이 한국에서 제대로 적응할까 하는 걱정


그 때문에 나름 아이들이 순진하다고 이야기들은 동네에 집을 샀다.

더욱이 우리 집은 흔히 이야기하는 초품아.


그러나 무엇보다 밴쿠버에서의 삶이 너무나 좋았기에 그곳과 그곳에서의 지인을 떠나야 한다는 슬픔도 있었다.


밴쿠버에서 지인들과 인사를 하고 짐을 한국에 부친 마지막 밤.

와이프는 끝내 눈물을 훔쳤다.


"밴쿠버에서의 마지막 노을.. 너무 이쁘다"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리에 멈춰 섰다.


"우리 다시 이 노을 볼 거니까. 걱정 마"


나는 눈물을 흘리는 아내를 안아주며 이렇게 말했다.


캐나다에서 감기 몸살로 드러누운 막둥이 덕분에 캐나다 라이프가 며칠 연장될 뻔했지만, 결국 돌아왔다.




아빠! 나 좋은 친구가 많이 생겼어


큰 아이와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6학년에 전학을 간 후 내심 걱정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작은 아닌 학교 급식에, 큰 아이는 학교 친구들에 즐거움을 느끼며 빠르게 적응했다.


역시 한국 놈들은 한국 놈들인가 보다


특히, 큰 아이는 반에서 부회장도 맡고, 새로운 한국 절친도 생기며 같이 농구학원도 다니고 있다.

그 친구도 최근까지 미국에서 생활하다 한국으로 돌아온 가족


우리 큰 아이는 그 친구와 공통점이 많아서인지 빠르게 친해져 갔다.


작은아이는?


아픈 몸으로 한국에 돌아와서 며칠 동안 우리 가족도 고생했다.

병원에서 독한 감기약을 지어와 먹었고 거의 한 달을 고생해서 겨우 나았다.


그리고 밀린 아이들 건강검진을 받으러 다녔다.

그러던 중 둘째 아이는 편도가 너무 크니 편도제거 수술을 받으라는 의사의 권유가 있었다.


몇 주전 아이는 편도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많이 회복된 상태이다.




아직도 숙제가 많다


지금은 어느 정도 아이들이 적응해 가고 있지만, 아직은 많은 숙제를 안고 있다.


우선, 와이프가 복직을 하면 아이들 혼자서 생활을 해야 한다.

이런 철부지들이 혼자서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많다.


또한, 아이들의 장래도 잘 설계해줘야 한다.

요즘은 아이들 공부가 어른 공부라고 한다.


그만큼 부모가 얼마나 잘 설계해 주느냐가 관건이다.

국제중학교를 보내야 할지, 그냥 우리 집 앞 중학교를 보내야 할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첫째 아이의 ADHD도 잘 해결해야 한다.


지금은 한국에 와서 안정을 찾았다지만 분명 한국의 치열한 경쟁사회를 경험하면 다시 그때의 예민한 아이로 변할게 뻔하기 때문이다.


잘할 수 있겠지..

난 하루에도 수십 번을 나한테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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