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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다름 코치 Dec 26. 2021

당신의 신앙심은 안녕하신가요?

하루 지난 크리스마스 단상

어젯밤.


진작 다녀왔어야 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고도 마무리해야 할 시간에...

많은 고민을 뒤로 하고 25일 마지막 저녁 미사를 드리고 왔다.


사실 나는 천주교 모태신앙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늘 당연히 성당에 다녔지만 그때는 '신앙심'이라는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스무 살이 되며 대학을 다니기 위해 자취를 했고, 그렇게 나의 신앙생활은 가볍고 희미해지기 시작해 성당을 다니지 않았다.


20대 후반 남편을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겠다고 약속한 뒤 부모님이 다니시는 성당의 신부님께 '혼배성사'를 받긴 했지만 우리 부부의 종교 생활에 큰 변화는 없었다.


그나마 나는 아주 가끔 어린 시절부터 다녀왔던 성당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아이들을 낳고 키우느라 성당 가서 편안히 미사를 드릴 수 없다는 생각에 꽤 오랜 기간 동안 성당을 다니지 않았다.



성당은 나가지 않지만 누군가 종교에 대해 묻거나 기록해야 하는 곳에는 항상 나의 종교는 '천주교'였다.

그리고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다면 꼭 '성모유치원'에 보내고 싶다는 마음도 변함없었다.


그러다 의정부로 이사오며 마침 집 근처에 마치 내가 어린 시절 다녔던 성당처럼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마음이 편안해지고 다니고 싶어지는 성당을 찾게 되었다.


그런 성당을 찾은 것도, 내가 어린 시절 다녔던 그 느낌과 비슷한 유치원에 아이를 보낼 수 있다는 것도 너무 설렜고 감사했다.

첫째 아이가 성모유치원을 잘 다니며 그곳에서 지금까지 깊은 인연으로 지내는 가족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첫째 아이가 중학생인 지금은 성당에 나가지 않는다.

성모유치원에 다녔던 기억도 내가 어린 시절 느꼈던 감정만큼 그리 좋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종교 역시 억지로 엄마를 따라 성당에 나가고 싶지는 않다고 솔직한 마음을 말해주니 더 이상 강요할 수 없었다.


그렇게 또 시간이 지나며 나는 또다시 성당에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 신앙심이 희미해진 적은 있지만 그 불씨가 완전히 꺼진 적은 없었다.

언젠가 다시 어린 시절 느꼈던 따뜻함과 충만해지는 마음으로 성당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은 놓지 않았다.


어쨌든 그렇게 시간은 또 흘러 2018년 보험회사의 매니저로 일하며 이제는 내 마음이 성당을 나가고 싶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가족이 함께 가지 않아도 혼자라도 꼭 가고 싶었다.

그렇게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이유를 돌이켜보면 '내 마음이 힘들어서'였다.

영업 조직에서 매니저로 팀을 이끌어가는 리더 역할을 하다 보니 생각지 못했던, 아니 예상했지만 그것보다 더 쎈 강도로 마음속의 응어리들이 풀리지 않았던 순간들이 참 많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간절함'이었다.

영업을 직접 내가 할 때보다 팀원을 아이 키우듯 잘 돌보고 교육해서 처음 영업을 시작할 때 어떻게든 '나도 너와 함께 뛰고 있고, 간절한 마음으로 네가 잘 되길 기원한다'는 마음을 기도로 전했다.


그래서 한 달간 교육을 마치고 첫 영업을 나가는 팀원에게 신부님께 축성받은 묵주팔찌를 선물했다.

종교는 다를 수 있지만 언제나 이 묵주팔찌가 그 친구의 힘들고 외로운 순간, 기쁘고 행복한 모든 순간을 함께 하겠다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이 마음을 남편에게도 전했던 시기가 있었다.

2018년 남편이 포항으로 지방 발령이 나고, 난생처음 주말부부를 해야 했던 그 시절.


다른 사람들은 주말부부로 지내는 것을 부러워하기도 했지만 우리 가족에겐 참 힘든 시간이었고, 그때 남편에게 묵주팔찌를 전하며 매주 나는 성당에 나가 힘든 마음을 위로받기도 하고, 다시 남편이 함께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


원래 무교였던 남편도 그 시기부터 함께 미사를 나가기 시작했고 성당에 나가 기도하는 시간들이 마음에 큰 위로와 희망이 된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결국 남편은 퇴사를 했고, 2019년 세례를 받으며 정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나는 모태신앙으로 성당을 다녔기에 제대로 성경공부를 해보거나 열심히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내가 매일 반성하는 마음이 느껴질 만큼 매일 묵주기도와 성경공부, 필사까지 제대로 해나가며 짧은 기간이지만 뜨거운 신앙심을 곁에서 지켜보는 내가 더 뜨겁게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나도 그동안 희미했던 신앙심이 점점 깊어졌고, 남편과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성당을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2년쯤 성당을 열심히 다녔지만 이번엔 남편에게 신앙심이 희미해진 계기가 생겼다.

남편이 성당을 나가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도 있었지만 신부님에 대한 마음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렇게 첫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게 된 마음을 주고 의지했던 신부님에게 남편이 봉사활동을 하며 신부님께 여러 번 실망하게 된 사건이 생겼고, 그러면서 남편의 신앙심은 어느 순간부터 급격히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본인은 마치 나의 과거 시절처럼 마음속의 종교는 천주교지만 지금은 다시 성당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 마음을, 그리고 시간들을 나 역시 겪어봤기에 남편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리고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이 그런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서 사실 나도 열심히 다녔던 성당을 코로나와 이런저런 이유로 최근 몇 달간 다녔던 성당을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크리스마스가 되며 성당에 나가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심을 축하드리는 미사를 드리지 않는 크리스마스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내내 떠나지 않았다.



12월이 되며 다른 사람들은 설렘을 느끼지만 나는 판공성사를 봐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았다. 남편과 다녔던 성당을 나가자니 나 역시 그 사이 서먹해졌고, 신부님에 대한 믿음과 존경심이 예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신앙심이라는 것이 신부님이 아닌 하느님을 믿는 순수한 마음 그 자체여야 하지만 우리 부부에겐 신부님의 영향도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남편과 나는 부정할 수 없었다.

남편에게 다시 다른 성당이라도 나가자고 몇 번을 권했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올해 크리스마스만큼은 나 혼자라도 꼭 나가서 제대로 된 성탄미사를 드리고 싶었다.

가족이 함께하지 못해 너무 아쉽고, 또 그렇게 되니 솔직히 나도 귀찮다는 생각도 했지만 이제는 그런 신앙생활을 하고 싶지 않았다.


고민 끝에 12월 25일 밤.


의정부로 처음 이사올 때 나를 반겨주고 포근히 감싸주는 마음을 느끼게 해 줬던 성당에 나가 그동안의 죄를 고백하고 뉘우치는 판공성사를 봤고, 울컥하는 마음으로 미사를 드리고 왔다.


늘 마음속에 묵직한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었던 마음이 가벼워졌고, 편안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나의 신앙심에 불을 지필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했다.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나의 신앙심은 아주 뜨거워졌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단 한순간도 꺼지진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는 조금 더 깊어진 마음으로 성당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적어도 의무감이 아닌 내 마음이 하느님을 향하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깊어진다고 가족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다.


결국, 신앙심은 본인이 스스로 깊게 느끼고 그 마음으로 발걸음을 향해야 진짜 신앙심이라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비록 혼자였지만 외롭지 않았고, 무엇보다 어제의 성탄절 미사는 나의 신앙심을 돌아보고 새롭게 다짐할 수 있었던 큰 계기가 되었던 감사한 시간이었다.


하루가 지났지만 다시 한번 마음속 깊이 외쳐본다.


'Merry Christmas!'

<Merry(즐거운) & Christmas= Christ(그리스도)+mass(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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