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단지 '친목계'를 강조하셨을 리 없어.
'시편 15편'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사람
교회에 가면 교회 밖에서는 잘 쓰지 않는 말들을 쓴다. '교제한다'라는 말도 그중 하나다. 보통 교회 밖에서는 '사귄다', '친하게 지낸다' 혹은 '같이 논다' 정도로 쓰는 것 같다.
나에게 '교제한다'라는 말은 나이스하게 지낸다는 의미로 느껴진다. 지인 사이이면 서로 정중하게 대하는 모습, 연인 사이이면 약간 격식을 차리는 초반 연애처럼 보인다. 예배 중에 '성도 간의 교제' 시간이 있으면 나는 아주 소극적으로 참여한다. 마음이 있든지 없든지 서로 나이스하게 웃어주는 상황이 약간 불편하기 때문이다.
교제가 중요하다는 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교회 밖에서도 '사귐'이 중요하다는 말은 충분히 들어 왔다. 사회에서는 이를 인맥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밖에서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라는 부모님의 잔소리는 '그래야 네가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하는 의미가 담겼던 것 같다.
신앙생활에 있어 '교제'란 무엇일까? 함께 차 마시고 밥 먹으면서 일상 얘기를 나누는 것에 하나님의 은혜를 추가로 나누는 관계일까? 그렇게 시간을 공유하는 구성원들은 대개 정해져 있다. 정해진 사람들끼리만 누리는 교제는 친목계다. 하나님께서 그런 교제를 이렇게 강조하셨을 리 없다.
중세 시대 수도사들은 타락한 교회(로마 카톨릭)를 뒤로 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차단한채 토굴과 골방으로 들어갔다. 곧, 사람들과의 '교제'를 끊고 오직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께 기도드리면서 하나님과의 '교제'에만 집중했다. 그들이 끊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고 다시 찾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오늘 시편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사람'이다. 현대인의 성경(한글)에서는 '1 여호와여, 누가 주의 성소에 들어갈 수 있으며 누가 주의 거룩한 산에 머물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묻는다. The Message(영어)에서는 '1 God, who gets invited to dinner at your place?'하고 묻는다.
성경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성소에 들어가는 것'이라 했다. 조금 더 자연스럽게는 '저녁식사에 초대받는 것'이라고 했다. 이 어감은 어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만나 나이스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다. 그분의 비밀한 영역에 들어가서 그분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숨김 없이 얘기를 나누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성소에 들어가는 사람, 저녁식사에 초대받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고 하잖아?
'2 정직하게 살고 옳은 일을 행하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는 자, 3 남을 비방하지 않고 자기 친구를 해하지 않으며 이웃을 헐뜯지 않는 자, 4 하나님을 저버린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중하고 한번 약속한 것은 손해가 가도 지키는 자, 5 돈을 빌려 주고도 이자를 받지 않으며 뇌물을 받고 죄 없는 자를 해치지 않는 자니... '
그렇다면 혹시 성도 간의 참된 교제란, 이런 모습을 사람들 관계에서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