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다윗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좀 다르다
'시편 19편' 여호와의 완전한 계시
어제까지 다윗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가득 찬 사람이었다. 잘못한 것이 없는데 억울하게 쫓기고 있는 상황과 의로운 자신이 타락하고 불의한 자들로부터 고통받는 현실을 괴로워했다.
다윗이 이스라엘 사회 지도층으로 등장하면서 초반에 겪어야 했던 수난을 무시하거나 폄훼하는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지 않아 크리스천으로서 고난 받지 않을 수 있음이 너무도 다행이라 생각되는 나는 그럴 자격이 없다.
단지 다윗과 이순신 장군을 함께 떠올려 보면 내게는 이순신 장군이 더 눈물겹다. 그를 시기한 간신들로 인해 자신의 뜻이 왜곡되어 이미 조정으로부터 버림받은 이순신 장군, 일화에 따르면 처음부터 죽을 생각으로 갑옷을 벗고 노량해전에 임했다고 한다. 그는 왜 하늘을 향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지 않고 이런 말을 남겼을까?
時日三更(시일삼경)에 舜臣(순신)이
跪祝于天曰(궤축우천왈)
今日固決死(금일고결사)하오니
願天必殲此賊(원천필섬차적)하소서
이날 삼경(밤 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에
이순신이 무릎을 꿇고서 하늘에 비오니
“오늘 진실로 죽음을 각오했사오니,
원컨대 하늘이시어,
이 왜적을 반드시 섬멸시켜 주시옵소서.”
그런데 오늘 다윗의 내면에서 무언가 다른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음이 틀림없다. 다윗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좀 다르다.
'12. 자기 허물을 깨달을 자 누구인가? 여호와여, 숨겨진 허물에서 나를 깨끗하게 하소서. 13 주의 종을 지키셔서 고의적인 죄를 짓지 않게 하시며 그 죄가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러면 내가 흠 없이 완전하고 큰 죄악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다. 14 나의 반석이 되시고 나의 구원자가 되시는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내 마음의 생각이 주가 보시기에도 기뻐할 만한 것이 되게 하소서.'
해를 위해서 하늘에 집을 지으신 광대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아무리 높여 보았자 별볼 일 없는 미물임을, 아무리 의로움을 주장해 보았자 물밀듯 죄성이 밀려오는 죄인임을, 다윗은 깨닫게 된 것일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실체와 마주하게 되면 비로소 자신을 알게 된다. 조금씩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순복 하게 되고 솟아오르는 자아를 끊임없이 깎아내며 주어진 삶을 겸손하게 살아가는 인생, 그 여정을 앞으로의 다윗에게서 엿보게 될 것 같다. 이러한 여정에서 나는 어디쯤 서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