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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orba Oct 13. 2023

발리에서 만난 디지털 노마드와 프리랜서

발리살이 (10)

슬슬 발리에서의 삶이 지루해졌을 때 즈음,  라브리사라는 따뜻한 분위기의 비치 클럽에서 카카오톡 오픈채팅에서 만난 사람들과 일몰을 즐기며 저녁을 함께 먹었다. 황금연휴가 끝난 후에도 발리에 머무르는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궁금했는데, 역시나 내가 그동안 만나보지 못한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활동 반경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타지에서 혼자 한달살이를 하다 보니 이런 새로운 경험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왔다. 한 분은 프로덕트 디자인하는 진짜 디지털 노마드셨고, 다른 한 분은 기획일을 하는 프리랜서셨다.


나도 사실 오래전부터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꿈꿔왔다. 내가 가는 곳이 곧 내가 일하는 곳이다. 20대 초반 시절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선망했다. 사실 한국에서 여러 지방을 떠돌면서 일을 할 때는 못 느꼈는데, (아마 항상 누구와 함께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타지에서 혼자 있자니 내가 그토록 꿈꾸던 삶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내가 머무르는 곳이 내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일에 집중도 잘 안되고, 아무래도 오랜 기간 혼자 있다 보니 내향적인 성격임에도 외로움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고 있다. '생각보다 나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를 절실히 깨닫고 있다. 나는 내가 여행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액티비티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맛있는 것을 찾아서 먹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근데 거기에는 한 단어가 빠져있었다. '사람들과.' 맛있는 걸 혼자 먹어도 그리 즐겁지 않고, 서핑을 해도 그리 즐겁지 않았다. 아무래도 무언가 빠진 느낌이었다. 그런 와중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 것은 참으로 행운이었다. 


나와 반대로 여기서 만난 디지털 노마드는 진짜였다. 얼마나 머무르냐고 여쭤보니 발리에 1달 반, 치앙마이에 1달 반, 총 3달 동안 해외에 있다고 한다. 예전 같았으면 '와 부럽다'라는 얘기가 나왔겠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와 대단하다'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들어보니 새로운 곳을 가거나 새로운 활동을 하는 것을 엄청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옆에서 그분의 여행과 취미를 듣고 있자니, 하루하루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 같았다.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어떻게든 성취하고 거기서 행복을 찾는 것. 나는 그분에 비하면 별 것도 아니었다. 자기가 앞으로도 해보고 싶은 것을 끊임없이 얘기하는데 '인생 정말 재밌게 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열정이 부러웠고, 같이 여행을 다닌다면 참 재밌을 것 같았다. 그 와중에도 본인의 일에 대한 전문성은 물론이고 애정까지 있었다. 본인만의 기술이 있으니 앞으로도 계속 이와 같이 본인이 원하는 삶을 사실 수 있을 것 같다. 심지어 스쿠터까지 빌려서 열심히 타는 것을 보고 괜한 동질감까지 느껴졌다.


옆에 분은 프리랜서셨다. 프리랜서 일을 한지 거의 8년 되었다고 하시는데 취미가 스쿠버 다이빙이라고 하셨다. 발리에 와서 보트를 타고 일주일 간 다이빙을 하고 짱구에 와서, 클라이언트한테 의뢰온 작업을 하는 중이셨다. 그분은 직장이 없지만 직업이 확실한 사람이었다. 나는 반대로 직장은 있지만 직업은 없는 사람이다. 나는 직장이 내 삶에서 사라졌을 때, 직장에서 주는 만큼의 돈을 스스로 벌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처럼 직업이 있는 사람에게 항상 묻고 싶었던 질문이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다가 프리랜서가 되셨나요?' 예전에 직장에 다닐 때부터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고, 퇴사하고 나서도 회사에서 만든 네트워킹을 통해서 클라이언트들을 만나다가 점점 바이럴이 되면서 전문 프리랜서가 되었다고 하셨다. 아마 능력이 출중하니 그렇게 이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본인의 일을 하고 그에 합당한 돈을 버는 일. 프리랜서. 만약 내가 프리랜서가 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보니, 행복한 나의 모습이 그려지지는 않았다. 예전의 나였다면 yes였을지도 모르지만, 발리에서 잠시 머무르면서 느낀 외로움을 감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본인의 일을 하고 그에 합당한 돈을 버는 일은 당연히 행복하고 좋은 일이겠지만, 누군가가 옆에 있어야 나는 행복할 것 같다. 


이번 발리 여행으로 확실히 느꼈다. 나는 내 주위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고 싶다. 하지만, 지금 나의 모습으로는 아직 부족해보인다. 지금보다 훨씬 가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오늘 만난 두 사람처럼 멋있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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