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물 | 좋아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박박 닦다니

2025. 7. 25 作 (성숙)

by back배경ground

식사를 하려고 깨끗한 그릇을 준비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그릇이 더러워졌다
더러워진 그릇을 힐끗 보니 알 수 있었다
그릇에 무슨 음식을 담아서 먹었는지를

밥그릇에는 밥풀이 찐득하게 붙어있고
김치가 담긴 대접에는 김칫물이 물들고
고기를 올려놓은 접시에는 기름이 꼈다
밥풀도 고춧가루도 기름도 음식이었다

밖에서 굴러 들어와 더러워진 게 아니다
그릇에 음식이 담겨질 때는 뿌듯해했고
음식을 입으로 가져갈 때는 즐거워했고
그리고서 남은 것들로 더럽다고 말한다

내 배를 채우는 데 사용되지 못한 음식을
내 배를 채우는 데 사용되고 남은 음식을
더럽다고 말하는 게 잘못된 건 아니지만
음식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 아닌가

남은 음식의 억울함에 공감할 수 있다면
설거지를 대하는 자세도 달라질 수 있다
남겨진 음식들을 잘 모아서 돌려보내고
들러붙은 음식들은 잘 떠나보내는 과정

수저로 음식 덩어리들을 살살살 모아서
음식물 쓰레기통에 조심조심 덜어내자
그래도 안 떨어지는 찐득이나 기름기는
녹아져 가도록 뜨거운 물을 흘려보내자

이제는 쓸모없다고 이제 와 버리겠다니
절대 떨어질 수 없다며 응겨 붙은 마음을
억지로 닦아내지 말고 뜨겁게 안아주자
한 때는 열정이었고 나에게 영광이었다


(4+16+16x4x7=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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