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입장에서 재난과 피해라는 말일까?
'시편 46편'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어떻게든 내가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환경을
바꿔보려고 발버둥 칠 때가 얼마나 많은지...
1)
지진, 화산, 홍수, 해일 등을 보통 자연재해라고 부른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진, 화산은 지질재해이고
홍수, 해일, 태풍, 가뭄, 폭설 등은 기상재해로 구분된다.
여기서 재해는 災害로 재난과 피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누구 입장에서 재난과 피해라는 말일까?
2)
그렇지. 사람이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지구 입장에서는 재해가 아니다.
사람의 오장육부 활동에 따라 자연스럽게 배설물이
발생하고 빠져나오는 것처럼, 자연재해라 부르는
현상들도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3)
그런데 사람은 이러한 자연현상 앞에서 겸손해진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지금이야 과학 기술 발달로 예측도 하고 원인도
분석하고 나름대로 대처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고대 사회는 크게 달랐을 것이다. 그들은 필연적으로
자연현상 앞에서 신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4)
시편에서 자연현상의 모습이 종종 등장한다.
이야기 흐름상 비유를 하기 위해서 떠올린 장면이 아니라
정말로 그 자연현상을 경험하고서 기록했을 것이다.
2 그러므로 땅이 꺼지고 산이 무너져 바다를 메우며
3 바닷물이 성난 파도를 일으키고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6 세상 나라들이 소란을 피우며 동요하더니
하나님이 큰 소리를 발하시자 땅이 녹는구나.
5)
어쩌면 수많은 역사가들이, 점술가들이
이날 있었던 자연현상을 겪고서 그 느낌들을 각자의
역사서 안에 담아 두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고라 자손들은 시편에 이렇게 기록해 두었다.
7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이시다.
10 그가 "너희는 잠잠하라! 내가 하나님인 것을 알아라!
내가 세상 모든 나라 가운데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는구나.
11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이시다.
6)
이스라엘은 피해가 없었을까? 다른 나라들에만 피해를
입었기에 하나님을 피난처라고 말했던 걸까?
정말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내 생각에는 그 보다 9절에
힌트가 있지 않을까 싶다.
9 그가 온 세상에 전쟁을 그치게 하시며 활을 꺾고
창을 부수고 방패를 불사르신다.
7)
고대 사회의 국제 질서상, 이스라엘의 지정학적 위치상
이스라엘은 이웃 국가들과 전쟁을 달고 살았다. 전쟁이
없었던 시기를 세는 것이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이 자연현상이 있었던 시기에 어떠한 전쟁이 있었을지
모르고, 또 전세가 불리한 상황에 있었을지 모른다.
8)
그런데 아닌 밤 중에 홍두깨처럼 화산이 폭발하고
지진이 났던 게 아닐까? 그러니 전쟁을 치르고 있던
아군, 적군 할 것 없이 범접할 수 없는 위력 앞에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하려 했던 모든 활동들을
즉시 멈출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9)
(이 모든 게 추측이고 가정이지만) 전쟁에서 위태로웠던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어땠을까? 이 날의 자연현상이
그저 우연의 일치에 따른 행운이었을까? 역사는 시간의
흐름 속에 어떠한 사건, 이벤트가 찍힘으로 그려진다.
그 인과관계를 바라보는 것이 관점, 즉 역사관이다.
10)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임을 고백하는 사람이
크리스천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주변에서 발생하는
모든 상황적, 환경적 변화도 그저 우연히, 산발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님을 고백해야 한다.
때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처럼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발견할 수도, 때로는 내가 보고 들을 수 없는 인과관계로
실현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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