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명륜극장
“영화 보고 갈까?”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저 멀리 CGV 간판이 보였습니다.
“응. 재밌는 거 하면…”
서울대병원 진료를 마치고 창경궁 돌담길을 천천히 걸어 명륜동까지 왔을 때입니다. 명륜동 혜화동은 나의 고향입니다. 나는 혜화동에서 태어나 명륜동에서 자랐습니다.
“당신 이 자리가 옛날에 명륜극장이었던 거 알아?”
“여기 무슨 극장이 있었다는 건 알아.”
명륜극장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지금은 다른 건물이 들어선 그 자리에서 휘휘 주위를 둘러보자 잊고 있던 오래된 기억 하나가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여보.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해줄까?”
“무슨 이야기?”
“…사랑 이야기.”
***
명륜극장은 재개봉관이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재개봉관이 뭔지 잘 모를 것입니다. 60년대 70년대까진 서울에도 개봉관은 그리 많지 않고 대부분이 재개봉관이었습니다.
개봉관에서 신작 영화를 종영하고 몇 달 지나면 재개봉관에서 헌(?) 필름을 받아 상영했습니다. 당연히 개봉관보다 입장료가 쌌습니다.
돈 없는 사람들은 주로 재개봉관에서 영화 구경을 했습니다. 명륜극장은 우리 동네에 있었기 때문에 나도 틈만 나면 영화 구경을 다녔습니다.
중학교 때였습니다.
어느 날 영화를 보려고 매표소 안으로 돈을 집어넣으니까 창구 안에 있는 여직원이 나를 흘낏 바라보더니 “학생이죠?” 하는 것입니다. 미성년자라고 딱 걸린 것입니다.
내가 보려고 하던 영화는 미성년자 입장 불가 영화였습니다. 학생 아니라고 잡아뗐습니다.
중학생이지만 그때 이미 나는 키도 크고 덩치도 크고 조숙했습니다. 짧은 머리를 숨기려고 모자까지 뒤집어쓰고 갔으니 학생 아니라고 박박 우기면 대개는 그냥 들여보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직원은 달랐습니다. “아니긴 뭐가 아녜요? 학생인데. 학생은 못 들어가요.”
창구에서 막 떼를 썼습니다. 그래도 여직원은 꿈쩍 않고 끝까지 표를 끊어주지 않았습니다.
열 받아서 팔팔 뛰다 그냥 집에 돌아왔습니다. 가만 생각하니 너무 약이 올랐습니다.
어떻게 복수할까? 연구하다가 이렇게 하자. 그냥 확 꼬셔버리기로 했습니다.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녀석이 발랑 까져서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어떤 계집아이도 다 꼬실 수 있다. 자신감이 충만해 있었습니다.
몇 살쯤 먹은 여자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보다 최소한 열 살은 더 먹어 보였습니다.
그까짓 열 살 나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며칠 동안 낑낑거리며 연모의 시를 썼습니다.
내가 봐도 감동적인 시였습니다. 바이런도 울고 갈 만큼 수준 높은 이 시를 보고도 안 넘어간다면 그건 여자도 아니다. 확신에 가득 차서 어서 빨리 다음 영화가 상영되기만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영화 프로가 바뀌었습니다. 어른 흉내를 내면서 있는 대로 개폼을 잡고 뚜벅뚜벅 매표소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창구 안으로 얼굴까지 들이밀며 “안녕하세요?” 하고 아는 척도 했습니다. 그리고 표를 받자마자 얼른 시를 쓴 편지 봉투를 여직원 앞으로 쑥 밀어 넣고는 극장 안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영화 보는 내내 시를 보았을 여직원의 반응이 궁금했습니다. 영화가 끝나자 바로 매표소 쪽으로 달려가서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왔다갔다 알짱거리며 눈치만 살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충격이었습니다. 가소롭다는 듯 흘낏 쳐다보더니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아니. 내 시가 너무 약했나? 내 실력이 겨우 그것밖에 안 되었던가? 다시 쓰기로 했습니다.
여름방학 때부터 연모의 시를 쓰기 시작해서 겨울방학이 될 때까지 줄기차게 써서 보냈습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은 참으로, 진실로, 맞는 말입니다.
“얘. 너 참 시 잘 쓴다.” 어느덧 첫 반응이 나왔습니다. “너도 문학을 좋아하는구나. 나도 문학 좋아해.”
그리고 미성년자 입장 불가 영화였는데 그냥 표를 끊어주었습니다. 그다음부터 급속히 친해졌습니다.
마침내 얼굴만 살짝 보이고는 그냥 공짜로 입장하게 될 정도로까지 발전했습니다. 명륜극장이 완전히 내 나와바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내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 누나를 정말 좋아하게 된 것입니다.
누나는 창구 안에서 늘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책 읽는 모습이 참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어느 날 용기를 내어 만나자고 했습니다. “누나. 끝나면 극장 앞 빵집으로 와요. 기다릴게요.”
놀랍게도 누나가 선선히 허락을 했습니다. “그래. 먼저 가 있어. 끝나면 내가 가서 빵 사줄게.”
뛸 듯이 기뻤습니다. 매표소 창구 안에 앉아있는 누나의 모습만 보았지 창구 밖에서 누나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창구 밖의 누나는 어떤 모습일까? 기다리는 내내 가슴이 두근두근했습니다.
한참 기다리자 마침내 빵집 문이 열리면서 누나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누나. 여기야!”
아! 다음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누나는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었습니다.
절룩절룩하며 누나가 내게로 걸어왔습니다. 너무 놀라 멍하니 누나의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왜? 이상해? 나 소아마비야.” 누나가 웃었습니다. 슬펐습니다.
누나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계속 훌쩍훌쩍 울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키가 크고 덩치가 크고 조숙해 보여도 나는 어쩔 수 없이 중학교 2학년짜리 어린 소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누나가 너무너무 불쌍했습니다.
헤어질 때 더 충격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누나는 이제 극장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간다고 했습니다.
“몸이 아파 더 이상 일 못 하겠어. 그래서 마지막으로 너한테 빵이라도 사주려고 나온 거야.”
누나의 얼굴을 다시 보니 정말 창백했습니다. 병색이 짙었습니다.
빵집을 나와 누나와 작별했습니다. 헤어지면서 누나가 내 손을 꼭 잡았습니다.
“그동안 네가 써준 시 잘 봤다. 공부 열심히 해. 너는 커서 꼭 훌륭한 시인이 될 거야.”
누나가 절룩절룩하면서 극장 앞 찻길을 건너갔습니다. 멀어져가는 누나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서 있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
“그러니까 연상의 여인을 사랑한 거네.”
아내의 표정이 심드렁했습니다.
“왜 재미없어?”
“…좀 유치해.”
“뭐야. 질투하는 거야?”
“유치하게 질투는 무슨 질투.”
“질투하는 것 같은데?”
“질투가 아니고 그냥 웃겨서.”
“웃기다니.”
“당신 정말 웃겼어. 세상에 중학교 2학년짜리가 그때부터 발랑 까져서…”
“하하하.”
“시간 다 됐어. 빨리 영화나 보러 가.”
누나와 헤어진 뒤 반세기가 훨씬 넘는 긴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새까맣던 소년의 머리도 어느새 재를 뒤집어쓴 듯 허옇게 변해버렸습니다.
영화가 끝나 CGV를 나왔습니다. 지하철을 타러 걸어가다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자, 어둑어둑해져 가는 거리 저편으로 언뜻 누나의 환영이 보였습니다.
아. 누나가 절룩절룩하며 길을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하마터면 눈물이 쏟아질 뻔했습니다.
누나. 지금 어디 살고 있어? 그동안 어떻게 살았어? 잘살고 있는 거지? 건강한 거지?
“뭐 해? 빨리 와. 지하철 오잖아.”
아내 몰래 살짝 눈물을 훔치며 허둥지둥 지하철 계단을 뛰어 내려갔습니다.
***
옛날옛날 먼 옛날 명륜극장 매표소엔 내가 참 사랑했던 누나가 표를 팔고 있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