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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플랑 Oct 24. 2021

기침하셨습니까?

 3개월째 기침을 하고 있다. 결핵은 아니라는데 이 기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기침이 계속되니까 모두의 걱정이 심해서 온갖 검사를 다 받았다. 호흡기내과 교수님께서는 호흡기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하셔서 부비동염이 있나 싶어서 CT까지 찍었다. 한쪽 콧구멍이 작다는 쓸데없는 정보 말고는 얻은 게 없었다. 이게 쓸데가 있으려면 한쪽 콧구멍으로 숨 쉴 일이 근시일 안에 생겨야 하는데 아직 그럴 계획은 없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역류성 식도염일까. 역시 술을 끊어야 하는 걸까. 그러면 삶의 낙이 없는데. 술 없는 인생은 한쪽 콧구멍 없이 숨쉬는 것처럼 답답한 일일 텐데 말이다.


 콧구멍이나 기침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인턴의 업무 중 하나인 ‘레지던트 깨우기’에 대해 글을 써보려고 한다. 콜록.


 예전에야 아침에 레지던트를 깨워서 차질 없이 회진 전에 의국에 모셔다 놓는 것이 인턴의 루틴 업무이자 주 업무 중 하나였다지만, 인권의 눈부신 향상 덕분에 요즘에는 그렇지 않다. ‘모닝 콜’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부탁이기 때문에 부탁하는 레지던트 선생님은 굉장히 조심스럽게 말하고, 대부분 회식 다음 날 처럼 ‘정말 못 일어날 것 같은’ 날에만 부탁을 하곤 한다. 나도 몇 번 친한 레지던트 선생님의 부탁을 받아 열심히 깨워 드린 적이 있다. 전화를 몇 번 걸어 받지 않으면 숙소로 찾아간다. ‘10분만 더’를 외치는 선생님을 억지로 앉혀서 등짝을 때린 적도 있다.


 하루는, 회진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는 1년차 선생님을 찾아 전공의 숙소로 간 날이 있다. 교수님은 이미 화가 나셨고, 2,3년차 선생님은 초조하게 발을 구르며 내게 어떻게든 찾아서 데려오라는 명을 내렸다. 2년차 선생님이 조그맣게 ‘요 며칠 힘들어 하더니…. 수련 포기하고 도망간 거 아니야?’라고 하는 말을 들었지만 모른 척 하고 전공의 숙소로 뛰었다.


 선생님의 숙소는 지저분했다. 며칠째 감지 않은 선생님의 머리와 비슷한 냄새가 났다. 조심스레 다가가 “000 선생님….” 하고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그는 정말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다.

 할 수 없이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러자 기적처럼 그의 눈이 번쩍 떠졌다. 박물관에서 본 투탕카멘의 마스크, 그 위에 그려진 또렷한 눈처럼 말 그대로 눈이 번쩍, 한번에, 떠진 것이다. 그리고 10여초의 정적이 흐른 뒤에, 그의 첫 마디는….

 “나…. 망했죠?”

 였다. 

 “네…. 8시 반이에요 선생님….”

 나의 말에 그는 비명을 지르며 숙소 밖으로 뛰어 나갔다. 우리가 의국에 도착했을 때 회진은 이미 2년차 선생님이 돈 뒤였다. 그만둔 게 아니라 그냥 늦잠이었다는 말에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선생님께서는 워낙 평소 성실한 분이었기 때문에 교수님께서도 별 말씀 하지 않으시고 용서해 주셨다.  


 난이도가 0에 가까운, 아주 깨우기 쉬운 레지던트 선생님도 있었다. 그 선생님은 항상 의국 앞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내가 할 일은 아침에 의국에 도착했을 때 소파를 툭툭, 발로 몇 번 치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 선생님은 늘 스프링이 튀듯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와 같은 일이 이미 1년 넘게 일어나서 인턴 인계장에는 ‘000선생님 주무시고 계시면 꼭 소파 쳐서 깨워 드려야 합니다.’ 라는 문구가 있을 정도였다.


 3미터 옆에 당직실이 있고 그 안에는 침대가 있는데, 왜 항상 소파에서 주무시냐고 물으면 “여기가 편해. 1년차 때부터 여기서 자는 게 습관이 돼서.”라고 말하던 그 선생님. 지금은 수련을 마치고 전문의가 되셨을 텐데 그의 오랜 습관은 잘 고쳐졌을까. 아직도 어딘가의 소파에서 긴 다리를 불편하게 옹송그리고 주무시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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