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경 울림 Nov 04. 2024

지나간 일 후회 말고, 다가올 일 걱정 말고

'시편 17편' 죄 없는 사람의 기도

한 학부모가 자기 아이의 학교 담임 선생님께 과도한 탄원을 넣어 문제가 된 뉴스를 들었다. 학생이 물병으로 장난을 심하게 쳤는지 선생님은 학생에게 방과 후 청소 벌을 내렸고, 이를 전해 들은 학생의 어머니는 그날부터 지속적으로 학교에 방문하고 여기저기에 담임 선생님 교체를 요구하는 탄원을 냈다고 다.

학생의 어머니는 자신의 탄원이 정당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수업 시간에 장난 좀 쳤다고 해서 방과 후에 남아서 다른 친구들이 버린 쓰레기를 주우라니, 아직 철부지 어린이에게 비인격적인 처우를 내렸다고 생각되었을 것이다. 그런 결정을 내리는 선생님은 선생님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판단이 섰을 것이고 가차 없이 실행에 옮겼을 것이다.

시편 17편에서 다윗은 하니님께 자신의 정당한 간청을 들어달라고 기도한다. '1 여호와여, 나의 정당한 간청을 들어주소서. (하략)', '2 주는 언제나 공정하신 분이십니다. 나를 정당하게 판단하소서.' 그리고 자신이 정당한 이유를 3절, 4절, 5절에서 꽤나 설득력 있게 나열하고 있다. 다윗이 보통 수준넘었겠지만, 그래도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분명히 저 때 다윗은 진심이었다. 하나님께서도 다윗의 중심을 인정하셨기에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극찬을 하셨다.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마음과 행동에 확신이 선 다윗은 악인들을 물리쳐 주시고 자신을 구원해 달라는 간청을 합당하게 여겼다. 하지만 다윗은 저 시기를 지나 왕이 된 후 벌이게 될 만행에 대해서는 꿈에도 몰랐다.

'밧세바 사건'을 일으킨 후 다윗은 지금처럼 확신에 찬 기도를 드릴 수 있었을까? 성서학적으로 궁금한 부분이다. 내가 아는 다윗의 성품이라면 그렇지 못했을 것 같다. 자기 안에 도사리고 있던 악이 수면 위로 드러남을 경험한 순간, 악인과 선인에 대한 판단을 쉽게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하나님께서 부족한 자신을 불쌍히 여겨주시기만을 읊조릴 수 밖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서는 오늘 다윗처럼 자신의 정당함을 마음껏 어필할 수 있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오늘의 내 모습에만 집중하시기 때문이다. 단지 오늘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모습에 마냥 기뻐해주신다. 어제 그러지 못했고 내일 쓰러질 존재임을 아시면서도, 지나간 일은 지나간 채로 내일은 내일 생각하자 하시면서 지금 내 모습만을 온전히 받아주시는 느낌이 든다.

아마 다윗을 대하시는 모습도 그러셨을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 있게 으스대는 다윗을 보시며 많이 흐뭇하셨을 것 같다. 뭇사람들 앞에서 신앙을 떠벌이는 사람은 많아도 하나님과 둘이 있을 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으니... 옆에 서 있는 어른이 옆집 아저씨라면 저렇게 당돌하게 동네 깡패 형들 혼내달라고 말할 수 없다. 아빠가 확실할 때만 가능하다.

김창옥 강사님 왈, 아이가 100점 받고 왔다면 "자만하지 마." 하고 말하지 말고, "엄마가 이렇게 좋은데 너는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하는 게 최고의 칭찬이란다. 런 면에서 하나님께서는 참 칭찬에 후하시고, 벌에는 아주 인색하시는 분인 것 같다. 나도 지나간 일 후회 말고, 다가올 일 걱정 말고 오늘 칭찬받을 일 많이 만들어서 칭찬해 달라고 떼써야지.

이전 16화 나 혼자라면 그래, 그럴 수 있겠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