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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팬 Aug 25. 2023

암과 동행한 유럽 여행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습니다.

아직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유난히 추웠던 유럽의 겨울 하늘을 추억합니다.   


       

***


         

약 보따리를 하나 가득 여행 가방에 챙겨 넣었습니다.  


그리고 유럽 가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나는 암 덩어리를 하나 떼어 내고, 아내는 암 덩어리를 하나 새로 달고 떠난 여행길이었습니다.


암과 동행하는 겨울 여행이었습니다. 벌써 꽤 오래전의 일입니다.


그해 겨울. 유럽은 어마어마하게 추웠습니다. 수십 년 만의 혹한이라 했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유럽 대륙을 이 나라 저 나라 돌아다니다 벨기에로 갔습니다. 벨기에의 수도가 브뤼셀입니다.    


브뤼셀에 그 유명한 오줌싸개 동상이 있습니다.


 물어물어 찾아갔더니 오줌도 나오지 않는 오줌싸개 동상이었습니다. 하도 추워 고추까지 꽁꽁 얼어버린 모양입니다.  


        

     




오줌 줄기까지 꽁꽁 얼어버린 오줌싸개 동상을 구경하고 나오다 가까운 곳에 마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브뤼헤란 작은 도시였습니다.


어떤 마을일까 궁금해서 찾아갔습니다. 브뤼셀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었습니다.  


브뤼헤도 꽁꽁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처음 본 브뤼헤는 마치 작은 암스테르담 같았습니다.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처럼 마을 전체가 미로같이 운하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겨울 전에 왔었더라면 그림처럼 아름다웠을 운하들이 전부 스케이트장으로 변해있었습니다.  


마을 구석구석을 구경하며 돌아다녔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로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  


무수히 많은 유럽의 도시들을 여행하고 다녔지만 이렇게 기왓장 하나 문고리 한 짝까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마을은 처음 보았습니다.

      

갑자기 빙하기가 닥치는 바람에 마을이 통째로 냉동 창고처럼 변해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만화 같은 상상도 해보았습니다.


날씨만 좀 덜 추웠더라도 이 예쁜 마을을 만화로 그려볼 수 있었을 텐데 손가락이 곱아 펜도 쥘 수 없었습니다.    

  

내복을 두 겹씩 껴입고 목도리를 칭칭 감고 머플러로 꽁꽁 싸매고 중무장하고 왔지만 추위는 게릴라처럼 집요하게 몸속 깊숙이 파고들었습니다.  


그야말로 맹추위였습니다. 워낙 추워 거리엔 사람 그림자도 구경할 수 없고 상점들도 다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중세의 소도시를 동양에서 온 우리 부부 둘만이 짤짤거리고 싸돌아다녔습니다.


거리 풍경이 너무 비현실적이었습니다. 꼭 동화 속의 세계로 들어와 있는 듯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겨울을 타는 부부입니다. 연애 시절부터 겨울만 되면 겨울 바다를 보러 길을 떠났습니다.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떠돌아다녔고 전 세계 수많은 나라를 떠돌아다녔습니다.

  

저것들은 역마살이 끼었나? 짤짤거리고 잘도 싸돌아다닌다. 신혼 시절 함께 살던 우리 외할머니께 이런 야단도 자주 맞았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너무 추워 더 이상 싸돌아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해 떨어지기 전에 어서 하룻밤 지낼 곳을 구해야 했습니다.  


이리저리 찾아다니다 꼭 피터팬이 나올 것 같은 앙증맞은 호텔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작은 호텔 로비를 밝히는 조명이 팅거벨의 날갯짓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유럽 시골의 호텔 방은 우리 같은 암 환자들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습니다. 난방이 충분하지 못해 대부분 습하고 춥습니다.


그래도 여행에 이골이 난 우리 부부는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는 노하우를 알고 있습니다.


가방 속에서 꽁꽁 꼬불쳐온 전기담요를 꺼냈습니다.  


침대 위로 전기담요를 깔고 코드를 꽂았습니다. 금방 이불속이 후끈후끈해졌습니다.    


세상에 우리처럼 극성맞게 전기담요까지 싸 들고 여행 다니는 사람들도 없을 거야. 부부가 깔깔대고 웃으며 나란히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갔습니다.  


후끈후끈한 이불 속에서 부부가 꽁꽁 끌어안고 자니 더욱 후끈후끈했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유럽의 겨울 하늘 아래 꽁꽁 끌어안고 자는 부부의 밤은 행복했습니다.     


       

 



         

그 후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 부부는 아직도 굳세게 살아있습니다.

     

우리 부부가 함께 손잡고 걸어온 인생길엔   

  

힘들고 괴롭고 눈물 나는 일도 많았지만  

   

그래도 돌아보니 인생은 아름답습니다.  


        

***   


       

여전히 오늘도 햇살이 뜨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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