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 시간 | 너를 목욕시키는 게 귀찮게 느껴질 때면

2025. 1. 28 作 (가족)

by back배경ground

어릴 적 면목동 우리 집에 있던 마당에는 ​
한 귀퉁이에 목욕탕과 화장실이 있었어​
목욕탕엔 커다란 대야가 하나 있었는데​
대야 절반 정도만큼 항상 물이 차 있었지​

마당을 가로질러 가 목욕탕 문 앞에 서서​
삐그덕 문을 열고 백열전구를 딸깍 켜면​
벽면에는 하얗고 큼지막한 네모 타일이​
바닥에는 네모났고 조그만 색색 타일이​

여름에는 대야에서 물을 떠다 뿌렸지만​
겨울에 목욕을 할라치면 일이 복잡했어​
여기저기 찌그러지고 빛바랜 스뎅통에​
물을 끓여 와 찬물과 섞어서 써야 했거든​

그날도 스뎅통에 한솥 물을 받아오셔서​
나를 앞에 세워두고 구석구석 씻기셨어​
혼자서는 목욕할 수 없었던 나이였나 봐​
그게 엄마와 목욕했던 마지막 기억이야​

초등학교 이학년에 올라간 우리 해나는​
엎드리면 욕조를 꽉 채우는 사이즈지만​
아직은 혼자서 목욕하는 게 안심이 안돼​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빠인 내가 씻겨줘​

훌렁훌렁 벗은 옷을 발로 차 던져 버리고​
하낫뚤 하낫뚤 몸풀기 체조를 한 다음에​
훌라훌라 짱구춤 같은 댄스 배틀을 하고​
목욕통에 들어가서 소꿉장난을 한참 해​

아기아기한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이고​
테디베어 '리니'와도 같이 잠을 안 자던데​
아빠와 목욕하는 것도 올해가 끝이겠지​
마지막 너의 아련한 장면은 과연 무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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