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전 차단
한 귀퉁이가 죽었어도 죽었는지 몰랐다
어릴 때 집에는 전기제품이 별로 없었다
텔레비전 냉장고 선풍기 세탁기 라디오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지만
냉장고 문을 오래 열면 꼭 한 소리 들었다
요즘은 전기제품 아닌 걸 찾기가 어렵다
오븐 인덕션 건조기 식기세척기 에어컨
전자제품을 따로 분류할 정도로 많지만
누진세 염려가 되어도 줄일 부분은 없다
예전에는 전기 사고 소식도 자주 들렸다
드라이어를 켜놓아서 과열로 불이 났고
물 뭍은 손으로 만져서 감전 사고도 났고
전선 피복이 벗겨져서 합선 사고도 났다
요즘에는 전기 사고 소식이 잘 안들린다
뉴스거리로는 심심해서 그런지 몰라도
전기차 배터리 폭발 사고 뉴스만 아니면
전기를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은 안든다
그때는 퓨즈 하나가 집 전체를 커버해서
어쩌다 펑 하면서 전기 합선이라도 나면
전등이며 냉장고며 전기가 몽땅 나갔다
그러면 두꺼비집을 열고 퓨즈를 갈았다
며칠 전 인덕션 두 구와 식세기를 돌렸다
옆에서 설거지를 하다 쎄한 느낌이 들어
식세기를 쳐다보니 전원이 꺼져 있었다
차단기 하나가 그새 내려가 있었던거다
요즘 차단기가 집안을 잘 가르고 있어서
한 귀퉁이가 죽었어도 죽었는지 몰랐다
우리 사회도 차단기가 너무 잘 작동해서
이쪽이 죽어가도 저쪽은 모를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