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보이처럼 총이 필요해.
끔찍한 일이 일어났었습니다.
저녁 무렵 동네 뒷길로 아내와 산책하러 나갔습니다. 우리 동네 뒷길은 과수원도 있고 농장도 있고 아담한 이불공장도 있는 걷기 딱 좋은 길입니다.
요새는 부쩍 반려견과 함께 다니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문제는 반려견 중에 매우 큰 개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중에는 보기만 해도 섬뜩한 맹견도 있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위협적인지 산책하던 사람들이 두려워서 멀찌감치 피해 다닐 정도입니다.
한 번은 주인이 잠시 방심하는 사이 맹견 한 마리가 목줄을 풀고 달아난 적이 있습니다. 어린아이와 함께 산책하던 사람들이 주인 없이 돌아다니는 맹견을 보고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주인이 허둥지둥 쫓아와 그 개를 바로 붙잡았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개 그런 일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맙니다.
항상 설마가 문제입니다. 설마 나에게 그런 위험한 일이 일어나겠느냐?
나도 그랬습니다. 그날도 아무 생각 없이 아내와 함께 동네 뒷길로 산책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날이 너무 뜨거워 해가 완전히 떨어진 느지막한 시간에 나온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길을 한 바퀴 돌고 다시 돌아올 무렵엔 벌써 캄캄해져 있었습니다.
아무 불빛도 없는 캄캄한 밤길을 우리 부부 둘만이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걷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내가 숨넘어갈 듯 작은 비명을 질렀습니다. 어머나. 저게 뭐야?
저만큼 앞에 희끄무레한 것이 보였습니다. 등골이 오싹해졌습니다.
맹견이었습니다. 어마어마하게 큰 개가 목줄이 풀린 채 우리 앞에 서 있었습니다.
우리도 놀랐지만 녀석도 놀랐습니다.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 바로 공격 자세를 취했습니다.
“어머나. 어떡해? 어떡해?” 아내가 공포에 질렸습니다.
재빨리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저놈이 공격한다면 맨손으론 도저히 당할 수 없습니다.
막대기든 돌멩이든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주위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내가 빨리 도망치자고 했습니다. 아내의 손을 꽉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습니다.
도망치려고 등을 돌리는 순간 물어 뜯기게 될 것입니다. 맹수의 본능은 약한 것을 먼저 공격합니다. 반드시 아내부터 공격당할 것입니다.
아내의 손을 꽉 잡고 말했습니다. 이대로 걸어가야 해.
절대 저놈과 눈을 마주치면 안 돼. 저놈이 없는 것처럼 무시해버리고 이대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저놈을 지나가야 해.
공포에 질린 아내 손을 이끌고 한 걸음 한 걸음 놈의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우리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놈의 숨결이 으르렁대며 점점 더 거칠어졌습니다. 놈이 흥분하고 있었습니다.
등골에 진땀이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저놈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아내였습니다.
아내가 만약 조금이라도 이상한 행동을 보이면 바로 물어뜯길 것입니다. 걸음걸이가 더 빨라져서도 안 됩니다. 절대로 저놈을 자극하면 안 됩니다.
드디어 놈의 바로 옆을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녀석이 와락 우리 가까이 달려들었습니다.
놀라 도망치려는 아내의 손을 더욱 꽉 붙잡았습니다. 가만있어. 이대로 걸어가야 해.
녀석이 뒤를 쫓아오며 우리 장딴지에 바짝 달라붙었습니다. 기겁하는 아내의 손을 꼭 붙들고 계속 타일렀습니다.
이대로 천천히, 천천히 걸어야 해. 우리가 저놈에게 아무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여야 해.
집요한 놈이었습니다. 그래도 계속 바짝 달라붙으며 끈질기게 이빨로 도발까지 했습니다.
찻길이 나오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장딴지에 찰싹 달라붙어 집요하게 쫓아오는 이 끔찍한 놈과 겁에 질린 아내를 동시에 달래가며 한참을 더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아득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저놈도 진정시키고 아내도 진정시켜야 했습니다.
아내에게 우리 연애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절대 뒤돌아보지 말고 그냥 내 이야기만 들어.
너무 긴장해서 무슨 이야기를 떠들어댔는지 지금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주절주절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떠들어댔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며 걷는 동안 아내의 가쁜 숨결이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장딴지에 뿜어대는 놈의 거친 콧김도 어느덧 더 이상 두렵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마침내 빵빵 소리가 들리며 밝은 불빛들이 나타났습니다. 무사히 찻길까지 도착한 것입니다.
흘낏 뒤를 돌아보니 이제야 녀석이 저만큼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었습니다. 서로 꼭 마주 잡은 우리 두 손이 흥건히 땀에 젖어있었습니다.
이런 나쁜…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습니다. 반려견 좋아하다 사람 잡겠네.
도대체 저런 큰 개를 막 풀어놓고 키우는 인간은 어떻게 생겨 먹은 인간일까?
여름철에 쓰고 다니는 카우보이모자를 벗고 이마의 식은땀을 닦았습니다.
앞으로 내 여자(?)를 지켜주려면 진짜 카우보이처럼 말 타고 총도 한 자루 들고 다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